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음은 지난 2002년에 데뷔했다. 그 사이 아이돌 여자 그룹 슈가의 멤버로 활동했고, 몇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를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한 건 최근의 일이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와 <지붕 뚫고 하이킥>은 그동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던” 황정음에게 어떤 매력이 있는지 보여줬다. 통장에 잔고가 몇 백 원 밖에 없다고 말해도 미워할 수 없고, 술에 취해 해변에서 뒹굴어도 귀엽기만한 황정음의 모습은 지난 몇 년간 그의 활동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금세 ‘황정음’의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대중에게 새롭게 발견된 그를 만났다.<지붕 뚫고 하이킥> 반응이 좋다. 통장 잔고가 많이 늘었나. (웃음)
황정음 : 밖에 잘 안 돌아다니니까 잘 모르겠는데, 인터뷰나 화보 촬영 같은 걸 하면 전부 <지붕 뚫고 하이킥> 얘기를 많이 해준다. 그래서 “아 우리 드라마 잘 되고 있구나”라는 건 확신한지 오래됐고, (웃음) 더 열심히 해서 빨리 시청률 20% 넘기자 하고 있다.
“김병욱 감독님께 ‘주님’이라는 별명을 만들어드렸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도 대중적으로 반응이 가장 먼저 온 캐릭터다. 캐릭터가 어떤 매력이 있는 것 같나.
황정음 : 감독님이 정음이란 캐릭터를 너무 귀엽게 써주셨다. 정말 이유는 그거 딱 하나같다. 나 아니고 다른 분이 연기했어도 그렇게 좋아했을 것 같다.
좀 얄미운 캐릭터가 될 수도 있지 않았나. 신상 구두를 밝히고 남의 돈은 떼어먹고. (웃음) 그런데 굉장히 귀엽게 소화하는 거 같다.
황정음 : 망가지기 때문에 그런 거 같다. 나도 처음엔 되게 여우같고 얌체 같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망가지니까 불쌍하게 보이더라. (웃음) 망가지는 게 밉게 구는 걸 덮어주는 것 같다.
김병욱 감독은 어떤 식으로 연기를 주문했나. 캐릭터가 여우같은 부분도 있고, 취업에 실패했을 때는 의기소침해하기도 하고 해서 은근히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던데.
황정음 : 내 생각엔 김병욱 감독님이 천잰 거 같다! (웃음) 그런 생각이 되게 많이 든다.
어떨 때 그런 생각이 드나.
황정음 : 내가 속으로 너무 망가져서 걱정된다 싶으면 대본에 의기소침한 애가 돼 있다. 그래서 너무 의기소침해있나 싶으면 또 귀여운 애가 돼 있고. 내가 너무 난리치고 발광하는 게 많다 싶으면 또 착하고 귀여운 애가 돼 있다.
그런 다양한 모습을 어떻게 연기하라고 하던가.
황정음 : 처음에 대본 리딩 할 때 “이쁜 척 하지 말아라 정음아. 절대로. 이쁘게 하면 이 캐릭터는 큰일 난다”라고 하셨다. 내가 맨 처음에 “세경씨, 나 가아~”하면 감독님이 다시 해보라고 하고, 내가 톤을 낮춰서 하면 다시 그 중간으로 해보라고 하는 식으로 연습을 시키셨다. 정말 바쁘신데 나 뿐 아니라 배우들 하나하나 다 디테일하게 봐주시더라. 난 감독님한테만 질문하면 되지만 감독님은 모든 사람들 질문을 다 받는데 귀찮아하지도 않으시고. 그래서 별명이 ‘주님’이다. (웃음) 내가 지었다. 하하. 너무 자상하고 온화하시다. 김병욱 감독님을 만난 게 내 인생의 행운이란 생각을 많이 한다.
<지붕 뚫고 하이킥> 전에는 SBS <사랑하는 사람아>나 MBC <겨울새>처럼 도도한 모습이 많이 나오는 캐릭터였다. 그러다 시트콤 연기를 하게 됐는데, 어떤 차이가 있나.
황정음 : 사실 그 땐 나에게 맞지 않는 엄마 옷을 입은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웃음) <사랑하는 사람아> 출연할 때 스물 두 살이었는데 역할은 스물여덟 살 역할이었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니가 하긴 힘들다고 했고, 나도 준비가 안 됐을 때여서 정세호 감독님께 죄송했다. 지금은 내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안하고 후회하는 것 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우리 결혼했어요>와 <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하며 이미지가 바뀌었다. 두 작품의 캐릭터가 겹치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도 제작진이 실제 본인의 모습에서 캐릭터를 뽑아내는 것 같나?
황정음 : 처음에는 어느 정도 틀이 정해져 있었는데, 갈수록 나를 알아가면서 원래 내 모습과 캐릭터의 틀을 합쳐가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 결혼했어요>는 내 전체 모습은 아니고, 어느 정도 제작진이 생각하는 방향이 있으니까 내가 조금 얄밉게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웃음) 그래도 뭐, 워낙에 내가 착한 성격은 아니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황정음의 얄미운 버전이고, <지붕 뚫고 하이킥>은 황정음의 망가진 버전 같기도 하다.
