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습니다. 더워요. 물을 안 줘도 이틀, 삼일 멀쩡하던 집 앞 나무들은 하루 볕에 잎을 축 늘어뜨리고, 제아무리 걷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 해도 10분 이상 땡볕에 있다 보면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근처 은행이라도 들어갈까 하는 유혹에 종종 빠집니다. 모두들, 휴가 다녀오셨나요? 많은 이들이 휴가를 떠난 지난주를 힘겹게 버티고 난 후, 저 역시 주말 이틀 충동적으로 부산행 KTX에 몸을 실었습니다.

남포동 먹자골목 목욕탕 의자에 앉아, 양념장에 척척 비빈 당면과 쌈장에 찍어 먹는 순대를 먹고, 구제시장을 돌아다니며 연유 넣은 길거리 냉커피를 시원하게 들이켰습니다. 마가린에 고소하게 튀겨낸 원조 호떡을 들고, 벌써 700만을 넘겼다는 영화 <해운대>를 본고장에서 보면서 생각보다 많이 웃고, 생각보다 많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저에게 부산행은 외지인의 여름휴가라기보다는 그리운 고향방문의 의미가 더욱 큽니다. 그래서인지 발걸음은 늘 미끈한 해운대 신시가지보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새겨져 있는 질척한 자갈치 바닷가를 떠나지 못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고등학교 교정은 그대로 짙은 초록색을 간직하고 있었고, 부평동 시장도 깡통골목도 그렇게 자연스러운 주름살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서면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의 나와 조우하게 됩니다. 이 비린내 나는 동네가 싫어서 하루 빨리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가고 싶었던 마음과도 만나고, 하굣길 흔들리는 육교 위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던 즐거웠던 순간과도 잠시 손을 잡습니다.

가끔 다음 문으로 가는 비상구가 안 보일 때, 삶이 풀리지 않는 문제로 가득 찼다고 느껴질 때, 유년의 길에서 현재를 푸는 열쇠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번 여름엔 거창한 피서보다 자신의 기원을 찾아가는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그것이 복잡함과 심란함으로 터지기 일보직전인, 뜨거운 일상의 온도계를 낮추는 가장 빠른 냉각제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아니, 적어도 저에겐 그랬다는 짧은 보고입니다.

글. 백은하 (one@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