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국제 시사 다큐멘터리 가 8월 14일로 200회를 맞는다. 2005년 4월 29일 첫방송된 후 4년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는 우리에게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사건과 비극의 현장을 대한민국 시청자들의 눈앞에 펼쳐보였다. 총알과 돌이 날아다니는 현장을 찾아가고 풍토병 예방 주사 자국 사라질 날 없이 100여 개국을 오간 제작진들의 피와 땀이 어린 결과다. 8월 14일과 8월 21일, 2주에 걸쳐 방송될 200회 특집은 ‘1부-지상 최후의 풍경’과 ‘2부-희망은 어디에나 있어야 한다’로 구성되었다. 마다가스카르와 케냐, 필리핀을 찾아간 1부에서는 인간의 과욕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문명과 사람들을 담았고 배우 박진희와 권오중이 미얀마와 우간다 난민들을 돕기 위해 제작진과 함께 떠난 2부에서는 고통 받는 이들을 치유하고 희망을 찾아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동안 길고도 험한 여정을 걸어 온 제작진들을 만났다.

200회 특집으로 이번 주 방송되는 ‘지상 최후의 풍경’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달라.
이정식 팀장
: 부제가 ‘사라져 가는 것들’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범선을 타고 상어를 잡던 베조 족은 샥스핀으로 상징되는 인간의 탐욕에 의해 살아갈 길을 잃게 됐고, 케냐의 오기엑 족은 무분별한 개발에 의해 숲과 함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또 필리핀 오지의 타우바투 족은 구석기 시대의 문화를 간직하고 사는 이들이었는데 학자와 선교사들이 그들의 삶의 터전에 몰려 오면서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인간의 아집이라고 할 수 있는, 외부 문화를 누군가에게 강제로 이식하려는 의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특집은 인간에 의해 인간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문제제기다.

“‘전통이란 이름의 폭력, 여성 할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타우바투 족의 취재 같은 경우 접근 자체가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은데 뒷이야기가 궁금하다.
이영호 PD
: 를 만든 지 4년째인데 그 중 이번이 가장 힘든 취재였다. 한국에서 출발해 온갖 교통수단을 이용해 도착하는 데 꼬박 2박 3일이 걸렸다. 타우바투 족은 필리핀에서도 1978년에 처음 발견된 이들인데 그 존재가 알려지자마자 전 세계 선교 단체들의 선교 포인트가 되어 지금은 고유의 문화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50가구 정도라고 한다. 우리는 운이 좋았는지 우기가 오기 직전 동굴 생활을 위해 이주하려는 한 가족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옷도 거의 걸치지 않고 음식을 만들 때는 부싯돌과 작은 철 조각을 사용해 원시 그대로의 방식으로 불을 붙인다. 기본적으로 채집 생활을 하는데 밀림 속에서 사냥하기가 쉽지 않으니까 큰 야생 달팽이나 박쥐를 많이 잡아먹는다. 나에게도 권해서 박쥐 고기를 먹어보니 약간 닭고기 같은 맛이 났고, 소금도 뿌리지 않았는데 좀 짭짤한 맛이 났다. 이유를 물었더니 박쥐는 거꾸로 매달려 살기 때문에 배설물이 몸에 묻어서라고 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았을 텐데, 아무튼 색다른 체험이었다. (웃음) 그런데 이 사람들이 원시적인 생활 방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생각하는 것까지 미개한 것은 아니다. 그들도 자신들의 부족이 머지않아 사라질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그 가족의 아버지 세대가 지나고 나면 타우바투 족의 정체성은 사라질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세대의 마지막 모습, 인간의 ‘원형’에 가까운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게 나로서도 행운이고 자료로서의 의미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회부터 진행을 맡았던 최윤영 아나운서는 출산 휴가를 다녀온 것 빼고 200회까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앞으로 프로그램에 대한 욕심이 좀 더 있다면.
최윤영
: 를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한다면 내가 그동안 많이 자랐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아이들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다는 거다. 나는 사실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내 아이가 생기면서 세상의 많은 아이들이 가난으로 인해 너무나 고통 받고 있다는 게 정말 안타까웠다. 아이티 아이들에 대한 ‘가난으로 빚은 빵, 진흙쿠키를 아시나요?’라는 아이템이 있었다. 엄마가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아이에게 먹일 게 없어서 흙을 먹여야 하는 심정이 어떤 것일까? 단지 저 아이와 우리 아이 혹은 저 아이와 나와의 차이는 그 땅에 그 때 태어났다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가 세상의 흐름을 정확하게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난민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아이템을 많이 담았으면 한다. 요즘에 드는 욕심은 어린이 난민들이 있는 현장을 내가 직접 찾아가 그들의 고민을 직접 듣고 느끼고 싶다는 거다.

지금까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템은 무엇이었나.
장유진 PD
: 2006년 1월부터 를 만들었는데 제일 처음 맡았던 아이템이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벌어지는 ‘전통이란 이름의 폭력, 여성 할례’였다. 여성 영화제에 갔다가 우연히 영국의 다큐멘터리 PD를 만난 계기로 시작했는데 무작정 할례를 한다는 시기에 그 지방 마을을 차 타고 다니면서 기다리다가 촬영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시도였지만 그 때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가 할례를 받는 것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그것을 계기로 이런 일은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생긴 것 같다.

