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유재하 가요제에서 은상을 받은 후 빅마마, 휘성 등이 소속되어 있는 엠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6년 첫번째 정규앨범을 냈지만 ‘윤형렬’이라는 이름도, 타이틀곡의 제목도 알리지 못한 채 회사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랬던 윤형렬은 2007년 마침내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이하 <노담>)을 통해 스타가 되었다. 그는 “천운이었죠”라는 말로 <노담> 오디션 제의를 받았던 당시를 벅찬 마음으로 회상했다. 그리고 두 번째 작품인 <햄릿>을 통해 자신의 몸짓에 맞춰 관객들의 호흡이 달라졌던 기억을 흥분한 채로 설명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그가 ‘괴물’이라 불리는 콰지모도에 딱 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를 묵직한 울림의 목소리에서 찾는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내뱉는 화술도 한 몫 거든다. 그야말로 2007, 2008년을 오롯이 ‘윤형렬’만의 해로 만들어버렸던 그가 콰지모도로 다시 서울 무대에 선다. 주말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콰지모도 분장 전의 말끔한 그를 만났다.

얼마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고 들었다. 팬들의 걱정이 많던데 몸은 좀 괜찮은가.
윤형렬
: 수술하고 한 달 반이 지났는데, 원래대로라면 2~3달은 쉬어야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번 공연에 대한 주변의 걱정이 많았다. 사실 완전히 괜찮다면 거짓말이지만 견딜 만하니까 (웃음) 하는 거고, 다행히 콰지모도의 의상이 두꺼워서 속에 허리보호대를 해도 티가 잘 안 난다. 그런데 보호대로 압박되다 보니 노래할 때 호흡도 짧아지고 힘이 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다 이 작품으로 사랑을 받아서이기 때문이니까 아프더라도 꾹 참고 있다.

“감정에 있어서만큼은 짐승에 가까운 인물이 바로 콰지모도”

그동안 총 230회 공연을 해오면서 김법래, 윤형렬, 조순창만의 콰지모도가 생겼다. 윤형렬이 표현하는 콰지모도는 어떤 인물인가.
윤형렬
: 사실 3명 다 똑같은 것 같다. 콰지모도는 꼽추에 애꾸에 절름발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수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두려워도 두려운 척하지 않고 좋아해도 일부러 안 쳐다보는 게 사람이기도 한데, 그런 감정에 있어서는 좀 더 짐승에 가까울 정도로 순수한 게 콰지모도 아닐까. 그래서 초연 때부터 내가 잡고 있는 콰지모도는 10~11살 정도의 어린아이로 잡고 있다. 그 정도의 정신연령이라고 최면을 걸고 하고 있다. (웃음)

자신의 감정표현에 숨김이 없는 인물이라고 말했지만, 에스메랄다에게는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지켜보기만 한다. 성스러운 존재로 그녀를 사랑하는 듯한 느낌이다.
윤형렬
: 콰지모도는 부모에게 버림받고 프롤로 손에서 컸기 때문에 그를 아버지처럼 여기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이다. 그런 그에게 에스메랄다는 여자임과 동시에 엄마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그래서 에스메랄다를 차마 내가 손을 대기도 어려운 상대로 생각한다.

그 감정이 에스메랄다가 처음 성당에 들어와 기도를 드리는 ‘이방인의 아베마리아’에서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콰지모도는 그녀를 지켜보고만 있는데, 그때 어떤 생각을 하나.
윤형렬
: 굉장히 피곤할 때는 가끔 집중력이 흐트러질때도 있다. 땀이 많이 나니까 늘어져서 하품이 나오려고도 하는데 그럴 때는 모든 안면근육을 다 이용해서 참는다. (웃음) 에스메랄다가 조심스럽게 기도를 시작하는 모습을 예쁘게만 보다가 점점 슬픈 얘기를 할 때면 내가 지켜주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추악한 모습인 나를 싫어하겠지, 라는 감정까지 가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래 후반에 눈물이 난다. 자기 처지는 생각도 못하면서 (웃음) 에스메랄다가 불쌍해 보이는 지점까지 가는 거다.

