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은 언제나 엔터테인먼트의 꽃이요 주인공이었지만 2009년은 옹골차게 아이돌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빠, 삼촌 마음을 설레게 하는 소녀그룹들이 줄줄이 등장했고, 세대교체를 선언한 남자 아이돌들도 끊임없이 탄생한다. 더구나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아이돌에 대한 사랑을 커밍아웃할 수 있는 요즘은 아이돌만큼 확실한 흥행 보증수표도 없다. 예능 프로그램도, 영화도, 드라마도 아이돌 한두 명씩은 출연시켜야 구색이 갖춰진다. 그리고 마침내 오로지 아이돌을 위한, 아이돌에 의한 드라마까지 등장했다. SBS <미남이시네요>는 아이돌의 사랑이라는 비현실적이고 간질간질한 이야기를 누구보다 잘 그려낼 홍정은, 홍미란 작가에 의해 발랄함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환상에 가까운 존재들은 칼날같은 쇼 비즈니스의 현실에서도 순수함을 간직했기에, 아이돌 이전에 아이들의 진심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세계는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을까? <10 아시아> 강명석 기자와 윤이나 TV평론가가 중반을 넘어선 를 점검했다. /편집자주

연예인도 아니고, 절세 미녀도 아닌 한 평범한 소녀가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와 사랑에 빠지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클리셰에 충실하게 뺨을 때리고 나서 그가 “나를 때린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를 외치게 하든, 평범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순수한 소녀의 매력을 발산하든, 함께 공유할 장소와 시간이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학교니 방송국이니 하는 다양한 공간들 중 팬들의 판타지를 가장 완벽하게 실현시킬 수 있는 궁극의 공간은 바로 숙소다. 브라운관 너머나 잡지 화보 같은 것으로는 절대 충족시킬 수 없는 스타들의 ‘일상’이 있는 곳.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하여 수없이 많은 팬픽들 속에서 팬들은 숙소 가정부가 되거나 가정교사가 되곤 했다. 그 중 으뜸은, 남장 여자다. 오빠들과 편하게 형, 동생 하면서도 동성과 이성 사이의 미묘한 감정을 오가는 설렘. <미남이시네요>(이하, <미남>)는 이와 같이 지극히 팬픽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 <미남이시네요>는 쌍둥이 오빠로 위장해 아이돌 그룹에 들어간 소녀가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며, 사랑도 얻게 되는 ‘소녀들의 판타지’다.

아이돌의 현실에 충실한 판타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남>가 소위 ‘손발을 오그라들게 만드는’ 장면들로만 채워져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영민하게도 이 드라마의 작가인 홍자매는, 굳이 판타지로 그리지 않아도 연예계 자체가 거대한 ‘다른 세계’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분명 <미남>에서 보여주는 연예계와 연예 기획사, 아이돌과 팬, 그리고 이들을 다루는 언론의 행태는 대개 과장 되어있다. 하지만 이들의 과장된 몸짓들 속에는 실제 연예계와 이를 둘러싼 관계들에서 볼 수 있는 본질에 가까운 모습들이 숨겨져 있다. 아이돌을 포함한 연예인들의 사생활은 거의 보호받지 못하고, 팬들은 든든한 조력자이지만 초반의 미남(박신혜)에게 보이는 행동이 보여주듯 잠재적 안티이기도 하다. 기자들은 ‘알 권리’라는 모호한 말로 지하 주차장과 무대 뒤, 숙소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대중은 코피가 나든 넘어지든 휴대폰 카메라로 그들의 모습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이러한 세계 속에서 그래봤자 겨우 20대 초반인 아이돌들은 태경이(장근석)처럼 위악적으로 가시를 세우거나, 유헤이(유이)처럼 위선의 포장지를 둘러야 한다.

팬픽 같은 소재에 순정만화 같은 내용의 드라마 <미남>은 이렇게 현실과의 접점을 찾는다. 분명히 지금의 아이돌 그룹들은 대저택을 방불케 하는 숙소가 아니라 태경이방 만 한 숙소에서 이층침대를 세워두고 복작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염려나 고민은 A.N.JELL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때로 원하지 않는 노래도 불러야 하고, 연애도 감시받아야 하고, 때로 이용되는 것을 알면서 이용되어야 한다. <미남>이 연예계의 뒷이야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뜬 구름 잡는 판타지가 아니라 어느 정도 현실에 발붙인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특히 지금의 아이돌 그룹이 그런 것처럼 각 멤버별로 뚜렷하게 구축된 캐릭터와 이를 맞춤옷처럼 소화해내는 어린 배우들의 연기는 판타지와 같은 이야기에 현실성을 더하고,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불분명한 세계 속에서 의지할 데가 거의 없는 ‘어린 별’들이 서로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을 억지스럽지 않게 만든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별들의 진심

자신에게 토하고, 자신의 방에 침을 뱉으며 단단하게 닫아둔 울타리를 깨고 들어온 미남의 행동은 태경에게 “날 때린 것은 네가 처음” 그 이상의 충격을 주었을 것이고, 뭘 해도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달아야 하는 부담감을 어릴 때부터 안고 살아온 유헤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봐주는 태경은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너무나 간절하지만 절대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별을 바라보는 팬의 마음으로 태경을 바라보는 미남이나, 일찍 알게 된 비밀을 감춰주려다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개잡은’ 사이가 된 미남의 곁을 지키는 신우(정용화), 자신만의 방법으로 ‘좋아해’라고 말할 줄 아는 제르미(이홍기) 모두에게 허락된 충분한 시간은 이들의 감정을 무르익게 만들었다. 황태경과 유헤이의 키스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미남에게 신우는 그 감정이 “나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렇게 는 별들이 살아가는 판타지의 세계를 그리면서도 그 세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별스럽게’ 그리지 않는다. 대신 이 청춘들의 ‘반짝반짝 빛나는’ 사랑의 감정을 갖는 순간을 보여주어 그 별들을 사랑하게 만드는 드라마다. 실제로 그 별들의 진짜 모습이 어떠한지 알지 못해도, 그들이 보여주는 찰나의 빛나는 순간을 보며 한 스타의 팬이 되는 것처럼.
글 윤이나

