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조금 오랜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어, 그래. 잘 기억나지 않겠지만 부산 다녀오느라 한 주 쉬었다. 너마저 기억 못하면 어쩌자는 거냐.
그랬었나? 평소에도 별로 눈에 띄질 않아서. 그럼 부산 다녀오고 뭐했어?
뭐하긴, 두 신의 강림을 TV로 지켜보고 있었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선 기아의 종범신께서 부활해 승패의 갈림길마다 적시타를 날려주셨고, ISU(국제빙상연맹)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1차대회에선 연아신이 강림하사 극강의 미모, 아니 연기를 보여주셨지.
야구는 안 봤지만 김연아 경기는 나도 봤어. 이번에 또 세계기록 세웠잖아. 그 해바라기 씨만 아니면 215점도 가능했을 거라던데?
아, 아사다 마오 팬이 던진 해바라기 얘기구나. 그런데 그건 김연아 본인도 얼음에 걸린 것 같다고 그랬고, 만에 하나 진짜 해바라기 씨앗 때문이라고 해도 그걸 악의적인 방해라고 보는 것까진 무리인 것 같아. 포장을 안 한 꽃을 던지는 건 피겨 관람의 매너가 아니라는 정도로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215점이라는 괴물 같은 점수가 아쉽긴 하지만 210점도 정말 말이 안 되는 점수고, 무엇보다 이제 김연아의 연기는 이제 기록이란 거에 연연할 단계는 지난 거 같아.
하긴, 나도 점수가 아쉽기보다는 미처 시도하지 못한 점프까지 해내면 얼마나 더 화려했을지 궁금하더라니까.
바로 그거지. 너도 이제 연아신의 연기 자체를 즐기게 됐구나.
연기를 즐기게 된 건 맞는데 나는 연아신이라고 한 적 없거든? 종범신, 연아신, 무슨 다신교 신자냐?
왜 이래, 나만 쓰는 어휘가 아니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무의미하게 신이라는 단어를 쓸 거 같아?
엄청나게 잘하는 건 아는데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피겨퀸이란 표현을 써도 되잖아.
바로 그거야. 보통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에 이른 선수를 호칭하는 가장 보편적인 호칭은 왕이나 황제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킹’ 르브론 제임스, 축구 황제 펠레처럼. 어릴 때부터 탁월한 재능을 보일 경우에는 스타크래프트의 이윤열이나 축구의 카림 벤제마처럼 천재라는 호칭이 붙고. 그런데 단순히 최고를 넘어 비교대상이 없는 절대적 존재가 되면 이런 호칭들로도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거든. 이럴 때 인간을 수식하는 표현이 아닌 다른 표현이 나오는 거지.
들짐승 마르코?
떽! 마르코의 힘과 운동 능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그거랑은 다르지. 우선 전성기 호나우지뉴와 메이저리그의 페드로 마르티네즈에게 붙었던 외계인이란 호칭이 있어. 물론 생긴 게 지구인 같지 않아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기량이 절정이었던 시기의 호나우지뉴는 당대 최고의 공격수이던 맨유의 루니조차 “어떻게 저런 플레이가 가능할까”라고 말할 정도로 수비수를 가지고 놀았고, 전성기의 페드로에게 7이닝 동안 단 2안타만을 기록하며 패배했던 뉴욕 양키즈의 감독은 “야구는 인간이 하는 것이고, 페드로는 인간이 아니므로 우리는 한 게임도 지지 않았다”는 말을 했지. 그만큼 굉장한 사람들이었어. 이렇게 엄청난 기량차를 보여주는 동시에 뭔가 외계인 이미지와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신이라는 호칭이 붙는 거지.
그럼 연아신, 종범신 말고도 신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물론이지. 종범신의 데뷔시절부터의 라이벌인 ‘양신’ 양준혁도 있고, 구느님의 자매품인 ‘효느님’ 효도르, 역시 종합격투기 선수인 ‘료토신’ 료토 마치다, 복싱 선수인 ‘파퀴신’ 매니 파퀴아오 등등이 있지.
그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호칭 맞아?
아니, 그렇진 않아.
굉장히 떳떳하게 대답한다?
