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리얼리티를 담보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드라마는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여전히 신분 상승을 최종 미션으로 제시하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인기를 얻고, 사실과 다른 해석을 통해 한층 거대하게 포장된 영웅담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태에 ‘돈’과 ‘자동차’라는 지극히 즉물적인 소재를 선택한 KBS <열혈 장사꾼>은 참신하면서도 위험한 프로젝트처럼 보인다. 그러나 10월 7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에서 열린 드라마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지병현 감독은 이것이 ‘삶의 태도’에 관한 이야기라고 입장을 밝혔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장사

만화가 박인권의 원작 <열혈 장사꾼>은 스포츠 조선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장사꾼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하류를 통해 장사의 비결과 현대 사회에서의 처세에 대한 이야기를 그려 남성 독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인물들이 몸담고 있는 자동차 세일즈라는 세계와 그 곳에서의 성공을 위해 이들이 선택하는 방법들은 물론 원작과 유사하겠지만, 제작진은 장사를 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드러나는 삶의 방식들을 그리는 데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예컨대, 물건을 팔 때 하류는 무조건 달려가서 방법을 생각하는 스타일이라면, 재희는 사전에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스타일이다. 그리고 승주는 하류처럼 저돌적이고, 재희처럼 겉으로 차가워 보이지만 이들과 달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팔아내는 사람이다. 나쁜 수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지병현 감독의 설명은 각 인물이 대표하는 가치를 짐작케 한다. 이에 더해 장사 기술을 하류에게 전수하는 매왕으로 이원종, 하류의 가슴 아픈 첫사랑으로 차수연, 실수 많은 세일즈맨으로 조진웅 등 개성 강한 조연들이 대거 출연해 다양한 캐릭터들을 선보이게 된다. 돈을 버는 일인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기도 한 ‘장사’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하는 <열혈 장사꾼>이 과연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일단, 밤샘 촬영을 하고 행사장으로 달려왔다는 감독과 배우들의 이야기를 통해 적어도 이들이 ‘열혈’이라는 사실은 입증 이미 되었다.

온 몸으로 부딪히는 자동차 영업사원 하류, 박해진
드라마가 구성되기 위해서 주인공은 응당 가진 것 없이 위기에 처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류는 돈도, 학벌도, 인맥도 없는 그야말로 ‘맨발의 청춘’으로 설정되었다. 그 대신 그에게 주어진 것은 지극히 추상적인 용기, 끈기, 그리고 두뇌 싸움에서 지지 않을 만큼의 지혜와 같은 힘이다. 부모님의 사업 실패로 상처를 받은 그는 돈에 청춘을 걸고 5년 안에 10억을 모으겠다는 목표 하에 ‘독종’이라는 소리를 감내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에 매진한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소실점을 향해 달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승주(최철호)와 닮아가는 영혼의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다. “촬영을 하면서 하류가 이렇게 힘들게 산 친구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대본을 읽었을 때보다 훨씬 역경과 고난, 시련이 많은 인물이다. 다행히 내가 체력이 좋아서 4시간을 뛰어도 아무 이상이 없더라.”

미모의 자동차 영업 4대천황 김재희, 채정안
MBC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도, SBS <카인과 아벨>에서도 채정안은 여리고 청순한 인물을 연기 했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통한 캐스팅이었겠지만, 다소 수동적인 역할에 한정된다는 것은 배우에게는 위험한 일이다. 그래서 <열혈 장사꾼>을 통해 보다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변신한 그녀의 연기는 더욱 기대를 모은다. 집안의 몰락으로 무용가의 꿈을 포기하고 자동차 영업사원 7년차에 접어든 재희는 타고난 외모 덕분에 뛰어난 실적을 거두지만, 역시 그 미모 때문에 여성 영업인으로서 많은 오해와 소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열혈 후배인 류에게 직업적 조언자로 힘이 되어 주기도 하고, 그의 열정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따뜻한 카리스마가 있는 인물이다.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서 장사를 되게 잘한다! 타고난 외모를 장사에 이용하는 지혜도 있다.”

꿋꿋하고 명랑한 보험 조사원 민다해, 조윤희
겉으로는 밝고 명랑하고 마냥 활기차 보이지만,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마저 행방불명된 후 혼자 힘으로 살아 온 다해는 남모르는 상처를 간직한 인물이다. 친척집을 전전하며 눈치가 빨라졌고, 가진 것이 없는 덕분에 남들을 배려하는 법을 배운 그녀는 보험회사의 손해사정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류를 만난 다해는 비슷한 상처를 숨기고 있는 그의 여린 마음을 알아채고, 동류의식 때문인지 점점 그에게 끌린다. “다해는 원작에서 가장 많이 각색되고 달라진 인물이다. 자동차 사고로 하류를 처음 만나서 처음에는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되지만 점차 그의 진실 된 모습을 보게 되면서 호감을 갖게 된다. 기본적으로 밝고 명랑하지만 눈물도 많고, 동정심도 많은 인물이다.”

성공 지상주의의 화인모터스 사장 강승주, 최철호
드라마가 아니라면 승주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야 마땅한 인물이다. 출중한 외모를 바탕으로 분야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외국어 실력 또한 뛰어난 그는 화인모터스의 사장이자 자동차 세일즈 업계에서 가장 공격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인물이다. 힘들게 지금의 자리를 얻은 만큼 누구에게도 추월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때로는 의리와 양심을 외면하기도 하는 그에게 사랑이나 감정은 성공에 있어서 방해물이 될 뿐이다. “집사람이 <파트너> 이후에 올해는 좀 쉬라고 하더니 이 작품 시놉을 읽고 나서 홍삼까지 사 주면서 꼭 하라고 권하더라. 악역으로 볼 수 있겠지만 승주는 분명 악한 사람은 아니다. 처세술에 능하고 자유분방하고 와일드한 면이 많이 강조될 것 같다.”

관전 포인트
사실 ‘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는 이전에도 있었고, 그 대표격인 SBS <쩐의 전쟁>은 <열혈 장사꾼>과 마찬가지로 박인권의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 졌다. 그 덕분에 <열혈 장사꾼>의 세계관과 캐릭터는 많은 부분 <쩐의 전쟁>을 떠올리게 한다. 가진 것 없지만 온 몸으로 세상에 부딪히며 절대 고수로부터 비법을 전수 받는 하류의 모습은 <쩐의 전쟁>에서 전설적인 사채업자에게 돈에 관한 기술을 전수받던 주인공의 모습과 겹쳐있다. 더욱이 사랑과 생활에 천착하기 보다는 주인공의 미션 해결에 극의 초점이 맞춰져 있는 균형감 역시 <쩐의 전쟁>과 유사한 리듬감을 예상케 한다. 그러나 사채업자를 미화했다는 논란이 있었던 <쩐의 전쟁> 비해 훨씬 시청자 친화적인 소재인 자동차 세일즈는 <열혈 장사꾼>에게 좀 더 넓은 예상 타깃을 마련해 준다. 그런 점에서 모든 사람이 소유하는 차와 모든 사람이 만나는 장사꾼이라는 소재를 통해 시청자와의 넓은 접점을 마련한 <열혈 장사꾼>은 무리한 도박보다는 치밀한 전략에 따른 전개를 보여줘야 할듯 싶다.

사진제공_KBS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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