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5일, M.net <2NE1 TV> 시청자 게시판에는 항의글로 온통 도배가 되었다. ‘해적 방송’이라는 콘셉트에 걸맞게 당초 6시로 예고되어 있었던 방송 시간이 갑자기 밤 12시로 변경되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방송 사상 초유의 사건을 일으킨 주인공은 그동안 <오프더 레코드 효리>, <스트리트 사운드 테이크 원> 등 감각적이면서도 독특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온 최재윤 PD. 그는 현재 2NE1을 따라다니며 새로운 장면을 찍느라, 그 장면들을 편집 하느라, 틈틈이 게시판에 남긴 시청자들의 글에 댓글을 다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이다. 방송의 트루기를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규칙을 따라간다는 최재윤 PD를 만나 <2NE1 TV>. 그리고 해적 방송을 만들게 된 과정을 들어보았다. 덤으로 다른 YG TV에 대한 이야기도 살짝 공개 한다.

2NE1에 대해 공개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 <2NE1 TV>에 대한 반응이 더욱 뜨거운 것 같다. 독점에 가까운 섭외인데, 어떻게 가능했나?
최재윤 PD
: 2월 경, YG의 양현석 사장이 나를 직접 찾아 왔었다. 당시에는 빅뱅을 주인공으로 한 프로그램을 의뢰 한 것이었는데 여러 가지 스케줄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조금씩 연기되고 있었다. 그러다 빅뱅의 일본 활동이 시작되면서 우리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 했다. 마침 2NE1이 막 데뷔를 하던 시기였고, 이미 나는 YG 내부에서 작업을 시작한 시점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구성의 초점이 2NE1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Fire’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지 일주일 쯤 지났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2NE1에 집중 한 것 같다.

“결론을 제시하기 보다는 시선을 공유하고 싶었다”



최재윤 PD│“시청률보다, 2NE1이 잘되는 방법을 고민한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새로운 인물에 포커스를 맞출 수 있었다는 것은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행운이었겠다.
최재윤 PD
: 다행히 사람들은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일들에 관심을 많이 갖는 것 같다. 그래서 2NE1에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고 싶어 하는 것 같고. 그렇지만 그 대상이 누구든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충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빅뱅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때 내가 생각했던 것은 각자 멤버들마다 채널을 둔 형태의 ‘빅뱅TV’였다. 각자 라이브 캐스트를 하는 느낌으로, 멤버들 중 처음으로 면허를 따고 차를 산 대성이가 하루 종일 운전만 하고 다니는 모습 같은걸 보여주면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 수 있었겠지.

‘해적 방송’이라는 콘셉트도 화제를 모으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전혀 새로운 개념인데, 어떻게 생각해 냈는지 궁금하다.
최재윤 PD
: 빅뱅을 팔로우 할 때부터 이미 ‘해적 방송’이라는 개념은 만들어져 있었다. 편성의 틀을 바꾸는 방송, 일주일에 한 번 방송되는 형식이 아닌 무엇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정규 편성된 1시간짜리 본방송 외에도 매일매일 다른 영상이 수십 개의 스팟으로 송출된다. 그건 영화 <트루먼 쇼>에 나오는 것처럼 어딘가 2NE1의 24시간을 보여주는 가상의 채널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고서 만든 시스템이다. M.net에서 누군가 채널을 바꾸면 2NE1이 밥을 먹고 있거나, 어딜 가고 있거나, 맥락은 알 수 없지만 그 시각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거다.

그런 방식으로 공개되는 스팟은 전후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분명하게 정보를 전달하기도 한다. 멤버 각자의 캐릭터나 관계가 찰나에 파악되기도 하더라.
최재윤 PD
: 나는 굉장히 드라이 한 방식으로 인물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한다. 결론을 제시해주기 보다는 시선을 공유하자는 입장인데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각자 이 아이들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스팟을 흩뿌려 놓음으로써 사람들이 좀 더 애들과 낯을 익힐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다. 처음 만난 애랑 한 시간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반에서 여러 번 얼굴을 봤던 애랑 한 시간 이야기 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본방송에서도 편집이 낯선 방식으로 진행되는 면이 있다. 아이들이 카메라를 의식하고 있는데도 훔쳐보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고,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 셀프 카메라나 자기소개 같은 전형적인 방식이 개입되기도 한다.
최재윤 PD
: 대부분의 촬영은 자유롭게 풀어놓은 상태에서 진행 된다. 훔쳐보는 방식의 시선을 재미있다고 생각 하는데, <오프더 레코드 효리>에서처럼 아예 훔쳐보는 방식이 고정되면 그건 대상이 피해자가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아닌 것 같고, 그 보다는 좀 더 자의적인 느낌을 주려고 한다. 셀프 카메라도 집에 들어가는 것처럼 민감한 부분에서 멤버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 방향을 미리 듣고, 본인이 적극적으로 원할 때만 진행한다. 불편한 건 하면 안 된다. 그리고 3회 앞부분에 나온 자기소개 장면은 사실 이들을 처음 만났던 주에 내가 멤버들을 파악하기 위해서 찍었던 영상을 삽입 한 거다. 그래서 더 어색하게 보였을 거다.

