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PIFAN 완전정복 스케줄AM 10:32,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오전 10:30 송내역 도착 – 11:00 CGV 영화관람 – 오후 1:00 점심식사 – 2:00 프리머스 영화관람 – 5:00 복사골 문화센터 영화관람 – 7:00 저녁식사 – 8:00 부천시청 영화관람 – 10:30 귀가
예상 시간보다 약간 늦게 도착했지만 별로 불안할 건 없었다. 송내역에 내려서 길만 건너면 바로 셔틀버스를 탈 수 있다고 했으니까, 서둘러서 36분 버스를 타면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송내역에 내려 버스 정류장이 모여 있는 쪽으로 나오자 길 건너편에 혀를 빼 문 둘리 동상이 보인다. 영화제 안내 소책자 상영장 약도에는 ‘둘리 공원’이라는 글자 옆에 바로 버스 모양이 그려져 있다. 저기다! 막 출발하려는 붉은 셔틀버스에 올랐다. 44분, ‘여기는 중동공원, 프리머스, CGV, 경기아트홀 입니다’라는 말에 내릴 준비를 했다. 이제 극장까지 뛰어가면 될 것 같다. 버스에서 내리는 내게 버스와 똑같이 붉은색 티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들이 반짝반짝 작은 별 율동하듯 손을 흔들며 외친다. “즐거운 PIFAN 되십시오.” 발랄한 목소리에 어쩐지 PIFAN 놀이동산이라도 온 기분이다. 아, 45분. 서둘러 CGV 건물 쪽으로 뛰어간다. 아니 그런데 대체 건물 구조가 왜 이런 걸까? 엘리베이터를 찾으려 해도 찾을 수 없어 1층을 헤맨 끝에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에스컬레이터마저 뒤엉켜 있어 한 층에 한 번씩 헤매다가 겨우 58분에 도착. 극장 매표소 한 쪽 옆에 마련된 PIFAN 예매처로 가서 영화 제목을 외쳤다. “<불타는 내 심장> 하나요!”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자원봉사자와 눈이 마주치자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한다. “<불타는 내 심장>은 매진되었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울고 싶다. 2시까지 뭘 하면 좋지? 예매처 옆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벽에 붙어있는 상영 스케줄에 ‘매진’ 스티커를 붙이는 자원봉사자의 모습이 보여, 어차피 딱히 할 일도 없겠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미 있는 여름방학을 위해 PIFAN 자원봉사에 지원하게 되었다”는 박미란 씨는 영화를 놓친 내 사연을 듣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그런 분들이 많으세요. 옆에 백화점과도 이어져 있어서, 그 쪽으로 올라오신 분들은 극장을 못 찾으셔서 늦으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상영 시간이 지나면 입장이 안 되는데, 입장을 시켜달라고 하시거나 아니면 환불을 해 달라고 하셔서 자원봉사자들과 말다툼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죠.” 아, 나만 헤매 다닌 건 아니었구나. 한 극장에서 자원봉사만 하느라 정작 영화를 못 보는 게 아쉽다며, 목요일에 폐막하고 나면 수상작이 상영되는 일요일까지 영화를 마음껏 보겠다는 친절한 자원봉사 아가씨를 뒤로 하고, 2시 영화를 예매하러 옆 극장을 향해 갔다.
11:30, 표는 미리미리 사둡시다.
