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깎아주지 그래요.”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진행하는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전화 인터뷰로 출연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이런 말을 했다. MBC가 ‘높은 출연료’를 이유로 손석희 교수를 MBC <100분토론>에서 하차 시킬지도 모를 것에 대해 농담을 한 것이다. 회당 출연료 200만원이 많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언론인을 하차 시키는 것이 요즘 방송가의 풍경이다. 김제동 역시 출연료를 이유로 오랫동안 진행한 KBS <스타 골든벨>에서 물러났다. 모든 이유가 ‘경쟁력’과 ‘효율성’으로 설명되는 요즘 방송가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0 아시아>가 요즘 방송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과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들을 위한 처세의 조언, 그리고 그들이 없는 세상에 대한 끔찍한 상상을 함께 다뤘다.

MBC <무한도전>에는 ‘쩌리’가 있다. 유재석과 박명수 같은 핵심이 아니라 오락 프로그램 주변을 서성이며 제작진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는 ‘겉절이’같은 연예인들을 풍자한 단어다. 하지만 이들은 조만간 겉절이 신세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방송사가 유재석과 박명수 대신 ‘싼’ 출연료를 받는 그들을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재석이 아닌 ‘쩌리’ 개그맨 김경진이 <무한도전>을 진행할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스타골든벨>은 비싼 출연료를 이유로 김제동을 지석진으로 교체했다. 지석진은 김제동과 <스타 골든벨>을 진행하다 올해 전현무 아나운서로 교체됐었다. 필요에 따라 아나운서로 교체 가능할 만큼 상대적인 비중이 덜했던 MC가 메인 MC가 된 것이다. <100분 토론>도 회당 출연료 200만원을 받는 손석희 교수의 출연료가 높다는 이유로 하차 가능성을 거론 중이다. 다음 진행자가 누구든, 손석희 교수보다 낮은 출연료를 받을 것은 확실하다.

돈으로 증명할 수 없는 가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출연료가 두 사람의 진짜 하차 이유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스타골든벨>은 김제동의 마지막 방송이었던 지난 주 동시간대 시청률 1위(TNS미디어코리아 기준)였던 것을 비롯, 꾸준히 동시간대 1-2위를 기록했다. 출연자가 20명이 넘는 <스타 골든벨>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런 성과의 상당 부분이 출연자의 멘트를 조율하는 MC에게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만한 부분이다. MBC측은 <100분토론>이 “SBS <시사토론>보다 시청률이 낮다”고 했지만, 목요일 밤 12시 50분에 방영하는 <100분토론>과 금요일 밤 12시 15분에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동일 비교할 수는 없다. 시청률 역전이 두드러진 것도 최근의 일이다. 또한 <100분토론>이 언론사로서 MBC의 이슈 선점과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끼친 영향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진행자의 말투는 물론 형식까지 패러디되는 토론 프로그램은 <100분토론>밖에 없다.

그럼에도 출연료가 퇴출의 명분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방송사의 가장 명확한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김제동의 하차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 진행 등 일련의 사회 참여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은 증명할 수 없다. 반면 출연료는 눈에 보인다. 그리고 방송사는 출연료를 근거 삼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말로 퇴출을 정당화 시킨다. 과거에는 정치적 압력으로 연예인이 출연하지 못하는 일이 종종 벌어졌다. 지금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그런 일은 없다. 대신 출연료와 효율성이 모든 것을 가리는 잣대가 된다. 한 방송사에서 20년 이상 일한 언론인의 회당 출연료 200만원이 과연 많은 것인가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돈으로 증명할 수 없는 가치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효울성, 그 모든 것에 앞선 가치

지난 11일 이정현 한나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유재석과 박명수 등 MBC에서 출연료를 많이 받는 연예인들의 명단을 공개한 것 역시 이 방송사 중심의 효율성에서 나올 수 있는 일이었다. 유재석은 2008년 동안 총 9억 4360만원으로 1위, 박명수는 8억 4276만원으로 2위였다. 그리고 이정현 의원은 이 자료를 발표하며 특정 연예인에게 출연료가 쏠리는 현상을 지적했다. 단지 ‘많다’는 이유로 한 개인의 소득이 공개되고, 출연료 자체에 대한 비판이 가해진 것이다. 박명수는 출연료가 공개된 뒤 자신을 비난하는 네티즌의 악플 때문에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지난해 출연 프로그램의 이름과 “취권하고 상황극하고 겨털 다 보여주며 열심히 하는” 자신의 노력에 대해 말해야 했다. 방송사는 비싼 출연료를 이유로 곧바로 퇴출한다. 반면 연예인은 출연료가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연봉을 공개당하고, 비난까지 받는다.

그만큼 기업의 효율성과 이익 추구는 우리 사회의 절대적인 가치로 자리잡았다. 방송사는 회당 200만원의 출연료를 이유로 손석희의 퇴출을 거론할 수 있다. 반면 유재석은 비싼 출연료를 이유로 대중에게 일부로부터나마 곱지 않은 시각을 받을 수도 있다. 기업의 이익은 끝없이 추구할 수 있지만, 개인의 소득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혹은 다른 사람들과의 형평성을 위해 상한선이 주어진다. 이미 우리는 기업 중심의 경제 효율성, 그리고 그 결과로 커진 ‘파이’를 분배하는 것을 절대적인 가치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정말 추운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작년까지 한국 방송 산업, 더 나아가서 사회 전체에 통용되는 하나의 규율은 ‘법’이었다.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도, MBC 에 관한 조사도 모두 법조항을 근거로 이뤄졌다. 또 올해는 기존의 신문 언론사들이 공중파 방송으로 진출할 수 있는 미디어 법이 ‘일자리 증가’와 ‘경쟁력 강화’ 등의 명분과 함께 통과됐다. 그리고 지금 방송사는 이 법의 틀 안에서 경쟁력 강화를 출연자 퇴출의 이유로 내세운다. 법에 걸리지 말고, 경쟁력을 떨어뜨릴 높은 출연료도 받지 말아라. 물론 ‘경쟁력’의 판단은 시청자가 아닌 방송사가 한다. 방송사의 논리가 타당한지, 손석희 교수와 김제동의 경쟁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차라리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방송사가 효율성과 경쟁력을 모든 의사결정의 논리로 적용될 수 있는 현실 자체다. 그 점에서 두 방송인의 퇴출과 또 다른 두 방송인의 출연료 논란은 지금 우리 사회가 움직이는 방향을 상징한다. 경쟁력을 이유로 손석희 교수가 퇴출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이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경쟁력, 또는 효율성의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손석희와 김제동의 퇴출 후, 김구라는 과거의 발언으로 화제에 올랐다. 한 언론에서 그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시장이던 시절 인터넷 방송에서 인신공격을 했음에도 지금 방송을 잘 하고 있으니, 김제동의 퇴출이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추측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이 어떻든 김구라가 앞으로 더욱 사회적 발언을 자제할 것이란 사실은 분명하다. 한 연예인의 퇴출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다른 연예인의 과거 발언을 끄집어내는 사회에서 연예인의 운신의 폭은 극도로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출연료는 너무 높아서는 안 되고, 문제의 소지가 되는 발언은 줄여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납득할 수 없더라도 효율성이라는 한 마디에 물러나야 한다. 우리는 지금 효율성을 이유로 가장 비이성적인 시대로 나아가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말, 추운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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