황정음 : <지붕 뚫고 하이킥>에 캐스팅 안 되고 <우리 결혼했어요>만 했으면 내가 내 모습을 꾸미지 않는 한 점점 밉상으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좋아하는 남자친구하고 같이 나오는데 연기를 할 수는 없고, 그러면 시청자들도 알 거고. 그런데 <지붕 뚫고 하이킥 >에 출연하면서 대본보고 “살았다!”라고 생각했다. (웃음) 여기서 이미지가 조금 나빠지면 저기 가서 다시 좋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 말대로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좀 얄미워 보일 수도 있겠더라. 집에서 이사할 때도 남자친구는 짐 정리하는데 그냥 눕더라.
황정음 : 원래 그렇긴 하다. (웃음)
하지만 그런데도 김용준 마음은 정말 잘 풀어주더라. 김용준의 부모님에게 할 때도 그렇고, 사랑받는 법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정음 : 부모님이 바쁘셔서 나를 못 돌봐주실 때가 많았는데,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부모님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막내라서 그렇기도 하고.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집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집에 가면 내 사진밖에 없다. (웃음) 딸이 하나였으니까.
그래도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고 촬영을 하는 일은 굉장히 부담스럽지 않았나.
황정음 : TV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 부담이 덜했다. 아, 촬영이니까 조금은 이해해주시겠지. 조금 오버해도 괜찮겠지. (웃음) 난 뭐든지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놀러와>에서도 나왔지만 이젠 싸워도 “우리 이제 못 헤어져”라고 얘기할 만큼 관계가 공개 된 게 현실이다. 고민은 없나.
황정음 : 처음에는 사실 안 한다고 했다. 걱정이 되기도 하고, 연기자 생활을 하는 데 어떤 영향을 줄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한 친구들이 다 잘 되기도 했고, 나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안하고 후회하는 것 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뛰어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고 싶다”
그런데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슈가로 있던 시절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했던데.
황정음 : 그렇다. 별로 안 좋았었다. 난 어릴 때 말괄량이고, 내가 최고인줄 알았다. 그래서 당연히 내가 인기 많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아니더라. 솔직히 그런 상황이 짜증나기도 했고.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보면 주관도 뚜렷하고 할 얘기도 많은 사람 같은데 슈가 때는 거의 말을 못하고 지냈던 게 답답했겠다.
황정음 : 회사에서 말을 못하게 했다! (웃음) 그냥 조용히 예쁜 척 하라고만 하더라. 그런데 사실 나는 그렇게 연예인들이 예쁜 척 하면 시청자들 보기에 재수 없어 보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걸 했던 거다. (웃음) 답답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연예인이 됐나.
황정음 : 처음에는 연예인이 될 생각이 없었다. 연예인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친구들이 H.O.T 좋아한다고 하면 나도 덩달아 좋아하고 같이 노래하는 정도? 그랬는데 친구들하고 길거리에서 캐스팅이 됐다. 그 때 엄마가 그거 사기니까 명함 받아도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웃음) 그 중에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사장님 형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나에게 명함을 줬다. 그 때 내가 그나마 좋아하는 연예인이 H.O.T였으니까 이 사람들은 좀 믿을만하겠다 싶었다. (웃음) 그래서 트레이닝 한 1년 8개월 정도 받고 슈가로 나왔다. 솔직히 그 때는 별 생각 없었고, “아, 나 이제 연예인 되는구나 아싸!” 이랬다. (웃음)
그렇게 큰 생각 없이 연예인이 됐고, 그 뒤로 갑갑한 시절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만두지 않고 꾸준히 활동했다.
황정음 : 지금 내가 와서 연예인 아닌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없는 거고. 아빠가 일을 하시긴 하지만 전처럼 엄마가 함께 일을 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했는데, 예중하고 예고 보내려면 정말 많은 돈이 나간다고 하더라. 그렇게 부모님이 고생 많이 하셨으니까 이젠 내가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아>에 출연하면서 연기자로 변신했다. 처음 연기할 때는 어땠나. 아무 준비 없이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에 던져진 셈인데.
황정음 : 정세호 감독님을 아빠처럼 생각했었다. 정세호 감독님이 좀 터프한 스타일이시긴 한데, 혼이 나도 “감독님 잘해볼께요”하고 웃으면서 다시 했다. 사실은 감독님이 날 예뻐하시는 걸 알았으니까. 감독님이 내가 고개 하나 돌리는 것까지 신경 써 주시는 게 눈에 보였다. 내가 감독님이 요구하시는 걸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됐던 게 문제였을 뿐이다. 그래서 정세호 감독님께 평생 감사드리고 싶다.
김병욱 감독의 작품은 캐릭터가 굉장히 인상적인 만큼 다음 선택이 더 중요해진다. 지금 캐릭터에 갇힐 수도 있다는 걱정은 안 하나.
황정음 : 그런 생각도 했다. 이번 작품이 시트콤이기도 하고, 캐릭터가 강하니까 다음 작품이 정말 중요할 거고, 내년이 나한텐 정말 중요하겠단 생각을 한다. 그런데 뭘 하고 싶다는 것까지는 아직 생각 못했다. 자꾸 생각은 드는데, 지금은 이 배역에만 충실하고 싶다. 이번 역할하고 정극 사이의 역할 하나 정도면 어떨까 싶다. 한 계단 한 계단씩 가고 싶다. 막 뛰어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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