“콰지모도는 사실 노래를 노래답게 부르면 안 된다”

말한 것처럼 콰지모도는 꼽추에, 애꾸에, 절름발이다. 분장을 지운 윤형렬은 말끔한 외모를 가지지 않았나. 그런 외모를 가진 이로써 콰지모도의 마음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고 있나.
윤형렬
: 이 세상 누구라도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열등감, 수치심, 절망 이 모든 기억이 콰지모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에게도 남들에게 괄시받았던 기억, 열등의식을 느끼고 음해를 받았을 때도 있었기 때문에 콰지모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물론 100%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허리 아프면서 좀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 (웃음) 수술하기 바로 전 디스크가 오른쪽 다리로 와서 처음에는 다리를 절다가 마지막에는 걷질 못했다. 허리가 아프니까 그 고통이 온몸으로 다 왔었다. 고개가 너무 아파서 하늘을 못 보겠더라. 그러면서 콰지모도는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구나라는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노담>엔 총 54곡의 넘버가 있고, 콰지모도도 많은 곡을 부르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노래는 어떤 것인지.
윤형렬
: 콰지모도를 가장 정형화시켜서 보여줄 수 있는 곡은 ‘버려진 아이’이다. 이 노래에서 제대로 보여줘야만이 그가 정말 불쌍한 아이로 기억되느냐 아니면 에스메랄다의 스토커로 (웃음) 기억되느냐가 결정된다.

이 작품의 노래들은 정말 어려워 보인다. 특별한 레슨을 받은 적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윤형렬
: 콰지모도라는 캐릭터 자체가 사실 노래를 노래답게 부르면 안 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소리를 깔고 긁으면서 하는데 그게 정말 어렵다. 그리고 원래 음역대가 바리톤이 아니었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더 저음으로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짐승스러운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에 대한 연구를 많이 했다. 지금까지 약 150회의 공연을 했는데 그동안 목 상태가 정상일 때 공연을 한 적이 3~4번 정도밖에 없었다. 그 3~4번도 매 공연의 첫 공연이었을거다. 그런데 또 목이 쉬지 않으면 콰지모도의 절절함이 안 나오는 것 같더라.

“무대 위에서 존재감으로 가득 찬 배우가 되고 싶다”

이번에 문종원, 김성민, 최수형과 함께 그룹 포원을 결성했다. <노담>과 <돈 주앙>의 넘버들로만 이루어진 이번 앨범으로 방송활동도 시작했는데 뮤지컬 무대와 방송무대는 어떻게 다르던가.
윤형렬
: 우리의 본업은 뮤지컬배우이고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해준 게 <노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뮤지컬 넘버들로 앨범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대중음악이라고 생각하고 들어도 큰 이질감이 없는 곡들이다. 최근 몇몇 방송을 했는데, 가수로서 무대에 설 때는 윤형렬 자체의 매력을 보여줘야 되기 때문에, 굉장히 멋있는 척을 해야 한다. (웃음) 뮤지컬 무대 보다 포장도 해야 되고 그래서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뮤지컬 배우라고 소개될 때 관객들이 갖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재미가 있다.

이번 <노담>의 서울, 성남 공연이 끝난 이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
윤형렬
: 이후 어떤 뮤지컬을 하더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일단 포원활동에 좀 더 집중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왕 칼을 뽑았으니 사람들에게 포원이라고 말했을 때 ‘포미닛 짝퉁이냐’라는 말 안 나오게 열심히 해야지. (웃음) 인터뷰 때마다 왜 포원이냐고 물으면 “제가 2NE1 팬이고, (최)수형이 형이 포미닛 팬이라서 포원이에요”라고 말한다. (웃음)

그럼 2NE1 멤버들 중에서는 누굴 가장 좋아하나. (웃음)
윤형렬
: 전 실력도 좋지만 예쁜 산다라박을 좋아합니다. 으하하

그동안 했던 인터뷰들을 보니 ‘에너지’에 대한 말을 많이 하던데, 어떤 갈망이 있나 보다.
윤형렬
: 난 좀 센 걸 좋아한다. 으하하. <햄릿>을 할 때였다. 아무런 노래도 대사도 없는 상태에서 내 눈동자가 사르륵 구르는 것에 따라 관객들의 호흡도 달라지더라. 이거구나! 싶고 정말 재밌었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똑같은 몸짓이지만 그 감정이 표현되고 관객들에게 보이는 것 같다. 그런 날에는 스스로도 느낌이 아주 좋다. 그래서 한마디 대사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이제 비로소 본인의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앞으로 ‘윤형렬’이라는 이름의 이미지를 어떻게 남기고 싶나.
윤형렬
: 김선영 씨 같은 배우들은 물론 센 역할도 많이 했고 소리도 워낙 크시지만 무대 위에서의 카리스마가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뭔가 그렇게 압도할 수 있는, 무대에 올랐을 때 존재감으로 가득 차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사진제공_NDPK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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