물론 대부분은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붙인 호칭이야. ‘본좌’라는 표현 이후 자주 쓰이는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아주 터무니없는 건 아니라고. 아까 비교대상이 없는 존재라고 말했지? 이번에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점수 차이 봤지? 무려 40여 점 차이야. 이제 김연아에게 라이벌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궁금해지는 점수지. 너도 알겠지만 피겨 스케이팅 채점은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로 구분하는데 김연아는 이 두 영역을 다 잘한다기보다는 두 영역의 구분을 없앤 단계에 이른 거 같아. 완벽한 점프와 풍부한 표정, 창의적인 안무가 따로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하나의 쇼로 귀결되는 거지. 그에 반해 아사다 마오는 타라소바 코치 때문인지 본인 고집 때문인지 점프 기술에 목을 매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놓치고 있어. 말하자면 점수 차이는 부수적인 거고 김연아는 이미 다른 패러다임에서 놀고 있는 거지. 다분히 개인적인 의견일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현역 최고 선수를 뜻하는 여왕이란 단어로는 현재의 김연아를 수식하는 게 부족할 거 같아.
그래서 신이다? 그럼 종범신은? 솔직히 이종범이 세계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리고 아깐 양준혁도 신이라며?
네 말대로 이종범이 피겨계의 김연아나 격투기의 효도르처럼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는 아니야. 하지만 젊었을 땐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5툴 플레이어, 그러니까 정확한 타격, 장타 능력, 수비 능력, 좋은 어깨, 빠른 발을 갖춘 선수였던 야구 천재가 오랜 부진과 은퇴 위기까지 넘어서고 나서 나이 40에 팀의 10회 우승 도전의 핵심 멤버가 됐을 때 과연 어떤 말로 수식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이종범 역시 김연아와는 다른 의미로 기록에 연연할 단계를 넘어선 선수인 거고, 종범신이라는 타이틀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해. 양준혁은 조금 다른 경우지. 이종범이 부활의 서사극으로 신이 됐다면 양준혁은 정말 부진이나 슬럼프라는 어휘를 모르고 40이 넘도록 야구를 하면서 팬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양신’이 됐어. 만약 그 둘의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본 사람이라면 신이란 표현에 그다지 거부감을 느낄 거 같진 않아.
그럼 그 중에 네가 가장 숭배하는 신은 누구야? 당연히 연아신인가?
글쎄? 숭배는 아닌데 연아신이 고난도 점프를 앞뒀을 때나 득점이 필요할 때 종범신이 타석에 들어서면 나는 그의 이름을 불러.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어, 그래. 잘 기억나지 않겠지만 부산 다녀오느라 한 주 쉬었다. 너마저 기억 못하면 어쩌자는 거냐.
그랬었나? 평소에도 별로 눈에 띄질 않아서. 그럼 부산 다녀오고 뭐했어?
뭐하긴, 두 신의 강림을 TV로 지켜보고 있었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에선 기아의 종범신께서 부활해 승패의 갈림길마다 적시타를 날려주셨고, ISU(국제빙상연맹) 피겨 시니어 그랑프리 1차대회에선 연아신이 강림하사 극강의 미모, 아니 연기를 보여주셨지.
야구는 안 봤지만 김연아 경기는 나도 봤어. 이번에 또 세계기록 세웠잖아. 그 해바라기 씨만 아니면 215점도 가능했을 거라던데?
아, 아사다 마오 팬이 던진 해바라기 얘기구나. 그런데 그건 김연아 본인도 얼음에 걸린 것 같다고 그랬고, 만에 하나 진짜 해바라기 씨앗 때문이라고 해도 그걸 악의적인 방해라고 보는 것까진 무리인 것 같아. 포장을 안 한 꽃을 던지는 건 피겨 관람의 매너가 아니라는 정도로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215점이라는 괴물 같은 점수가 아쉽긴 하지만 210점도 정말 말이 안 되는 점수고, 무엇보다 이제 김연아의 연기는 이제 기록이란 거에 연연할 단계는 지난 거 같아.
하긴, 나도 점수가 아쉽기보다는 미처 시도하지 못한 점프까지 해내면 얼마나 더 화려했을지 궁금하더라니까.
바로 그거지. 너도 이제 연아신의 연기 자체를 즐기게 됐구나.
연기를 즐기게 된 건 맞는데 나는 연아신이라고 한 적 없거든? 종범신, 연아신, 무슨 다신교 신자냐?
왜 이래, 나만 쓰는 어휘가 아니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냥 무의미하게 신이라는 단어를 쓸 거 같아?
엄청나게 잘하는 건 아는데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피겨퀸이란 표현을 써도 되잖아.
바로 그거야. 보통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에 이른 선수를 호칭하는 가장 보편적인 호칭은 왕이나 황제지.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킹’ 르브론 제임스, 축구 황제 펠레처럼. 어릴 때부터 탁월한 재능을 보일 경우에는 스타크래프트의 이윤열이나 축구의 카림 벤제마처럼 천재라는 호칭이 붙고. 그런데 단순히 최고를 넘어 비교대상이 없는 절대적 존재가 되면 이런 호칭들로도 뭔가 부족하게 느껴지거든. 이럴 때 인간을 수식하는 표현이 아닌 다른 표현이 나오는 거지.
