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는 이미 820만 관객이 지켜봤다. 게다가 한국영화 흥행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 기록적인 이야기는 그동안 지치지도 않고 패러디되어 왔다. “니가 가라 하와이”부터 “내가 니 시다바리가”까지 거친 부산 사투리는 전국적인 유행어가 되었고, 곽경택 감독은 그 이후에도 사나이들의 의리로 사무친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감독은 MBC 로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를 다시 들고 나왔다. 이것은 그저 의 자기복제에 그치고 말 것인가, 아니면 이름처럼 새로운 전설을 창조할 것인가? 위근우 기자와 김선영 TV 평론가 이 전설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점쳐 보았다./편집자주

MBC <친구, 우리들의 전설>을 지배하는 가장 큰 정서는 우정 혹은 의리가 아닌 강박이다. 첫 회 초반에 보여준 편집 영상에서 도루코(임성규) 일당이 동수(현빈)을 습격하는 장면과 준석(김민준)이 동수에게 하와이로 몇 년 동안 죽은 듯 지내라고 충고하는 장면, 그리고 드라마 중간 동수가 준석에게 “내가 니 시다바리가?”라는 유명한 대사를 던지는 모습을 하다못해 의상까지 거의 동일하게 재현하는 이 드라마에선 곽경택 감독의 전작 영화 <친구>에 대한 강박이 읽혀진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이런 강박이 유별난 자기 복제에 그치지 않고 못 다한 이야기를 제대로 끝내고픈 자기 소회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친구>라는 신화적 세계에 대한 강박증

굳이 흥행 기록을 따지지 않더라도 영화 <친구>는 그 이음매가 느슨한 영화는 결코 아니었다. 흥미로운 건 <친구, 우리들의 전설>을 보면서 <친구>의 신과 신 사이의 빈틈이 무척이나 크게 느껴지는, 일종의 사후적 구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가령 출소한 동수가 중국집에서 상곤(이재용)의 밑으로 들어가는 장면만 놓고 보면 영화와 거의 동일하지만 동수가 자신이 모시는 선장을 집단 구타한 상곤 패거리를 두들겨 패서 감옥에 가고, 어머니 때문에 돈이 필요해지는 에피소드가 그 앞에 배치되면서 동수가 폭력배의 길을 걷는 이유가 훨씬 명확해진다. 즉 영화에 기댄 드라마가 원작을 다시 해석하게 하는 일종의 해설집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수가 드라마 첫 회 내레이션을 통해 잠시나마 일종의 화자 역할을 했다는 건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영화에서의 그는 친구의 믿음을 배신하고 의리를 저버린 인물이었다. 영화 <사랑>, <태풍>에서도 증명되었듯 곽경택 월드의 남자에게 그것은 가장 큰 결함이다. 하지만 그건 결국 한동안 부산을 떠나 있었던 영화 속 화자인 상택의 시선과 판단이었고, 몇 년 사이 틀어진 동수와 준석 관계의 책임은 변명의 기회도 없이 동수에게 돌아가 버렸다. 하지만 <친구, 우리들의 전설>에서의 동수는 어쩔 수 없이 상곤 밑에 들어가고 준석 대신 감옥에 가는 모습을 통해 영화 속 상택의 시선, 다시 말해 감독의 카메라가 미처 잡아내지 못했던 그 몇 년 사이 변화의 이유를 보여준다. 그래서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마치 한 친구의 이야기만 듣고 평가했던 다른 친구에 대한 기억에 새로운 사실을 채워 넣으며 재구성한 누군가의 술회를 보는 듯하다. 여기서 <친구>는 단편적이되 잘못된 기억은 아니기에 쉽게 훼손되어선 안 된다. 드라마에서 보이는 자기 복제의 강박은 마치 기억을 지키려는 강박처럼 느껴진다.

곽경택 월드의 진화인가, 후퇴인가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이 드라마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동수와 준석, 상태(서도영), 중호(이시영)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만들어온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는 정서다. 그들은 친구를 위해 기어코 주먹을 들고, 좋아하는 여자를 포기하고, 대신 죄를 뒤집어쓴다. 그 안에서 동수에 대한 변명은 우정 외에 다른 가치도 중요하다는 인정이 아닌, 동수가 사실 의리를 저버린 게 아니라는 오해의 해소로 이어지며 오히려 우정의 가치를 더욱 공고히 한다. 때문에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결국 <친구>의 너머에서 <친구>를 완성하려는 시도다. ‘우리’라는 가치는 ‘우리’로서 살아온 기억에 대한 공유를 통해서만 증명되는 자기 증명적인 가치이고,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그 가치를 증명하는 ‘우리’들의 서사다. 이것이 곽경택 월드의 진화인지, 아니면 또 다른 전근대적 퇴행의 징후인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건 공감하던 하지 않던 이 드라마는 한국적 의리라는 교리를 증명하는 좀 더 그럴듯한 남성 신화에 근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글 위근우