가는 길에 있는 중동공원에 ‘PIFANida’ 행사장이 마련되어 있다기에 들렀더니, 휑한 공원에서는 어린 아이들만 미끄럼틀을 타고 있다. PIFAN 기념품 판매소 근처를 얼쩡거려 봤지만, 도무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베니스의 유리가면과 비슷하게 생긴 PIFAN 가면을 사볼까 했는데, 다른 곳에서도 팔겠지? 일단은 좀 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예매를 하는 게 우선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프리머스 건물로 갔다. A4 용지에 인쇄된 화살표를 띄엄띄엄 따라가자 현수막이 걸린 입구가 보인다. 그나마 엘리베이터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기다리는데, 어라? 한 대는 고장. 한 대는 지금 내려오고 있는지 올라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액정 표시 상태다. 내려오는 듯하다가 올라가고, 올라가는 건가하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닫혀 버리는 엘리베이터와 씨름하다가 계단으로 올라가고도 남았을 시간에야 6층에 도착했다. 상가가 들어오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텅 빈 길을 지나자 매표소가 나온다. 겨우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예매 완료! 판매 상황을 묻자 곧 매진될 것 같다고 한다. 다들 나처럼 힘겹게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일까를 고민하며 매표소 앞 의자에 앉아 쉬는데, 혼자 골똘히 책자를 들여다보는 한 사람이 PIFAN 관객처럼 보여 말을 걸어보았다. 2시 영화 보시는 건가요? “보려고 하던 영화가 있었는데, 매진됐대요.” 난감한 얼굴을 하고 PIFAN 책자로 부채질하는 이혜진 씨의 모습이 한 시간 쯤 전의 나를 보는 것만 같다. “부천에서 살아서 그냥 버스 타고 왔는데, 이렇게 빨리 매진 될 줄 몰랐어요. 인터넷에서는 현장 표 상황을 알 수가 없거든요.” 다른 영화를 보려고 해도 책자에 있는 설명만으로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며 곤란한 표정이다. 그래도 부천 시민이라고 하기에 맛집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잘 알지 못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여기 극장 근처는 그냥 극장에 딸린 음식점 정도만 있고, 점심에는 조용한 동네거든요.” 아이고, 그럼 점심은 어디서 먹는다지?
PM 12:23, “우리 같은 애들이 볼 수 있는 영화는 없는 거 아니에요?”
어이쿠, 깜짝이야! 점심을 먹으러 건물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길에서 단체 사진 촬영 중인 여고생 좀비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 저게 바로 기사에서 봤던 ‘황당무개 프로젝트’구나! 피 묻은 티셔츠를 입고 서 있는 단체 좀비들을 보자, 처음으로 PIFAN다운 모습을 봤다는 생각에 영화 한 편 보지 못했는데 몰려왔던 피곤이 달아나는 것 같다. 휴대폰 카메라로 찰칵 사진을 찍고 건물을 나와 보니 날은 덥고 딱히 갈 데는 없어 그냥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패스트 푸드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트메뉴 할인 중이니 저렴한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건 장점이야, 라고 생각하기에는 집 앞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괜히 서글퍼진다.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어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왜 학생들이 패스트 푸드점에 있는 것일까? 괜한 호기심을 못 이겨 또 말을 걸었다. “국제영화제요? 알아요. <연예가중계>에서 한다고 나오던데.” PIFAN에 대해 관심이 있냐고 묻자 <연예가중계> 이야기부터 나온다. <연예가중계> 보기 전에는 언제 시작하는지도 잘 몰랐고, 본 영화도 없다고 한다. “우리 같은 애들이 볼 수 있는 영화는 없는 거 아니에요?” 하긴, 영화관에 가도 학생이나 어린이들은 <해리포터>와 <트랜스포머>시리즈를 기다리고 있었지. 박화영, 최미리, 하수연 학생들이 3살 때부터 시작해 매해 있는 행사인데, 아직 영화를 본 적도 없다니 부천 시민도 아닌 나까지 괜히 아쉬워지는 기분이다. 어찌됐건 궁금증은 해결했다. 방학식 날이라 일찍 끝났다고 한다.