들짐승 마르코?
떽! 마르코의 힘과 운동 능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그거랑은 다르지. 우선 전성기 호나우지뉴와 메이저리그의 페드로 마르티네즈에게 붙었던 외계인이란 호칭이 있어. 물론 생긴 게 지구인 같지 않아서라는 이유도 있지만. 기량이 절정이었던 시기의 호나우지뉴는 당대 최고의 공격수이던 맨유의 루니조차 “어떻게 저런 플레이가 가능할까”라고 말할 정도로 수비수를 가지고 놀았고, 전성기의 페드로에게 7이닝 동안 단 2안타만을 기록하며 패배했던 뉴욕 양키즈의 감독은 “야구는 인간이 하는 것이고, 페드로는 인간이 아니므로 우리는 한 게임도 지지 않았다”는 말을 했지. 그만큼 굉장한 사람들이었어. 이렇게 엄청난 기량차를 보여주는 동시에 뭔가 외계인 이미지와는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신이라는 호칭이 붙는 거지.
그럼 연아신, 종범신 말고도 신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물론이지. 종범신의 데뷔시절부터의 라이벌인 ‘양신’ 양준혁도 있고, 구느님의 자매품인 ‘효느님’ 효도르, 역시 종합격투기 선수인 ‘료토신’ 료토 마치다, 복싱 선수인 ‘파퀴신’ 매니 파퀴아오 등등이 있지.
그거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호칭 맞아?
아니, 그렇진 않아.
굉장히 떳떳하게 대답한다?
물론 대부분은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붙인 호칭이야. ‘본좌’라는 표현 이후 자주 쓰이는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아주 터무니없는 건 아니라고. 아까 비교대상이 없는 존재라고 말했지? 이번에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점수 차이 봤지? 무려 40여 점 차이야. 이제 김연아에게 라이벌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궁금해지는 점수지. 너도 알겠지만 피겨 스케이팅 채점은 기술 점수와 예술 점수로 구분하는데 김연아는 이 두 영역을 다 잘한다기보다는 두 영역의 구분을 없앤 단계에 이른 거 같아. 완벽한 점프와 풍부한 표정, 창의적인 안무가 따로 따로 노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하나의 쇼로 귀결되는 거지. 그에 반해 아사다 마오는 타라소바 코치 때문인지 본인 고집 때문인지 점프 기술에 목을 매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놓치고 있어. 말하자면 점수 차이는 부수적인 거고 김연아는 이미 다른 패러다임에서 놀고 있는 거지. 다분히 개인적인 의견일지 모르겠지만 단순히 현역 최고 선수를 뜻하는 여왕이란 단어로는 현재의 김연아를 수식하는 게 부족할 거 같아.
그래서 신이다? 그럼 종범신은? 솔직히 이종범이 세계에서 야구를 제일 잘하는 건 아닐 거 아니야. 그리고 아깐 양준혁도 신이라며?
네 말대로 이종범이 피겨계의 김연아나 격투기의 효도르처럼 세계에서 제일 잘하는 선수는 아니야. 하지만 젊었을 땐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완벽한 5툴 플레이어, 그러니까 정확한 타격, 장타 능력, 수비 능력, 좋은 어깨, 빠른 발을 갖춘 선수였던 야구 천재가 오랜 부진과 은퇴 위기까지 넘어서고 나서 나이 40에 팀의 10회 우승 도전의 핵심 멤버가 됐을 때 과연 어떤 말로 수식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이종범 역시 김연아와는 다른 의미로 기록에 연연할 단계를 넘어선 선수인 거고, 종범신이라는 타이틀이 결코 어색하지 않다고 생각해. 양준혁은 조금 다른 경우지. 이종범이 부활의 서사극으로 신이 됐다면 양준혁은 정말 부진이나 슬럼프라는 어휘를 모르고 40이 넘도록 야구를 하면서 팬들의 절대적 신뢰를 받는 ‘양신’이 됐어. 만약 그 둘의 데뷔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과정을 본 사람이라면 신이란 표현에 그다지 거부감을 느낄 거 같진 않아.
그럼 그 중에 네가 가장 숭배하는 신은 누구야? 당연히 연아신인가?
글쎄? 숭배는 아닌데 연아신이 고난도 점프를 앞뒀을 때나 득점이 필요할 때 종범신이 타석에 들어서면 나는 그의 이름을 불러.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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