MBC <친구, 우리들의 전설>은 영화 <친구>의 결말에서부터 이야기를 출발시킨다. 이것은 이 드라마의 전체적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친구들과의 추억을 과거로부터 호출하는 상택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가 애잔한 회고담의 성격을 띠었다면, 동수(현빈)의 비참한 죽음으로 서장을 쓴 드라마는 마치 영화의 비장한 레퀴엠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조폭 영웅담의 낭만적 판타지를 공고히 한 영화의 서사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면서도, 드라마 전반에 드리운 이 쓸쓸한 만가의 기운은 어느덧 그 판타지의 유효 기간이 다 했음을 말해준다.

조폭 성장 서사의 균열과 변화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영화와 크게 달라진 동수와 준석(김민준) 캐릭터가 있다. 우선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그들의 친구 관계다. 어린 시절 준석이 동수를 위해 대신 싸워주며 자연스레 형성된 서열 구도가 폭력적 갈등으로 발전하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에서 둘은 ‘싸우기 싫어’ 서로 비긴 셈 치며 친구가 된다. 또한 드라마 속 동수와 준석은 소위 ‘강한 남자 되기’의 열망보다 상처 입은 소년성이 더 두드러지는 캐릭터다.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가 더 강해진 그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진숙(왕지혜)의 표현대로 아직 성장하지 못한 상처 받은 “오이디푸스”들이다. 염쟁이 아버지와 가정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깊은 애증을 지닌 동수는 출세와 생존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던 영화 속 동수와는 반대로, 어린 시절부터 “나 하나 이 세상에 없다고 무슨 큰 일이 생길 거 같지도 않다”는 삶에 대한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심지어 “앞으로 건달로 살 생각도 없다”고 말한다. 준석도 건달 아버지와 병들어 외롭게 죽어간 어머니에 대한 상처 때문에 “자신을 망가트리는 것이 아버지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영화 속 준석과 동수가 각각 유년의 상처를 폭력으로 극복하고 결국은 더 강력한 아버지의 세계인 조직으로 들어가 스스로 강한 아버지가 되는 조폭 성장 서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면, 드라마는 그 서사에 동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에 균열을 가하는 다른 서사들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회의하고 흔들리는 남성적 서사 대신 보완된 이야기가 바로 진숙의 서사다. 곽경택 감독은 남성 중심적 세계였던 영화에 대한 비판을 수용해 드라마 속에서 진숙의 비중을 강화하고 개인사에도 공을 들였다. 물론 ‘센 척 하지만 본심은 착한’ 두 남자 사이에서 구원의 여성상으로 기능하는 한계를 보이지만, 영화에서 상택이 내레이터로서 지녔던 외부자적 시선을 나눠 가지는 진일보를 보여주기도 한다.

‘전설’에 대한 욕망이 그르치는 것

그러나 이 드라마가 품고 있는 원작 세계 균열과 해체의 가능성은 다른 한편으로는 원작의 신화를 공고히 해 제목 그대로 ‘전설’을 만들고자 하는 상반된 욕망과 충돌하며 자주 좌절된다. 그 욕망은 기획의도에서도 보이듯이 SBS <모래시계>를 벤치마킹하며 상택(서도영)의 보강된 개인사 등을 통해 좀 더 확장된 사회사적 맥락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 군사독재시절의 폭력적 세계가 현재와 그리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안에서 충분히 체화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현실 정치를 환기시키지도 못한다. 조직 세계를 통해 군사 정권의 폭력적 속성을 어둡고 압축적으로 그려냈던 영화에 비해 거대한 이야기에 대한 과욕이 드라마 내부적으로도 불균질한 서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무엇보다 인물의 이야기다.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 영화보다 돋보인 성과가 있다면 아직은 미완일지언정 중심인물들의 풍부한 이야기를 통해 서사 전체에 다층적 해석의 가능성을 품었다는 것이다. 스케일과 신화에 대한 강박으로 그 인물들의 이야기마저 놓친다면 ‘전설’은커녕 그저 그런 잡담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글 김선영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글. 김선영 (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