사실은 시간 순서와 관계없이 장면들이 섞여 있다는 말인가.
최재윤 PD
: 사람을 만나면 옛날에 그 사람을 봤을 때의 기억 같은 게 동시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나. 그런 순간의 느낌을 포착하고 싶었다. 구성적으로도 2회는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렸다면, 3회는 아이들로 포커스가 옮겨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이들이 어색한 상황에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장면이 들어가면 인물을 파악하는데 좀 더 쉬울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그저 사람들이 2NE1의 진짜 모습을 좀 더 알았으면 좋겠다”



“삼촌이 찍은 비디오에 실제 아이들이 담겨 있을 확률이 더 크다. (웃음)”
반면 3회 뒷부분에 삽입된 ‘I don`t care’ 연습 영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재윤 PD
: 촬영을 하느라 따라다니다 보면 2NE1은 정말로 연습을 오래한다. 점심을 먹고 시작해서는 밤 12시를 넘겨 새벽까지 계속 연습을 하더라. 숙소로 이사하는 날은 그 스트레스와 연습의 압박이 합쳐지면서 정말로 극한 상황이 연출된 거다. 그냥 드라이하게 찍고, 보여준 거지.

그 장면에서 ‘I don`t care’를 편집 없이 다 보여줬는데, 마침 2NE1이 그 노래로 컴백한 시점과 맞물리더라. 활동 전개와 방송에서의 노출이 미리 계산되어 있는 것인가.
최재윤 PD
: 구체적으로 그런 부분을 조율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지금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위치는 프로그램의 PD라기 보다는 일종의 마케터다. 내가 계산 하는 것이 있다면 시청률이 아니라, 2NE1이 잘되는 방법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방송은 다 찍고 나서 DVD 컬렉션으로서 의미 있는 완성품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이 시점에서 사람들이 봤으면 좋을 것 같은 장면을 정확히 판단하려고 한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지금 필요한 장면을 골라내는 거다.

무심한척 하고 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영악하게 시네마베리테를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최재윤 PD
: 아, (정)재형이 형이 그런 말을 하기는 했었다. 오만한 녀석, 그러면서. (웃음)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그렇다던데”라는 식의 태도다. 출근해서 잠깐 포털 대문에서 글 몇 줄을 보고는 전후 사정이나, 사건의 실체는 알지도 못한 채 욕을 하고, 여론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그저 사람들이 2NE1의 진짜 모습을 좀 더 알았으면 좋겠다. “2NE1 그렇다며?”하지 말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2NE1의 진짜 모습을 PD 스스로 알아야 할 텐데, 얼마나 아이들을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시청하는 입장에서는 때때로 삼촌이 찍은 홈비디오 같은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서 제법 가까워 졌다고 느껴진다.
최재윤 PD
: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성공적인 것 같다. 삼촌이 찍은 비디오에 실제 아이들이 담겨 있을 확률이 더 크다. (웃음) 나는 PD, 너희는 출연자, 정해놓고 찍으면 아무래도 장막이 생기니까.

“팀발랜드 같은 슈퍼 프로듀서가 될 가능성이 가장 많은 사람은 테디”



최재윤 PD│“시청률보다, 2NE1이 잘되는 방법을 고민한다”
다큐멘터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는 있지만 사실 당신은 음악 애호가로서 M.net에 입사한 것으로 안다.
최재윤 PD
: 원래는 음반사에서 일을 하고 싶어 했던 사람이다. (웃음) 고등학생 때 남미 음악을 한참 좋아해서 그 이유로 대학에서 서어서문을 전공할 정도로 음악에 빠져 있었다. 대학 가서도 음악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입사 설명회에 가서 모의 면접을 봤는데 “최재윤 씨는 준비를 한참 하셔야겠는데요.” 그런 말까지 들었다. 누나가 TV를 보는데 마침 M.net 공개 채용 스크롤이 지나가길래 그날 바로 인터넷으로 지원서를 냈다.

처음 입사 했을 때 맡은 프로그램은 무엇이었나.
최재윤 PD
: 처음으로 조연출 배정 받은 건 <쇼킹엠>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백업 댄서들과 친하게 지냈다. 첫 연출작은 <배틀신화>였는데, 출전하는 애들 불러다가 인스트루멘탈 음원 찾아서 편집해 주고 연습 시키고 정말 힘들었다.

지금과 같은 방송 형태에 대한 욕심은 언제부터 생긴 건가.
최재윤 PD
: 사실 나는 방송에 대한 욕심은 거의 없다. 하고 있는 일이 방송이니 그것을 매개로 사용하고 있는 것뿐이다. 어떤 프로그램을 하든, 나는 좋은 음악을 전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냥 클리어 한 포맷은 이제 사람들의 흥미를 끌기 어렵다. 앉아서 음악을 듣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다. <2NE1 TV>도 연습과정이나 사생활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 안에 음악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 있고, 그런 의도에서 테디와 쿠시의 멘트를 일부러 보여주기도 했다. 항상 나의 정체성은 방송 일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음악계 필드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음악 애호가이자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2NE1의 미니앨범에 점수를 준다면?
최재윤 PD
: 95점. 음악 자체로만 평가하자면 80점 정도라고 보는데, 그런 음악을 한국 시장에서 이만큼 대중적으로 소화할 수 있었다는 데에 가산점을 주고 싶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한국에서 팀발랜드나 P.Diddy 같은 슈퍼 프로듀서가 나온다면 아마 테디가 그렇게 될 가능성이 가장 많은 사람일 거다.

<2NE1 TV>가 끝나도 연애하다가 끝난 기분이 들까.
최재윤 PD
: 어떤 방송이 끝나도 그렇다.(웃음) YG라는 부족 안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다가 그 밖으로 나오게 되면 당연히 허전한 마음이 들겠지. 그리고 지금 YG 안에서 찍어 놓은 게 많다. 다른 사람들의 TV 채널이 오픈될 가능성들이 열려있기 때문에 아직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인물마다 다른 프로그램이 만들어 질 수 있기 때문에 아직 정확한 계획을 밝힐 수는 없지만 예컨대, G-드래곤과 그의 친구인 이수혁, 양승호를 묶어서 채널을 오픈해도 재미있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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