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 모처럼의 이 편지가 이서정(이지아) 씨를 나무라는 쪽으로만 흐를 것 같아 미안한 마음입니다. 독한 상사 밑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잘 아는지라, 그리고 가뜩이나 고대하던 ‘입봉’이 좌절된 판이라 아린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짝이지 싶어 망설여지네요. 하지만 제 평생 이처럼 속 터지는 처자는 처음 보기에 잔소리 좀 하려하니 약이라 여기고 이해해주기 바래요. 사실 서정 씨 주위에 제대로 된 멘토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닐는지요. 가만 보니 무례하고, 오만하고, 강자에겐 엎어지고 약자는 짓밟는, 겉으로는 스타일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속은 천박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만 아주 널렸습디다. 윗사람이라는 이들도 죄다 그 꼴이니 아직 어린 서정 씨가 뭘 배우겠나 싶어 딱하더라고요. 하지만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지금은 그냥 서정 씨 얘기만 할게요. 어쨌든 이건 서정 씨에게 쓰는 편지니까요.

주위에 하도 본받을 사람이 없어 그런건가요?

박기자(김혜수) 차장이 지난번에 서정 씨 속을 아주 제대로 뒤집더군요. “너는 너무 많은 약점을 보였어. 실수하는 거, 징징거리는 거, 성깔 부리는 거, 준비도 안 된 주제에 다 영근 척 개기는 거”라고 했죠? 서정 씨는 울컥 했겠지만 저는 ‘옳거니!’하고 무릎을 쳤답니다. 구구절절 다 옳은 소리라서요. 어쩜 그렇게 해서는 안 될 실수를 허구한 날 하는지. 업무상의 크고 작은 실수는 물론, 눈치코치 없이 저지르는 말실수며, 개그맨들의 몸 개그에 필적할 사건사고들이 좀 많았어야죠. 제가 상사였대도 박 차장 모양 볼을 꼬집으려 들고 남았을 것 같거든요. 실수란 실수는 혼자 다 저질러 놓고 징징거리다 못해 대들기까지 하니 얼마나 밉상일지 생각해본 적 있나요?

그러나 만약 제 딸이었다면 볼을 쥐어뜯는 정도가 아니라 아마 ‘정신 차리라’며 등짝을 여러 대 후려갈겼을 겁니다. 실수라는 건요, 인정하고, 사과하고, 그 다음 두 번 다시 똑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거예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 서정 씨는 단지 실수에 그치는 게 아니라 개념 자체가 없으시더라고요. 이런 말 했다고 저 보고도 핏대를 올리며 따따부따 덤비려나요? 허나 제 딸아이가 만일 남자 친구가 선물 한 고가의 한정 백을 부여잡고 36개월 할부라는 사실이 처량하다며 꺼이꺼이 울었다면 저는 아이 잘못 키워 놓은 게 기막혀 통곡을 했을 게 분명하거든요. 부모 마음이란 게 너나없이 다 같을 진데 서정 씨 아버님도 이런 정황을 아신다면 한동안 속을 끓이시지 않겠어요? 하지만 서정 씨야 워낙 화려한 패션 세계에 속해있는지라 판단이 흐려질 수도 있겠거니 하고 최대한 이해해보려 마음먹었어요.

징징거리는 거 이제 그만!

그러나 그 후 선배 김민준(이용우)과 서우진(류시원) 쉐프, 두 남자가 선물한 신상 구두를 사양할 생각도 않고 넙죽 받은 건 대체 뭐라 설명할 수 있냐고요. 더구나 서 쉐프의 경우, 단지 일에 대한 답례였거늘 자신을 좋아한다고 착각까지 했으니 원. “재워주고 웃어주고 선물 줘 놓고 이제 와 왜 딴 여자에게 눈을 돌리느냐” 찾아가 따지다니, 제 정신이냐고요. ‘재워주고’라는 말이 나와 하는 얘긴데요. 애당초 제주도 촬영 때 서 쉐프 숙소에서 1박을 한 것도 그래요. 다른 동료들 방도 얼마든지 있을 텐데 왜 밖에서 지지리 궁상을 떨다가 남의 남자 신세를 진답니까. 그때도 망설임 없이 쫄래쫄래 따라갔었죠? 특히 친구 갑주(김시향)를 대하는 몰염치한 태도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습니다. 얹혀사는 처지에 값비싼 핫 아이템을 끊임없이 탐하는 것도, 그러면서 자기 남자에게는 돈 뜯기는 것도 어이없고, 빌려주기 싫다는 옷을 기어이 입고야 마는 무신경도 불쾌하기 짝이 없잖아요.

제가 아는 바이올린 하는 처자 하나도 대책 없이 일 잔뜩 벌여 놓으면 주위 사람이 다 수습해주는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였지만 서정 씨 정도로 구질구질하진 않았거든요. 남자들에겐 이런 어리바리한 민폐 캐릭터들이 착하고 순수한 걸로 어필하는 모양이지만, 서정 씨가 과연 착한 건지 저는 의심이 갑니다. 박 차장이 파면 당했다는 소식에 다른 동료들이 열광할 때는 표정 관리 하다가 옥상에 혼자 올라가 환호성을 지르며 난리 브루스를 추는 걸 보니 소름이 돋던 걸요. 서정 씨는 박 차장이 잘못을 해도, 위기에 몰려도, 너무 당당해서 그게 화가 난다지만 박 차장은 사악한 구석이 있긴 해도 서정 씨처럼 개념이 영 없는 인물은 아니랍니다. 물론 서정 씨는 아직 어리니 세월이 흐르며 차차 스타일 있고 엣지 있는 인물로 거듭나겠지요. 그러나 개념을 갖추지 못한다면 아무리 멋져진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부디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려 할 때, 누군가에게 뭔가를 받게 될 때, 이것이 온당한 일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제발 시도 때도 없이 징징대며 울지 좀 말라고요. 아주 지겨워 죽겠으니까!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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