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유혹> 3회 SBS 월 밤 8시 50분
김순옥 작가의 진정한 주특기는 복수의 쾌감보다 인물들이 옥죄어오는 위기 때문에 공포에 떨다가 그것이 바로 눈앞에 닥친 순간 반전에 가까운 임기응변으로 빠져나가는 패턴의 묘사에 있다. 교빈을 피해 높은 건물에서 뛰어내린 SBS <아내의 유혹>의 은재나 첫 회부터 물속으로 추락한 <천사의 유혹>의 아란(이소연)처럼 막다른 골목에 처한 인물들의 돌발행동은 그러한 패턴을 단적으로 시각화하는 장면이다. 이는 그 어떤 공들인 캐릭터 묘사보다 빠르게 그 인물에게 감정을 이입시키고 극에 긴장감을 부여하는 김순옥 특유의 장기다. 특히 그들이 악역일 경우 권선징악의 쾌감을 주면서도 묘하게 연민을 불러일으켜 MBC <그래도 좋아>의 명지(고은미), <아내의 유혹>의 애리(김서형)처럼 인상적인 악역이 탄생하기도 한다. <천사의 유혹> 3회에서도 그 장기가 마음껏 발휘되었다. 현우(한상진)에게 거짓을 들켜버린 아란은 때 마침 일어난 교통사고에서 중태에 빠진 그를 운전석으로 옮기고 혼자 집으로 돌아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연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방 앞에 떨어뜨린 진흙은 시동생에게 의문을 남기고, 아란은 가상의 편지로 의심을 벗어난다. 곧이어 차량 블랙박스 장면에서도 아란은 숨 가쁘게 집으로 돌아와 영상에 찍힌 자신의 옷을 불태운다. 그 와중에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차례로 등장해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인물들의 이러한 임기응변이 김순옥의 작법과도 닮아있다는 것이다. 일회적 에피소드로 한회 분량을 채울 수 있는 일일극에서 좀 더 치밀한 전개가 필요한 한회 1시간 분량의 미니시리즈로 넘어오자 그 단점은 여실히 드러난다. 그녀의 특기였던 수많은 사건 생성과 속도전은 사실 갈등을 차곡차곡 쌓아올릴 수 있는 능력의 부재와 짧은 호흡을 감추기 위한 궁여지책에 가까웠던 것이다. 얼굴에 점을 찍든 전신성형을 하든 그 기본 체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글 김선영

<놀러와> MBC 월 밤 11시 15분
도통 말을 하지 않는 인물은 토크쇼에 적합한 게스트가 아니다. 그러나 너무 말이 많은 것 역시 토크쇼의 최상의 게스트가 될 수 없다. 이미 ‘폭로’에 가까운 수위의 에피소드를 대거 방출한 바 있는 고영욱과 신정환, 그리고 오랜 방송기간동안 토크쇼는 물론 아침 방송에까지 출연해 개인사를 탈탈 털어낸 이병진과 홍록기가 그 주인공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도 뛰어나고, 사생활을 공개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적지만 더 이상 이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어제 <놀러와> 제작진은 굳이 게스트들로부터 이야기를 유도해내기 보다는 이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도록 방임하는 것을 선택했다. 포맷을 통해 소주제를 던져주지만, 고영욱의 이야기는 언제나 디테일한 ‘폭로’로 이어졌고, 신정환은 굳이 진행자가 정리를 해 주지 않아도 고영욱의 이야기에 일관된 반응을 보였다. 홍록기와 이병진은 큰 웃음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노련하게 방송의 흐름을 읽어 칠 때와 빠질 때를 적절히 조율 했다. 그래서 어제의 <놀러와>는 아주 모처럼 유재석의 편안한 모습을 볼 수 있는 방송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게을렀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골방에 둘러앉아서 배용준과의 추억담 자랑 경쟁에 열을 올리는 게스트들 앞에서 가장 적절한 진행자의 대응은 그들이 분위기에 휩쓸려 숨겨둔 이야기를 스스로 자연스럽게 꺼낼 때까지 웃으며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힘을 빼야 할 때를 알고 있는 것, 어젯밤 발견한 <놀러와> 제작진의 또 하나의 장점이다.
글 윤희성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