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프로그램 하나 그만 두신 것 때문에 시끌시끌했지요? 그에 비해 MBC <오 마이 텐트>의 단독 MC로 낙점 된 경사는 그다지 크게 언급들을 안 하더군요. 세상인심이라는 게 남의 잘 된 일보다는 안 된 일에 더 관심이 쏠리는 모양입니다. 사실 느닷없는 하차의 숨은 배경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연일 우후죽순 쏟아지는 기사들이 오히려 제동 씨의 입지를 흔드는 건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던 걸요. 그런데 명언 좋아하시니 ‘탈 수 없는 말은 없고, 낙마하지 않는 사람도 없다’라는 외국 속담도 아시려나요? 누구나 한번쯤은 예상치 못한 큰 낭패를 당하기 마련이고, 사람이 하고자 들면 못 할 일이 없다는 얘기지요. 이게 참 맞는 소리인 게, 살면서 한 번도 낙마하지 않은 사람을 제 오십 평생 본 적이 없어서 말이죠. 예를 들면, 재력으로나 미모로나 뭐 하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재벌가 사모님도 불미스런 일에 연루되어 크게 망신을 당하고 그러잖아요. 뭐 제동 씨야 어려운 시절 겪어 보셨다니 내리막이 있으면 또 오르막이 있는 법이라는 거, 누구보다 잘 아실 터라 솔직히 크게 걱정은 안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오 마이 텐트>라는 기회가 평지에서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이라 믿고 있는데, 제동 씨는 어떠세요?

어르신들을 만날 때 더욱 빛났었지요

<오 마이 텐트>에 첫 게스트로 초대 된 자신을 만나고자 떠난 길, 강원도 산골의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를 걷고 있는 제동 씨를 보고 있자니 자연스럽게 오래 전 일요일 아침 방송되던 MBC <까치가 울면>이 생각났어요. 제동 씨가 MC를 맡은 첫 프로그램, 맞죠? 홀로되신 어르신들께 만남의 자리를 주선하는 ‘만나면 좋은 친구’라는 코너도 떠오르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교복을 입고 졸업장을 받으며 기뻐하시던 모습도 눈에 선합니다. 또 나중엔 소식이 끊긴 가족을 찾아 데려오는 가족 상봉 코너가 생겨 눈물 깨나 빼던 기억도 나고요. 그런데 무엇보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어르신, 저녁은 드셨습니까?”하고 말을 건넬 때의 제동 씨의 사투리 섞인 억양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어요. 외지인들, 특히 뺀질뺀질한 서울내기들을 낯설어 하시는 시골 어르신들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제동 씨만 한 인재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어디 그뿐인가요. 오지 노인들에게 의료봉사를 실천한 MBC <느낌표> ‘산 넘고 물 건너’ 때도 참 훈훈하고, 정겹고 좋았지요. 똑같이 연예인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이라 해도 SBS <야심만만>이나 KBS <스타 골든벨> 때와는 다른, 뭐랄까? 어머님이 자식 생각하며 손수 지으신,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당신의 배려와 예의, 다시 돌아와줘서 고마워요

듣자니 그 동안 ‘웃기지 않는다, 너무 지나치게 진지하다’는 지적이 사방에서 들려와 고민스러웠다면서요? 그런데 진짜 너무 진지해서, 그래서 집단 리얼리티에 적응하지 못해 내리막길이었던 거라 여기는 거예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옷을 입은 데다 덧붙여 과한 치장까지 했던 게 탈이 낫지 싶어요. 자리만 펴놓으면 버릇처럼 이효리를 위시해 이름만 들어도 입이 벌어질 여자 연예인들과의 갖가지 에피소드라든지, 강호동이나 유재석 등의 국민 MC와 호형호제하는 가까운 사이임을 슬쩍 슬쩍 풀어놓곤 했잖아요. 국민타자 이승엽이나 가수 윤도현의 얘기도 빼놓을 수 없겠고요. 그게 저는 마치 실력 없는 신랑감이 잘나가는 자기 아버지나 집안 등에 업고 선 시장에 나온 꼴로 보여 거부감이 들던 걸요. 물론 제작진의 부추김이 한몫 했으리라 짐작은 가지만, 어쨌거나 <까치가 울면> 적의 소탈하고 속 깊은 김제동은 온데간데없이 연예인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김제동만 보이더란 말입니다. 김제동이란 사람은 초특급 스타들이 아닌, 우연히 마주친 보통 사람들과 있을 때 훨씬 빛이 난다는 사실을 모르셨던 걸까요? 이번 홍천에서의 1박 2일 동안 보여준, 장터로 향하는 할아버지의 트럭 위에 가스통과 함께 실린 모습이, 장터에서 아주머니들에게 찹쌀도넛을 돌리는 모습이, 캠핑장의 다른 가족에게 묵은 김치를 얻는 모습이 저는 연예인들과 실없는 농담 주고받을 때보다 백배, 천배 마음에 듭니다.

늘 주저하고 망설이느라 타이밍을 놓치는 게 문제라는 제동 씨. 연예 버라이어티에서 주저하고 망설였다간 무능하단 소리 듣기 십상이지만 <오 마이 텐트>에서의 주저와 망설임은 배려와 예의가 될 테니 걱정 붙들어 매세요. 일상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길’ 위로 다시 돌아온 걸 쌍수 들어 무한 환영합니다!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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