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젊고 새로운 상상력에 목말라하고 있는 제13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PIFAN)에서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 <이웃집 좀비>. 촬영, 연기, 편집, 분장 일을 하며 영화계에서 경력을 쌓은 네 명의 감독이 젊고 건강한 상상력으로 한 데 뭉친, 이 독립영화 창작집단의 이름은 ‘키노 망고스틴’이다. 제작비는 2천만 원, 촬영 장소는 감독들 중 한 명의 옥탑방. 하지만 이들의 열정은 옥탑방의 벽지와 소품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장소가 되는 것처럼, 각기 다른 개성의 좀비 이야기 여섯 편을 만들어 냈다. 온 몸에 피를 묻힌 채 생살을 뜯어 먹는 좀비들에게서 인간적인 표정을 끌어낸 오영두, 류훈, 홍영근, 장윤정 네 명의 감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좀비영화로 할 수 있는 얘기는 무궁무진”

작업을 함께 하기로 하면서 다른 소재들도 많이 있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좀비 이야기였나?
장윤정
: 나를 제외한 세 명이 먼저 모여 있었는데, 준비하던 이야기 중 하나가 ‘뼈를 깎는 사랑’ 에피소드의 원래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좀비 이야기였다.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은 사실 좀비 이야기는 아니었는데, 영화의 테마를 같이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진행하다보니까 좀비라는 주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정말 많은 거다. 아이디어들이 무궁무진하게 튀어나왔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좀비라는 소재는 동일하지만 장르가 다르다. 스릴러, 멜로, 드라마, 액션, 판타지까지 다양한 장르가 들어있는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연출하는 감독 개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인가?
장윤정
: 각자의 취향이 맞긴 한데,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류훈 감독이 연출한 ‘백신의 시대’는 액션인데, 원래 류훈 감독은 휴머니스트라 액션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가 ‘휴머니스트가 어떻게 액션을 찍을지 궁금하다’며 몰아가서 찍게 했다.
오영두 : 어차피 시나리오를 각자 쓰는 거니까 각자의 스타일대로. 그렇지만 아이디어는 모두에게서 나온다. 그런 아이디어들을 쏟아내면, 거기서 선택해서 각자의 색깔대로 찍는 거다. ‘뼈를 깎는 사랑’ 같은 경우에 다른 에피소드보다 잔인한 느낌이 들지 않나. 그건 홍영근 감독이 그런 류의 장르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PIFAN 공식 홈페이지의 관객 평가에서 “오랜만에 PIFAN다운 영화를 본 것 같다”는 평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영화의 미래는 밝다”는 평가도 있었고. 관객들의 평가가 무척 좋은 것 같은데, 감독으로서 기분이 좋을 것 같다.
홍영근
: 좋다. 판타스틱하다! (웃음) 오랜만에 PIFAN다운 영화를 본 것 같다는 말은 정말 고마운 멘트였다.

“PIFAN에서 2천만 원으로 장편 만든 감독은 우리가 유일하지 않을까”

은근히 수상이 기대될 것 같기도 한데. 관객상이라든가.
오영두
: 기대되기 보다는… 희망? (웃음) 사실 영화제라는 게 작은 영화들에게는 마켓의 역할을 해주는 경우가 많다. 저예산으로 우리끼리 찍었기 때문에, 관객들과 만나기 쉽지 않다. 영화제는 그런 기회의 통로가 되어주는 거고, 상도 그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윤정 : 자막 보면 알겠지만, 정말 우리끼리 찍었다.

확실히 그런 부분들이 드러난다. 감독들이 배우로도 출연하고.
오영두
: 류훈 감독이 다섯 편, 홍영근 감독이 세 편에 나왔다. 홍영근 감독은 원래 배우로 활동했었다. 류훈 감독은 촬영을 했었고, 나는 영화 연출부에서 계속 일했고, 장윤정 감독은 특수 분장을 했다. 그렇게 모이고 보니까 이 정도면 뭘 찍든 다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세트 같은 건 집에서 하면 되고.

저예산으로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장윤정
: 2천만 원 들었다. 아마 PIFAN 장편 중 최저예산이 아닐까. 촬영 장소는 우리 집이었다. 그 옥탑방에서 에피소드 다섯 편을 찍었다. 한 번은 신문지로도 도배하고, 그런 식으로 세팅만 다르게 해서 한군데에서 계속 찍은 거다. ‘도망가자’의 집이 원래 우리 집의 모습이다.