PM 4:23, 뭐 한다고는 하는데, 그 뭐가 대체 뭔지…
판타스틱! 올해 PIFAN에서 처음 만난 영화는 멋졌다. 영화가 끝나면 이제 막 영화계에 첫 발을 내 디딘 젊은 감독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까지 있다. 이게 바로 영화제의 특권이지! 관객과의 대화를 마치고 나와 셔틀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복사골 문화센터 앞에 도착했는데, 아직도 더위가 가시지 않았다. 더위에 녹아내릴 것처럼 온 얼굴을 찌푸린 채 서있는 내게 옆에 서 계시던 친절한 아주머니가 슬그머니 양산을 씌워주신다. 감사하다며 인사를 하고 PIFAN에서 영화를 보려고 왔다고 하자, 아주머니가 대뜸 하시는 말씀. “아이고, 우리 같은 늙은이들도 그런 거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지금 이 앞에 복사골 문화센터에 가면 영화를 볼 수 있다고 말씀드리자 아주머니는 “그런 걸 아무도 안 알려줘!” 하신다. 부천에 살고 있어도 송내역 근처에 오지 않으면 영화제를 하고 있는지 느낄 수 없다고. “여기서도 뭘 한대고, 시청에서도 뭘 한다는데, 그냥 뭐 한다는 것만 알지…” 말끝을 흐리는 이선옥 아주머니께 PIFAN 티켓은 일반 극장보다 3천원이나 싸니까, 남은 날들 동안 꼭 보시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양산 그늘에서 나와 복사골 문화센터로 들어갔다.
PM 7:05, PIFAN이여, 신화가 되어라!
그냥 복사골 문화센터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면 알아서 돌아가는 것인지, 맞은편에서 타는 것인지를 물어보다가 시간을 지체했다. 차 두 대가 이동을 하다 보니 노선표를 봐도 잘 모르겠다. 시청에 도착하자마자 우선 티켓을 샀다. 아침의 실수가 이런 교훈을 주는구나. 저녁을 간단히 먹어볼까 하고 시청 밖으로 나오자 이제야 막 시원해지기 시작한 여름의 저녁 공기 속에 쿵쿵 울리는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시청 앞 잔디밭에서 공연을 보며 앉아있는 가족 단위의 시민들이 보인다. 잔디 밭 옆 계단에서 중국음식을 시켜 먹는 커플도 있지만, 혼자서 중국음식을 시켜 먹을 용기는 없어 간단히 매점에서 산 과자와 음료수로 저녁을 때우며 공연을 보았다. “소리 질러!” 록밴드 보컬의 목소리에 열심히 소리 지르며 몸을 흔드는 건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PIFAN 자원봉사자들이다. 해질녘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귀를 때리는 록음악과 잔디밭에 돗자리를 펴고 누운 가족들의 모습이 안 어울리는 듯 어울리게 느껴졌다. 바로 옆에서 가족이 공연을 보고 있는데 두 살쯤 된 아기가 시끄러운지 자꾸 귀를 막는 게 귀여워 “안녕!”하고 인사를 건넸다. 부천 시민인 한기영 씨 가족은 매 해마다 PIFAN의 다양한 공연들을 찾는다고 한다. “사실 다른 때보다 축제 분위기가 나지는 않아서 아쉽기는 한데, 그래도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어요.” 그래도 부천에서 벌어지는 일 년 동안의 행사 중 가장 큰 행사이니만큼 PIFAN이 더 유명해지고 큰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영화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공연이 계속되어 음악 소리가 영화 관람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돌아섰다. 귀여운 아기는 끝까지 귀를 막고 있어 내 인사를 듣지 못했다.
PM 10:35, 난 안될 거야, 아마.
세 번째 영화는 너무도 PIFAN다운 호러무비였다. 열정적인 장르 영화의 팬들은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다섯 번이나 연거푸 손을 들었지만 결국 질문을 하지 못한 나는 영화에 대한 감독의 퀴즈를 맞혀 포스터를 받은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극장 밖에서 질문을 더 해도 된다는 말에 밖에서 기다리려고 하는데 포스터와 책자에 감독의 싸인을 받으려는 관객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결국 돌아서야 하는 아쉬움도 잠시. 이런! 늦은 밤에 서울로 가는 심야버스티켓 사는 걸 까먹었다! 아직 11시 30분에 광화문으로 가는 PIFAN 셔틀버스가 오려면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내가 그렇지. 어쩐지 오늘 시작부터 꼬이더라니. 그러고 보니 까먹은 게 하나 더 생각났다.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폐막식 날 하는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을 보려면 오늘 미리 예매를 했어야 됐던 것 같아. 근데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잖아. 난 안될 거야, 아마.
글. 부천=윤이나 (TV평론가)
그림. 올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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