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나 슬래셔, 고어 등의 일련의 공포영화에 대해 가지는 감정은 장르영화 마니아가 아닌 이상 너그럽기 힘들다. 사지가 절단되고, 뇌수가 흐르는 시각적 이미지는 두려움에 소리를 지르거나 눈을 질끈 감게 만든다. 그러나 제13회 부천국제영화제(이하 PIFAN)에서 국내에 첫 공개된 <마터스: 천국을 보는 눈>(이하, <마터스>)은 호러라는 장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그저 잔인하다고만 생각하고 중간에 나가버린다면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카오스를 주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두 번째 영화로 칸과 시체스 영화제에 이어 PIFAN에서까지 주목을 받고 있는 파스칼 로지에 감독을 만나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괴작을 탄생시킨 거냐고.
<마터스>로 PIFAN에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특히 지난 17일 있었던 관객과의 대화가 정말 뜨거웠다. 행사가 끝나고 나서도 따라 나와 질문을 하던 관객들이 많던데.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파스칼 로지에: 일단 관객들이 많아서 놀랐다. (웃음) 그리고 PIFAN에서도 관객들과 얘기를 나눠보니까 정말로 영화를 잘 이해하고 있는 관객들도 있더라.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어떤 반응이 <마터스>를 가장 잘 이해한 것인가?
파스칼 로지에: <마터스>가 주는 시각적 효과를 그저 징그럽다고 느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어떤 관객들은 절대로 이 폭력의 수위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마터스>는 사랑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나 자신도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길 원했고.
말한 대로 폭력의 표현 수위뿐만 아니라 충격적인 결말에 대해서도 관객들의 반응이 크게 엇갈린다.
파스칼 로지에: 물론 결말에 대한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존재 이상의 것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건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내 생각엔 분명 결말도 굉장히 명확했다. (웃음) 악한 자들은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주인공의 마지막도 확실하게 드러나고. 물론 열린 결말이긴 하지만 플롯 면에서는 뚜렷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관객들은 열린 결말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파스칼 로지에: 그렇다면 그들은 내가 거짓을 말하기를 원하는가? 마지막에 안나가 말한 내용을 가짜로 대답하길 원하는가? 실제 우리의 삶에 답이 어디 있는가? 그런 건 나도 모른다.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뭘 보여줄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나도 모르는데. (웃음)
전작이자 데뷔작인 <천사의 속삭임>은 <마터스>처럼 적나라하지 않고, 오히려 심령 스릴러에 가까울 만큼 직접적인 공포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5년이 지난 후 <마터스>라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현실적인 공포로 무장한 영화를 만들었다.
파스칼 로지에: 내 영화는 작업 당시 나의 심리 상태를 그대로 반영한다. 나는 내 영화와 개인적으로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 그건 프랑스 작가정신의 전통이기도 하고, 내가 영화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건 그동안 말하지 않은 비밀인데 <마터스>는 전작의 리메이크인 셈이다. 좀 더 화려하고 눈에 띄는 버전이라고 할까? 데뷔작을 아끼긴 하지만 당시엔 자신이 없었다. 호러라는 장르의 클리셰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강박이 너무 커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영화의 장르는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 다음이라 확신하게 되었고, 거기서 자유로워졌다. 다시 말하지만 고어나 폭력은 영화의 도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다음 영화는 밖으로 내던지지 않고 은유적인 스타일이 될 것이다. 데뷔작처럼 부드럽고, 좀 더 조용한 영화가 될 것 같다.
<천사의 속삭임>도 그렇고 당신의 영화에선 여자들이 전면에 등장한다. 사실 이야기의 전개는 꼭 여자가 주인공이 아니어도 될 만한 영화인데 굳이 여주인공들을 계속 내세운 이유가 있는가?
파스칼 로지에: 처음 호러장르에 끌린 이유도 내가 여자를 과소평가해왔던 걸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웃음) <악마의 씨>의 미아 패로우 같은 여성 캐릭터를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사실 호러영화는 굉장히 여성주의적인 장르다. 흔히들 호러영화가 여성을 폭력의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호러만큼 강한 여자 캐릭터가 어디 있나? 코미디나 드라마에서보다 훨씬 강한 여자들이 나온다. 호러를 통해 이 세상의 가장 큰 미스터리인 여성을 이해해 나가고 있다.
“호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편견과 싸우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여배우들의 육체와 정신을 극단으로 몰아 부치는가? (웃음) <마터스>의 두 주인공이 정말 고생했을 것 같다.
파스칼 로지에: 촬영 전에 리허설을 많이 하면서 견딜 수 있었다. 촬영 두 달 전부터 즉흥연기 주문을 많이 했다. 각본 없이 갑자기 울라고 하든가, 엄마에 대해 얘기하라는 식으로 그녀들의 자신감을 키워줬다. 하다못해 다 벗어도 내 시선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훈련이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함께 하다보니까 동료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물론 안 좋은 적이 더 많았다. 촬영하면서는 서로를 너무 미워해서 거의 죽이기 직전까지 갔다. (웃음) 물론 완성하고 난 지금은 보람 있지만 촬영하는 내내 너무 고통스러웠다. 촬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고,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웠다.