그렇게 옥탑방 한 군데에서, 아주 적은 돈으로 찍은 영화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관객들 이야기도 했지만, 새로운 한국 좀비 영화의 발견이라는 등의 기대를 받고 있는데.
장윤정
: 넥스트 좀비 세대, 이런 평가를 들으면 정말 좋기는 한데, 뭔가 좀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고. (웃음)
오영두 : 사실 우리가 이 이후로 계속 좀비 영화나 호러 영화를 찍지는 않을 거다. 장르영화를 계속 해나가기는 하겠지만, 그 장르가 훨씬 다양화 될 것이다.

넥스트 좀비 세대라는 평가를 듣게 된 것은 영화 속의 좀비가 이전과는 다르게, ‘이웃집’에서 웃고 울고 했던 평범한 인간이 좀비 되었다는 점을 표현한 부분이 새롭게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다.
홍영근
: 우리 영화 카피에도 그런 말이 있다. “당신이 맘껏 빠져 볼 수 있는 슬프고, 즐거운 상상들.”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작업할 거다”

제목과도 잘 어울린다.
장윤정
: 제목에 대해서도 에피소드가 있다. 원래 제목은 ‘5W1H’였다. 육하원칙. 기획단계부터 여섯 편을 찍을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다음은 ‘여섯 가지 좀비 이야기’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억을 못하는 거다.
오영두 : PIFAN에서 상영되고 있는 <노르웨이의 숲>을 찍은 노진수 감독과 친한데, 영화 제목을 계속 물어봤다. “영화 제목이 뭐라고?” 그 다음에 또, “뭐랬지?”
장윤정 : 그래서 ‘우리 동네 좀비’ 이런 것도 생각해 봤다가, 결국 세 번째로 오영두 감독이 이야기한 <이웃집 좀비>가 제목이 됐다.
홍영근 : 첫 시사 때에도 그런 말을 했는데, 정말 잘 지은 것 같다. ‘이웃’이라는 단어가 참 친근하지 않은가.

각각의 에피소드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배치했다. 그 안에는 좀비가 되기까지의 과정, 좀비로 살아가는 시간, 그리고 다시 인간으로 되돌아 간 이야기까지 들어있는데, ‘그 이후… 미안해요.’ 에피소드에서 표현된 마지막 부분이 <이웃집 좀비>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윤정
: 원래 그 에피소드의 아이디어는 류훈 감독이 낸 것인데, 사정상 내가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찍으면서 이 이야기를 제대로 마무리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앞에 나온 사람들에게 어떤 아픔이 남았는지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류훈 : 장윤정 감독이 찍은 게 잘된 게, 내가 찍으면 무겁게 변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장윤정 감독은 여성스러운 관점에서 그 때까지의 이야기들을 부드럽게 녹여냈다. 만약에 장윤정 감독이 안 찍고 다른 사람이 했다면…
홍영근 : 어휴. 내가 만드는 영화에는 희망이 별로 없다.
장윤정 : 마지막에 결론을 오영두 감독이나 홍영근 감독이 계속 쿨하게 가자고 해서 매일 싸웠다. 나와 류훈 감독은 지금의 따뜻한 결론이 맞다고 생각했고.
오영두 :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냥 쿨하게 갔어도 재밌었을 것 같은데? (웃음)

앞으로도 계속 함께 작업을 하는 것인가?
장윤정
: 지금 오영두 감독이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있다. 이제 오영두 감독이 연출을 하면 거기에 맞춰서 류훈 감독은 촬영을 하고, 홍영근 감독은 배우와 스태프, 나는 제작이나 메이크업을 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연출을 할 때는 또 그 때에 맞춰서 함께 도와주고.

PIFAN을 통해 첫 소개가 되었고, 이제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극장에서 <이웃집 좀비>를 만나게 될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영두
: 우리가 이 영화를 저예산 독립영화로 찍을 수 있었던 건 도와주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운드, 색보정, CG, 음악, 다른 배우들까지, 이 영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다. 사람들. 그냥 아는 사람들에게 “지분 줄 테니 하라”고 들이밀고.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엄청난 돈이 들었을 것이다. 우리 네 명 중에 하나만 없었어도 불가능했을 작업이고. 그 모든 사람들의 노력을 봐 줬으면 좋겠다.

글. 부천=윤이나 (TV평론가)
사진. 부천=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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