하늘의 수녀가 땅의 천사를 깨우리라. SBS <미남이시네요>에서 수녀를 꿈꾸던 고미남(박신혜)은 아이돌 그룹 A.N.JELL의 리더 황태경(장근석)을 향해, 옥상에서 술에 취해 그리고 PMP를 찾기위해 올라간 트럭 위에서, 떨어진다. 그 두 번의 충돌로 성당의 수녀는 쌍둥이 오빠를 대신해 아이돌 그룹의 소년/소녀가 될 것을 허락받고, 결벽증의 아이돌은 처음으로 이성과 스킨십을 한다. 그리고, 아담에게 선악과를 건넨 이브처럼 황태경에게 사과를 건넨 고미남은 무성적인 존재로 살던 연예계의 ‘천사장’에게 “태경이형도 남자구나”라는 말을 듣게 한다. 그래서 <미남이시네요>는 스스로 언론 플레이를 하는 프로페셔널한 아이돌의 드라마이자, 여전히 물총을 쏘고 연필깎이로 깎은 연필로 작곡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의 세계, 어른들의 도피처

카리스마적인 리더 황태경도, 영악하게 자기를 포장하는 유헤이(유이)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르는 ‘초딩’의 연애를 한다. 물론, <미남이시네요>는 모난 성격의 아이돌 스타가 순수한 남장여자에게 끌리는 것과 같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로맨스물의 클리셰로 가득하다. 하지만 <미남이시네요>는 이 클리셰들로부터 처음으로 사랑과 상실을 경험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바라본다. 자기 앞에서 웃는 황태경에 대한 감정을 ‘사랑’이 아닌 ‘전기’라 표현하는 고미남의 설렘은 짜릿하고, 몇 미터 앞에서 고미남에게 고백의 기회를 놓친 강신우(정용화)의 상실감은 어른들의 사랑보다 훨씬 아프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남자가 나에게만 웃어주던 그 순간의 재생.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몰입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우리가 빠져들었고, 상처 입었고, 추억하는 첫사랑의 순간을 보게 해주는 이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미남이시네요>는 아이들의 성장 에너지를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로맨스로 치환해 가장 뻔한 설정들에서 펄떡펄떡 뛰는 감정들을 끌어올린다. 하지만 이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을 위한 도피처이기도 하다. <미남이시네요>에서 어른들은 A.N.JELL의 사장(정찬)과 매니저(김인권)처럼 어리숙하거나, 고미남의 돈을 노리고 접근했다가 A.N.JELL의 팬들에게 멤버들의 물건을 파는 고모(최란)처럼 단순히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급급하다.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지만, 동시에 세상을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바꿀 수 있다. 쉴 새 없이 유치한 상상들이 난무하고, 인기 절정의 아이돌 그룹은 숙소에서 계속 연애만 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스케줄을 소화한다. 고미남과 황태경 사이를 방해하는 유헤이의 ‘초딩’같은 계략이 가장 큰 음모가 되는 세계. 그 점에서 <미남이시네요>는 ‘홍자매’ 홍미란-홍정은 작가의 전작 KBS <쾌도 홍길동>의 대구다. 고미남처럼 세상사에 무지했던 허이녹(성유리)이 홍길동(강지환)과 만나며 시작된 <쾌도 홍길동>은 아이들이 탐욕스러운 어른들의 세계에 맞서는 이야기였다. 반면 <미남이시네요>의 아이들은 제대로 된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어른과 싸우는 대신 하기 싫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할 만큼 쇼 비즈니스에 적응하고, 대신 그들의 세계 안에서 마음대로 살 작은 자유를 얻는다. 혁명은 실패했고, 아이들은 멤버와 매니저와 숙소가 전부인 그들만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순수가 현실과 만나는 순간

그 점에서 <미남이시네요>는 비현실성과 상관없이 ‘아이돌’ 드라마다. 어른들이 아이돌을 보며 세상 시름 다 잊었던 올해, <미남이시네요>도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위로한다. 늘 키치적인 감성과 진지한 연애감정을 동시에 다뤘던 홍자매는 <미남이시네요>에서 가장 가벼운 스타일로 가장 순수한 아이들의 사랑을 담았다. 현실의 고민과 비극은 최대한 줄였고, 즐겁게 ‘팬질’할 수 있는 아이돌의 사랑만 남았다. 그러나 이 순수의 세계가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알 수 없다. <미남이시네요>는 8회에서 뮤직비디오 촬영을 이유로 캐릭터들을 한 공간에 집어넣고, 황태경과 고미남의 연애담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했다. 새로운 사건은 없고, 두 사람의 밀고 당기는 이야기만 반복된다. 현실적인 문제를 피할수록 연애 감정의 순도는 높아지지만, 드라마는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아직도 고미남이 고미녀라는 사실을 심각하게 다루지 않는 이 드라마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진짜 현실과 만나게 할까. 그 순간의 진정성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미남이시네요>는 느슨해진 최근의 이야기에 추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글 강명석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윤이나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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