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 산으로 바다로 피서 가는 거, 물론 좋다. 하지만 매미는 오밤중까지 악을 쓰고 울어대고, 모기들은 스토커처럼 따라 붙는 이 여름날 산이고 바다라고 더위를 피하긴 쉽지 않다. 그럴 땐 그냥 에어컨 빵빵한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는 게 제일 속 편하다. 하지만 도 봤고, 도 봤고 더 이상 볼 게 없는 당신이라면 다양한 고전영화와 공짜 영화의 특권을 누려보는 건 어떠실지? <10 아시아> 독자들을 위해 올 여름을 시원하게 식혀줄 영화제들을 정리해보았다. 오는 13일부터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까지 가기가 너무 멀다 싶으신 분들께 추천한다.

퇴근길에 고전영화 한 편│제3회 충무로국제영화제│8월 24일 – 9월 1일
도심 속의 영화축제로 자리 잡은 충무로국제영화제의 장점은 뭐니 뭐니해도 퇴근 뒤 가볍게 한 잔하는 맥주처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접하기 힘들었던 고전영화들을 중심으로 올해에는 월드 프리미어작들도 추가되어 한층 더 풍성해졌다. 미스터리한 죽음을 둘러싼 논란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 마릴린 먼로 특별전을 빼놓지 말자. 가십의 여왕으로만 치부되었던 은막의 여왕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줄 <뜨거운 것이 좋아>, <7년만의 외출>, 등의 대표작들을 상영한다. 또 스칼렛 요한슨의 연출분은 통째로 편집당하고 나탈리 포트만이 감독 데뷔를 한 개막작 <뉴욕, 아이러브유>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공개된다. 일반 예매 없이 개막식 이벤트를 통해 오직 200명에게만 영화 관람의 기회가 주어지니 홈페이지를 서둘러 방문해보자. 영화제의 상영작들은 대한극장, 명동 CGV, 동대문 메가박스 등 충무로와 명동 일대의 주요 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디지털 영화의 현주소│시네마디지털서울 2009│8월 19일 – 8월 25일
아시아 신인 감독의 디지털 영화를 중심으로 한 시네마디지털서울은 현재 의욕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디지털 영화의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스프링 피버>가 개막식 문을 열고, 실제 1997년 이태원 햄버거가게에서 일어났던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다룬 <이태원 살인사건>이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된다. 이 외에도 키아누 리브스, 위노나 라이더 주연의 디지털 로토스코프 기법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스캐너 다클리>,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실사영화 프로젝트 <킬러즈> 또한 놓치지 말자. 모든 상영작은 압구정 CGV에서 볼 수 있다.

양익준 감독을 만나다│2009 시네바캉스 서울│8월 4일 – 8월 30일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2009 시네바캉스 서울에서는 거장 감독의 영화를 비롯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대작, 흥겨운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이 상영된다. 뮤지컬 영화 <쉘부르의 우산>, <안나 카레리나>를 비롯한 고전뿐만 아니라, ‘작가를 만나다’ 섹션을 통해 현재 독립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두 명의 감독을 만날 수 있다.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와 <바라만 본다>를 비롯한 초기 단편들을 감독과 함께 대화를 하면서 볼 수 있고, 양익준 감독과 대조적으로 감성적인 섬세함을 지닌 김종관 감독의 신작 <바람의 노래> 또한 최초로 공개된다. 한 달에 한 번 개최되는 ‘서울아트시네마 일본영화걸작 상영회’에서는 일본 거장 감독인 스즈키 세이준,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를 무료로 감상할 수 있는데다, 5편의 영화를 본 관객에게 상영작 1회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특전을 준다고 하니 얇은 지갑 걱정도 접어두자.

8월의 파리│씨네 프랑스│8월 25일까지
프랑스문화원에서 두 달에 한 번 개최하는 씨네 프랑스는 올 여름 파리에 가고 싶은 수많은 청춘들을 구제하기 위해 나섰다. <북 호텔>, <내가 본 파리>, <사랑해 파리> 등 다양한 시각으로 파리를 그려낸 영화들은 우리가 몰랐던 파리의 뒷골목, 작은 스튜디오에 사는 남녀들의 일상을 샅샅이 훑는다. 파리로 바캉스 못 간다고 좌절하지 말고, 대학로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기자. 에어 프랑스 티켓 부럽지 않은 동숭아트홀 티켓으로 두 시간여 동안 파리에 흠뻑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나면 더욱더 파리에 가고 싶어질지 모르니 심사숙고하여 결정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박찬욱 감독 다시보기│KOFA 기획전│8월 6일 – 8월 13일
한국영상자료원(이하 KOFA)에서는 매달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복원, 수집한 우리 영화들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드라마 작가로 익숙한 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쓴 영화들, 시대순으로 한국의 고전영화를 소개하는 ‘고전영화 릴레이’, 80년대 추억의 화제작 <구니스>를 스크린으로 다시 불러들인 ‘커피&시네마’ 등 알찬 프로그램에 이어 8월에는 박찬욱 감독전과 한국 대중음악영화 특별전을 준비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복수는 나의 것> 등 복수 3부작을 포함, <박쥐>까지 박찬욱 감독의 전작을 무료로 볼 수 있다.

신중현, 윤도현의 영화배우 도전기│KOFA 기획전│8월 18일 – 8월 30일
<고고 70>이전에도 한국의 음악영화들은 풍성했다. 우수에 젖은 순정파 뮤지션으로 울부짖던 신중현의 <미인>, 그 시절의 아이돌 전영록의 <돌아이>에서부터 록커가 되고픈 낙원상가 알바생으로 열연한 윤도현의 <정글 스토리>까지 영화를 한층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던 한국의 대중음악들의 과거를 즐겨보자. ‘볼륨을 높여라! 한국 대중음악과 영화의 만남전’은 21일 <미인>의 상영 후에는 서울전자음악단이, 28일 청춘대학의 상영 후에는 문샤이너스의 공연이 이어진다. 이 모든 게 무료라니 안 가는 사람이 손해인 것이다.

글.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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