“로또에 당첨되면 우간다 기아대책본부에 기부하고 싶다”

에서 방송된 뒤 시청자들에 의해 실질적으로 변화가 생긴 아이템이 있다면.
장유진 PD
: 작년 8월 ‘엘살바도르 맹그로브 숲의 아이들’ 편에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방송 후 시청자 게시판에서 그들을 돕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카페를 만들었고 현지 교포들과 한국의 후원자들이 연계해 매달 정기적으로 후원금을 보내서 엘살바도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주고 있다. 회원 수가 450명 정도인데 1명에서 시작해 지금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아이의 수도 16명에 이른다.

사실 PD는 시청자들보다 먼저, 에이즈나 기아 문제 등 현장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일들을 목격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하나.
박정남 PD
: 경기가 지금 만큼 악화되기 전, 제작비의 여유가 약간이라도 있었던 초기에는 출장비를 몽땅 털어주고 오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콩고에 취재를 갔을 때는 내 DSLR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오기 전에 생각해보니 그 카메라를 내가 갖고 있는 것보다 나를 안내해 준 현지인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주고 오기도 했다. 그리고 로또에 당첨되면 우간다 기아대책본부에 기부하고 싶다.

분쟁지역이나 오지에 취재를 가다 보면 위험한 경우도 적지 않을 텐데.
이정식 팀장
: 그렇다. 전쟁터나 재난 현장처럼 총알 날아오고 돌 날아오는 현장에 다니니까 굉장히 위험한데 지금까지 큰 사고가 없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항상 위험을 안고 있는 건 사실이고, 최근 콩고강을 다룬 편에서는 배 위에서 촬영하던 PD가 발을 헛디뎌 아래 파인 홈으로 떨어져 한동안 의식을 잃고 뼈가 부러질 정도로 크게 다쳤다. 그런데 콩고는 의료 환경이 아주 열악하기 때문에 긴급히 후송을 했고 다른 PD가 대신해서 취재를 마쳤다. 풍토병이나 각종 질병, 특히 황열병이나 말라리아 주사 같은 건 다들 몸에 달고 산다.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많은 프로그램이다 보니 PD에게도 직업의식 이상의 사명감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국제 시사 프로그램만의 중독성이나 매력이 있을까.
박정남 PD
: 사실 처음엔 PD들이 해외 나가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도 많이 하다 보면 지겹고, 3년쯤 지나면 출장 얘기만 나와도 머리 아프고 비행기만 떠도 속이 울렁거린다. (웃음) 그런데 는 만드는 사람에게 매번 감동을 준다. 그게 프로그램에 표현되든 안 되든, 세계 구석구석을 다니며 나 스스로 감동을 받고 온다는 게 매번 전선으로 뛰어나가게 되는 동력인 것 같다. 소외받고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 보도할 때마다 내가 이곳을 비추지 않는다면 세상 사람들이 이곳을 모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것을 시청자들이 알아줘서 피드백이 생길 때의 희열 같은 게 있다.
이정식 팀장 : 박정남 PD는 지난 번 그루지야 전쟁 취재로 출장 갈 때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싱가포르에 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웃음) 그런 PD들이 많다.

“시청자들이 우리의 취재 영상을 자료 화면으로 오해하기도”

그만큼 힘든 현장에 다녀오다 보면 방송을 통해 좀 더 ‘생색’을 낼 필요가 있지 않나. (웃음) 는 제작진의 고충에 대해 다소 건조하게 다루는 편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실제 현지 취재라는 것도 느끼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정식 팀장
: 얼마만큼 힘들었다는 걸 방송에서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현장성은 증명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가능하면 자료 화면을 쓰지 않는 게 원칙인데 시청자들이 우리의 취재 영상을 자료 화면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되도록 현장에서 PD를 출연시키려고 하는데 문제는 PD가 촬영까지 모두 하는 1인 시스템인 경우가 많다는 거다. 셀카도 아닌데 자기 모습을 비추기는 힘들지 않나. (웃음)

라고 해서 경기 악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예산 문제로 인한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하다.
이정식 팀장
: 사실 지난해부터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이어지고 있고, 특히 는 해외 제작이기 때문에 환율 상승이나 광고비 하락 등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아 굉장히 힘든 상황이다. 근본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비용 상의 문제를 안게 되었다는 게 쉽지는 않은 문제다. 제작비는 깎이고, 경쟁력이 되는 시청률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은 최대한 효율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눈물겨운 노력을 통해 해 나가고 있다.

힘들게 200회까지 왔다.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이정식 팀장
: 200회까지 온 것도 큰일이지만 우리는 400회, 800회, 1000회까지 길게 꿈을 꾸면서 방송을 만든다. 그리고 200회와 201회가 달라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시청자들의 눈높이와 요구는 시시각각 달라지고 프로그램이 순간순간 진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국가 경제력에 비해 국제 시사 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시각이 그리 발달해 있는 편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한 의 역할은 시간이 지나도 점점 뚜렷해질 거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아이템에 접근하든 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체성은 무엇일까.
이정식 팀장
: 의 본령은 국제 시사 프로그램이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주류의 움직임, 그 안에서의 질서와 이면의 진실을 찾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우리 제 1의 의무다. 매주 그런 아이템을 하나 이상 다루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가 시청자들에게 ‘나와 세계’, 나아가 ‘세계와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성찰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사진제공_MBC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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