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인형인 줄 알았다. 아이스크림을 내밀며 발그레한 볼을 빛내던 광고 속의 꼬마 숙녀도, 단편영화 <망막>에서 방 안에 가득한 인형들보다 더 큰 눈을 감았다 뜨는 어린이도 어찌나 인형처럼 생겼는지 그 모습 그대로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던 최아라가 훌쩍 큰 모습으로 통신사 광고 속에서 청춘스타들과 나란히 등장하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들 했다. 하지만, 키가 더 자라고, 미소가 자연스러워 지는 것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변화일 뿐이다. 정말로 잘 자란 것은 “진짜로 네가 하고 싶을 때 다시 시작하자”는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 정말로 카메라 앞에 서고 싶은 날을 기다렸던 소녀의 마음속에서 매일매일 단단해 지는 꿈이었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소녀의 웃음

꿈의 씨앗이 새싹을 틔웠던 것은 “사춘기가 빨리 시작된”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또래들이 아이돌이 되어서 무대를 누비는 것을 보면서는 가수가 되고 싶기도 했고, 말하자면 “김소은 언니나 박보영 언니처럼” 연기를 하고 싶기도 했다. 낮잠만 자고 일어나도 하고 싶은 일이 바뀔 나이에 소속사를 찾고 연기 수업을 받을 정도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최아라가 그녀만의 절충안을 찾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속 스캔들>이나 <미녀는 괴로워>처럼 극 중에서 가수 역할을 하면 연기도, 노래도 다 할 수 있을 테니까 연기를 선택 하면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하하!” 두 개의 미래를 양팔 저울에 올려놓은 깍쟁이라고 보기엔 그 미소가 너무나 천진난만하고, 그저 농담으로 듣기에는 두 눈에 확신이 넘쳐난다. 그리고 균질하지 않게 드러나는 그 느낌들은 이제 열다섯이라는 그녀의 나이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다. “성장판이 아슬아슬하게 멈추지 않고 있어서 아침마다 기지개를 크게 켜 줘야 하는” 이 무렵에는 오늘 생각이 자라면, 내일 마음이 자라고는 하니까 말이다.

“저, 겨우 열다섯이에요”

그래서 겉보기에는 다 큰 처녀 같지만, 구두를 벗고 제 옷차림으로 돌아온 최아라는 씩씩하고 유쾌한 딱 십대소녀의 모습이다. 콧등에 주름을 잡으며 “에이, 아시잖아요”라고 눙치거나 박수를 치며 크게 웃을 때는 문득 소년의 싱그러움이 스칠 정도다. “사람들이 외모만 보고 새침때기 같다고 생각 하세요. 그런데 실제로 전 되게 털털해요. FT아일랜드 <바래>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그런 원피스는 정말 일할 때만 입어보는 거죠. 평소에는 언제나 바지에 티셔츠 차림이거든요”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약간의 억울함 마저 묻어난다. “평소에 용돈을 받으면 먹는데 제일 많이 써요. 광고나 화보가 잡히면 갑자기 운동 하고 다리 주무르고 다이어트 법 찾아보고 그래요”라고 말하면서도 아직 어리니까 잘 먹고 건강한 게 최고라고 굳게 믿는 열다섯은 그래서 누구보다 확실하게 배우가 된 자신의 미래를 믿는다. 그 소망조차 앞으로 자라고 여물어질 날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말랑말랑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덕분에 최아라는 요즘 고민이 많다. “인터넷에 보면 제가 광고 같이 찍은 선배님들이나 FT 아일랜드 이홍기 오빠 험담을 했다는 댓글들이 있더라구요. 전 그런 적 없는데 속상하죠. 그리고 제일 충격을 받았던 건 ‘얘 왜 갑자기 나와? 대학 가려고?’ 라는 글이었어요.” 엄마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었던 이야기의 문장을 끝맺기도 전에 골리앗의 엄지발톱만큼 커다란 눈망울이 부풀어 오른다. 보는 마음은 안쓰럽지만, 지금은 울어도 될 때다. 쉽게 다치고 쉽게 치유될 수 있는 지금이야 말로 눈물마저 꿈의 싹에 내린 단비처럼 흡수 할 수 있는 시기다. 아니나 다를까 쓱쓱 눈물을 훔친 최아라의 목소리가 다시 씩씩해져 있다. “아직 전 예고에 갈지, 일반고에 진학할지 그것도 결정을 못했는걸요. 저, 겨우 열다섯이에요.”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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