우리말에 목 놓아 운다는 표현이 있지요? 자신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택한 유모 소화(서영희)의 시신을 붙들고 “두 번씩이나 죽는 엄마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느냐”며 서럽게 우는 덕만(이요원)을 보니 문득 미실 당신도 이처럼 목 놓아 운 적이 있을지,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물론 어린 시절 연인 사다함을 떠나보낸 뒤 비통해한 적이 있고, 실종 십여 년 만에 돌아온 충복 칠숙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보인 적도 있긴 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게냐. 내 널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라며 떨어뜨린 한 방울의 눈물, 그에 감복하여 칠숙(안길강)이 낙향할 뜻을 접고 말았잖아요. 사실 저는 그때 그 눈물의 진의를 의심했습니다. 진정 감동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목적이 있어서인지 아리송해서 말이죠. 그런데 연모하는 소화를 제 손으로 베고 돌아와 침통해하는 칠숙과 나눈 대화로 보아 그가 당신에게 남다른 존재이긴 한 모양이더군요.

그 평정심, 정말 대단하다 할 밖에요

칠숙이 고구려 군의 포로가 되어 산채로 땅에 묻혀 죽어가는 자신을 당신이 구해준 기억을 되뇌며, 몸과 마음을 새주(璽主)께 바쳤지만 다음에 다시 죽을 기회가 온다면 그 기회는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라 말하자, ‘그러거라’라는 한 마디를 남기고 돌아서는 당신 얼굴에 어찌나 서운한 빛이 가득하던지, 보는 제가 다 민망하던 걸요. 동생 덕만을 살리기 위해 목숨을 버린 천명(박예진)이나 소화 같은 혈육의 정을 지닌 측근이 없다는 것도 속 터질 마당에 철석같이 믿었던 칠숙의 마음까지 떠났다는 뜻이니 오죽 가슴이 찢어졌겠습니까. 그래도 눈썹 한번 찡끗 하는 걸로 이내 평정을 되찾는 당신, 정말 대단하다 할 밖에요.

또 지난번엔 설원랑(전노민)에게 덕만으로 부터 당한 굴욕을 하소연하며 울먹거리셨죠? “왜 전 성골로 태어나지 못했을까요?”라는 애절한 탄식은 누구라도 가슴 짠할 소리였어요. 그러나 모처럼 속내를 드러냈지만 울먹이기만 했을 뿐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는 자제력에 또 한 번 놀랐답니다. 저는 이왕 무너진 김에 설원공 품에 안겨 여염집 여인네들처럼 펑펑 울었으면 했거든요. 그러나 역시 당신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감정을 수습하더군요. 하기는 설원공이 흐느끼는 당신 등을 토닥이는 장면은 상상 불가능이긴 해요.

그래도 저는 당신을 위해 목 놓아 울겠습니다

덕만도 미실 당신이 서역의 영웅전에 나오는 영웅 같다며 부러워했다는 거 모르시죠? 과연 냉철한 자제력으로만 따지면 당신은 역사상 보기 드문 큰 그릇이 분명합니다. 그런 당신이 왜 황후라는 작은 틀에 자신을 가뒀던 것인지 참으로 안타까워요. 오래 전 이미 상천관 서리(송옥숙)에게 팔자에 황후가 없음을 귀띔 받았거늘 왜 계속 허황된 꿈에 집착했던 겁니까. 그러다 골품제를 천박하다 말하는 춘추(유승호)에게 자극 받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덕만을 보고는 황후가 아닌 왕이 될 것을 선언했지만 때는 늦어버린 거지요. 이미 왕과 다름없는 권력을 누리고 있던 당신이 과욕을 부리자 세상도, 하늘도, 모두 외면을 하니 어쩝니까. 미실 당신은 넘을 수 없었던 고정관념의 벽을 춘추와 덕만은 어찌 그리 쉽게 깰 수 있었던 걸까요. 아마 당신의 말마따나 서라벌에서 나고 서라벌에 갇혀 자란 탓이지 싶습니다. 당나라 사신에게 불호령을 놓는 배포를 보면 천하에 둘도 없는 여걸이거늘 좁은 시야가 결국 당신을 망치고 만 걸 거예요. 평생 성골이 아니라는 사실에, 그래서 황후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억울해했지만 진짜 억울한 일은 당신이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아닐지요.

저는 덕만 공주가 과연 왕재가 맞긴 맞는 건지, 진흥대제 말씀대로 천하를 얻기 위해 사람을 제대로 얻고 있는 것인지, 또 정말 백성들을 생각해 왕이 되고자 나선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진흥대제가 선입견을 버리고 미실 당신을 선택해 바른 왕도를 가르쳤다면, 그리고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울 기회를 주었다면 신라의 앞길은 훨씬 더 평탄하지 않았을까 싶어 아쉽습니다. 이렇든 저렇든 인명은 재천이니 앞선 사람들을 따라 당신도 곧 세상을 떠날 테지요. 워낙 초인적인 자제력을 지닌 분인지라 삶에 연연하는 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말이죠, 당신을 위해 목숨을 버릴 이는 없을지라도 아름답고, 영리하고, 당차고, 품 넓은 여걸의 죽음 앞에 목 놓아 울어줄 이들은 좀 있었으면 합니다. 하기는 목 놓아 우는 건 당신 취향이 아니라며 눈썹을 찌푸릴지도 모르겠네요. 어쨌거나 미실 당신이 떠난 신라는 평화로울지는 몰라도 어째 심심할 것 같군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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