힘들었던 촬영과정 만큼 영화도 보는 내내 행복한 순간이 단 1초도 없다. 그런데 영화가 끝난 후 두 소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엔딩 크레딧이 나온다. 충격적인 결말에 이은 의외의 장치였다. 특별히 의도한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
파스칼 로지에: 그 지적 정말 반갑다. (웃음) 행복이 실제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그 화면에서 그녀들의 어린 시절 모습은 굉장히 오래된 필름의 질감이 나는데, 그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 그녀들이 죽은 사후세계에서만이 그런 행복이 가능하다는 걸 뜻한다. 그리고 그 필름은 그녀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 유일한 증거이기도 하다. 자세히 보면 <마터스>도 굉장히 감성적인 영화다. (웃음)
호러영화의 장르 답습에 질렸다고 했는데도 계속 호러영화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파스칼 로지에: 앞으로 하려고 생각하는 영화엔 스릴러도 있고 호러도 있다. 그런데 절대 코미디는 안 할 것 같다. 물론 굉장히 의미 있는 장르이긴 하지만 나는 코미디에는 소질이 없다. 그리고 마치 DNA에 새겨진 것처럼 호러영화가 좋다.
안 그래도 엄청난 호러영화 마니아라고 들었다. 그게 호러영화를 계속 만드는 동력이기도 한 것 같다.
파스칼 로지에: 많은 사람들이 호러라는 장르는 십대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 한다. 그런데 그건 편견이다. 나부터도 이미 나이를 먹고, 더 먹어가고 있는데도 좋아한다. 그건 아마도 호러라는 장르가 인간을 가장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어서인 것 같다. 비극적인 영화에선 죽음이 마지막 단계고, 이야기는 죽음을 향해가지만 호러는 죽음이 있은 후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게 실제 세상과 오히려 닮았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가는 존재이지만 죽은 후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호러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장르의 클리셰와도 싸우지만 장르 자체에 대한 편견과도 싸운다. 내가 만약 드라마 장르를 했다면 ‘계속 이 장르를 고집하겠습니까?’란 질문을 받지 않을 것이다.
“예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오염되는 것”
당신도 말했듯이 호러영화에 대한 편견은 분명 존재한다. 그래서 일반 관객들은 편하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호러영화가 해야 하는 이야기,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파스칼 로지에: 어떤 기존의 틀을 뛰어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가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을 새로운 목소리로 발견해내는 것이 호러영화의 역할이라고 본다. 이건 굉장히 혁명적이고 반문화적인 장르다. TV에선 거짓말 같은 뻔한 소리만 하지만 호러영화는 직접적으로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다. 그리고 알고 보면 호러영화는 굉장히 아름답다. 뒤틀린 예술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으니까. 피카소가 얘기한 것처럼 예술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오염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즘은 아름다운 호러영화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할리우드에서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호러물들은 클리셰로 가득하고, 아무런 예술적인 기능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파스칼 로지에: 맞다. 요즘은 호러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오히려 호러 장르 자체를 죽이고 있는 것 같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호러영화는 폭력적이고, 바보 같고, 해비메탈 음악에 문신한 사람들이나 나오는 영화로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호러는 그런 것이 아니다. 내겐 잉마르 베르만도 호러영화 감독이다. <악마의 씨>나 <엑소시스트> 같은 작품들을 젊은 세대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
역시 호러영화 마니아답다. (웃음) 거기다 최근에는 <헬레이저> 리메이크판 감독으로 물망에도 올랐는데.
파스칼 로지에: 실제로 할리우드 영화사와 계약하고 3개월 동안 트리트먼트를 가지고 일을 했다. 그러나 미국 제작자와 의견 맞지 않았다. 그들은 원작을 배반하고 상업적인 부분만 가져간 영화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난 <헬레이저>를 너무나 좋아해서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성사됐다면 내 꿈이 이뤄졌을 텐데, 아쉽다.
마지막으로 <마터스>로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
파스칼 로지에: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관객들이 느끼기 원했다. 영화에 대해 어떤 그럴싸한 코멘트도 하고 싶지 않다. 나도 이 불평등한 세상의 가난한 시민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자동차, 아파트, 비싼 옷 등 모든 걸 가진 것 같지만 실은 그것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하고 그로 인한 슬픔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현실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타인을 고문할 수 도 있고, 범죄도 손쉽게 저지른다. 난 이런 세상이 너무 싫다. <마터스>는 강자들에 의해 고통 받는 약자를 위한 얘기일 수도, 사람들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두려움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마터스>는 세상에 침을 뱉는 영화란 거다.
글. 부천=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부천=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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