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부산국제영화제 (이하 PIFF)가 10월 16일 저녁 7시 폐막식과 폐막작 상영을 끝으로 9일간의 축제를 마무리한다. 할리우드와 한류 스타들로 눈이 부셨던 레드카펫을 생중계하며 화려한 시작을 알렸던 PIFF는 연일 초특급 게스트들과 거장 감독들의 방문으로 축제 분위기를 이어갔다. 16일 결산기자회견에서 김동호 위원장은 “금년 영화제는 전 세계를 위기에 몰아넣은 경제적 상황과 신종 플루로 많은 어려움이 예상됐지만 관객들의 성원으로 무사히 마무리되었다”며 열네 번째 축제를 성공적으로 치러 낸 자신감을 나타냈다.

PIFF 수상작 <파주>, <나는 곤경에 처했다!> 등 한국영화 약진

아시아의 신인 감독들을 발굴하는 경쟁부문인 뉴 커런츠상은 샤우캇 아민 코르키 감독의 <킥 오프>와 소상민 감독의 <나는 곤경에 처했다!>가 수상했다. 이라크 쿠르드족의 난민촌이 세워진 축구경기장을 하나의 소우주로 표현한 상징주의적 스타일을 쓰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은 <킥 오프>에 대해 장 자크 베넥스 심사위원장은 “어두운 삶을 묘사하지만 절망적이지 않은 진정성에 만장일치로 수상을 결정했다”고 호평했다. 무기력한 젊은 시인의 연애담을 기묘하고 유쾌하게 그린 <나는 곤경에 처했다!>는 “신선한 이야기에 정교한 연출력은 신인답지 않은 성숙한 데뷔작을 탄생시켰다”며 새로운 유망주의 출현을 반겼다. 올해 신설된 플래시 포워드상은 비 아시아권 국가의 신인 감독들에게 주어지는 상으로, <루퍼트와 에버트>의 자이다 베르그로트 감독에게 첫 수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아버지의 학대로 인한 두 형제의 갈등을 치유에 가깝게 그려낸 영화에 강수연 심사위원장은 “핀란드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함과 강한 미장센”이 돋보였다고 평했다. 이 밖에 아시아 영화진흥기구에서 수여하는 넷팩상은 박찬옥 감독의 <파주>가, 관객들이 직접 뽑은 영화에게 돌아가는 KNN 영화상은 지앙 웬리 감독의 <안녕 할아버지>가 수상했다.

역대 최고, 최다, 최대 규모의 열네 번째 축제

올해 PIFF는 국내에서 개최되는 어떤 국제영화제와 비교해도, 역대 PIFF와 비교해도 최대 규모다. 70개국 355편의 상영작은 그 자체로도 엄청난 편수를 자랑하지만 월드 프리미어 13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는 98편이나 증가했다. 그러나 단순한 물량 공세에 그치는 것이 아닌 영화의 영양 성분을 분석한 짜임새 있는 식단이 돋보였다. <굿모닝 프레지던트>, <페어러브> 등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와 <나는 비와 함께 간다> 같은 초특급 스타들을 초대할 수 있는 화제작, <하얀 리본>, <아이 엠 러브> 등 예술성이 검증된 영화까지 그야말로 영화의 진수성찬이었다. 여기에 14년의 영화제 역사상 한 번도 상영된 적 없는 아프리카 영화를 초청하고, 방글라데시나 타지키스탄 등 그동안 아시아 영화계에서 소외되었던 지역의 영화들을 발굴해 국제영화제로서의 외연을 넓혔다. 올해 PIFF에선 영화제의 또 다른 주인공이었던 엄청난 게스트들의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조쉬 하트넷, 틸다 스윈튼, 기무라 타쿠야 등 압도적인 게스트들과 진심으로 ‘거장’이라 칭할 수 있는 코스타스 가브라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 등의 방문은 PIFF에 힘을 실어주었다. 또 14년간의 시간이 노하우로 쌓였음을 증명하는 지아장커, 코스타스 가브라스, 다리오 아르젠토의 마스터 클래스조니 토 등의 특별전으로 구성된 수준 높은 프로그램들은 관객의 지지를 얻었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한 아시안필름마켓 또한 한층 더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참가국이 지난해 28개국 132개 업체에서 42개국 534개 업체로 늘어나, 시장의 덩치가 커졌다. 한국영화가 작년의 침체기를 점차 벗어나고 있는데다 최근 몇 년 새 급성장 하고 있는 중국과 대만의 바이어들이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마켓에서는 11-13일간 43편의 영화가 상영되었고, 이를 통해 <워낭소리>와 <고사> 등의 한국영화가 해외에 판매됐다. 이 밖에도 PIFF는 현재의 영광에 안주하려는 것을 경계하는 움직임이 강했다. 3D 영화 컨퍼런스와 온라인 필름 마켓을 신설하고, 유럽영상산업기구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프로듀서 아카데미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의 공동제작 네트워킹의 초석을 다졌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예전과 같은 활력을 찾을 수 없거나 유명무실해져가는 해외 영화제들이 나타나고 있는 요즘, PIFF의 행보에서 미래에 대비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도 많더라

그러나 열네 번째 PIFF가 시작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영화제가 10회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예전의 활력을 찾기가 힘들다는 계속된 외부의 평가와 함께 올 초부터 제기되어온 정치적인 공세는 급기야 ‘좌파 영화제’라는 색깔론으로까지 번졌다. 그러나 PIFF는 정치적인 공세에 대응하기 보다는 영화제 자체에 내실을 기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신종 플루 확산에 대한 불안감으로 관객 수가 작년에 비해 2만여 명 감소한 17만 3516명으로 집계됐지만 영화제의 시작과 끝을 지켜 본 바 관객 수가 줄었다고 해서 이번 영화제가 실패했다고 말할 수 없다. 물론 야외상영장 내의 소음 문제와 잦은 GV(관객과의 대화) 취소 등 진행상의 잡음은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지만 “영화제에만 전력투구하는 것이 전부”라는 원칙으로 치러 낸 PIFF는 국내에서 열리는 많은 영화제들에게 ‘최고참 형님’다운 모범을 보였다. 사실 그 원칙은 너무도 자명하고 단순하지만 사실 많은 영화제들에서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는 것이기도 하다. 관객에게 좋은 영화를 선보이고 알찬 축제를 만드는 것. 이 두 가지 기본기에 있어 올해 PIFF는 충분히 성공적인 결실을 얻었다. 이것이 김동호 위원장의 마지막 임기이기도 한 내년 15회 PIFF를 기대하는 이유다.

제14회 PIFF 경쟁부문 수상작

뉴 커런츠상
수상작: 샤우캇 아민 코르키 <킥 오프>
수상작: 소상민 <나는 곤경에 처했다!>
특별 언급: 삼페드로 <마닐라의 청춘, 빛과 그림자>

플래시 포워드상
수상작: 자이다 베르그로트 <로퍼트와 에버트>
특별 언급: 호콘 리우 <미스 키키>

선재상
수상작: 김재원 <닿을 수 없는 곳>
수상작: 바실 미로네 <월척>

PIFF메세나상
수상작: 권우정 <땅의 여자>
수상작: 사바 데완 <또 다른 노래>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FIPRECI)
수상작: 샤우켓 아민 코르키 <킥 오프>

아시아 영화진흥기구상 (NETPAC)
수상작: 박찬옥 <파주>

KNN 영화상 (관객상)
수상작: 지앙 웬리 <안녕 할아버지>

글. 부산=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부산=이진혁 (eleven@10asia.co.kr)
사진. 부산=채기원 (t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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