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런던의 웨스트앤드 뮤지컬, 프랑스 뮤지컬은 극장이 위치해있는 지명과 국가에서 비롯된 명칭이지만 브로드웨이는 화려함으로, 웨스트앤드는 스토리로, 프랑스 뮤지컬은 서정적인 노래로 대변되며 하나의 장르가 되어가고 있다. 과거에 비해 이제는 그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지만, 7월 20일 LG아트센터에서 프레스콜을 가진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42nd Street>, 이하 <42번가>)는 시청각적으로 화려하고 관객들에게 손쉽게 다가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1996년 라이선스 초연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공연되었던 뮤지컬 <42번가>는 1930년대 불황의 브로드웨이를 배경으로 무명의 뮤지컬 배우 페기 소여가 스타로 탄생하는 아메리칸 드림을 그리는 작품이다. 비슷한 설정의 <드림걸즈>의 ‘드림즈’가 그 어떤 것도 없이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승부를 건다면, <42번가>의 페기 소여는 얇디얇은 다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탭댄스로 승부를 건다. 지난 2004년 공연에서는 입체적인 무대와 빠른 템포의 음악을 선보였지만, 드라마가 충분히 살지 못했다는 점을 보완해 탄탄한 스토리를 구축했다. 특히 화려한 무대와 상반되는 경기불황이라는 사회적 배경은 ‘여기 따뜻한 물 다섯 잔에 티백은 하나’로 음식을 주문하는 작가의 대사 안에서, 어렵게 바닥에서 떼어낸 동전에 그려진 얼굴이 누구인가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행동들에 녹아있다. 라이선스 작품의 특성일수밖에 없는 특유의 외화더빙 같은 연기톤이 아쉽지만, 어려운 사회적 배경과 화려한 춤이 어우러지며 단점을 커버한다. 그야말로 눈과 귀가 즐거운 이 작품은 오늘부터 8월 30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계속된다.

브로드웨이의 제왕, 줄리안 마쉬
박상원ㆍ김법래

박상원과 김법래가 맡은 줄리안 마쉬는 ‘고래심줄 같은 근성’을 요구하며 주연배우부터 댄서들까지 자신이 연출하는 <프리티 레이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혹독하게 채찍질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배우 오디션을 진행하면서도 어떤 식으로 신을 구성할지 소위 ‘각’이 바로 나오는 천재연출가이기도 하며, 이번 작품을 통해 재기하려는 야망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박상원은 TV를 통해 보여준 젠틀하고 인자한 느낌 대신 철저하게 배우들을 통솔하고 관객을 좌지우지하는 카리스마를 선보일 예정이다. 5년 전 공연에 이어 같은 역을 맡은 또 다른 줄리안 김법래는 장에서부터 끌어올리는 듯한 김법래 특유의 강한 베이스 음색으로 박상원에 비해 좀 더 포효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배우로서 연출가 역을 한다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고, 줄리안을 연기하며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김법래)

춤은 못 추는 브로드웨이 여배우, 도로시 브록
박해미ㆍ이정화

이미 브로드웨이에서는 한물간 배우이지만 부자 애인 덕에 <프리티 레이디>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는 도로시 브록은, 공연 연습 중 다리를 다치게 되고 결국 극중 코러스였던 페기 소여를 무대에 오르게 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역을 맡은 박해미는 5년 전 2004년 버전에서, 이정화는 13년 전 초연 버전에서 각각 도로시 브록을 연기했다. 도로시가 부르는 재즈선율로 이루어진 뮤지컬넘버들은 깊은 가창력의 이정화와 만나 더 큰 시너지를 만들어낸다. “초연 당시에는 외국스태프들이 모두 참여한 공연이라서 긴장도 많이 했지만 그만큼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13년 만에 다시 이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도 기대치가 높고, 초연 때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리려 노력중이다. 지금 내 나이에 맡는 역할이라 과거에 비해 성숙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가진 것은 뜨거운 피와 탭슈즈 뿐. 페기 소여
옥주현ㆍ임혜영

그저 스타가 되겠다는 꿈 하나만 들고 상경해 결국 브로드웨이 무대 위 스타가 되는 페기 소여는 옥주현과 임혜영이 함께 한다. 특유의 팝적인 음색을 가진 가수출신의 옥주현과 클래식 성악을 전공한 임혜영은 자신들의 출신만큼이나 극명하게 대비되는 페기 소여를 보여준다. 임혜영의 페기 소여가 막 상경해 럭비공 같은 소년의 느낌을 풍긴다면, 옥주현의 페기 소여는 그에 비해 훨씬 성숙한 아가씨의 느낌을 준다. “탭댄스가 가장 중요한 만큼 준비기간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길었다. 2월 말부터 연습해서 지금 두 계절을 이 작품과 함께 하고 있다. 열심히 준비했고, 만족하려면 멀었겠지만 더 열심히 보여드리겠다.” (옥주현) TV공개 오디션을 통해 <마이 페어 레이디>의 일라이자 역을 거머쥔 임혜영은 제3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직 신인이지만 몇 작품을 거치면서 페기 소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너무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난 느낌이다.” (임혜영)

유쾌한 플레이보이 빌리 로러, 박동하
극중극으로 등장하는 <프리티 레이디>의 남자 주인공 빌리 로러는 오디션장에 늦은 페기 소여에게 관심을 보이며 그녀를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게 도와주고, 결국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빌리 로러 역을 맡은 박동하는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 극단 사계에서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엘리자베스>의 황태자 등 굵직굵직한 작품을 선보였고, NHK의 한국어 강좌 <안녕하십니까?>를 윤손하에 이어 진행하기도 했다. “귀국 후 <김종욱 찾기>의 어리숙한 역을 하다가 이번에 플레이보이 기질이 다분한 역을 맡았다. 그래서 일부러 어깨도 쫙 펴고 연기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보일지 스스로도 너무 궁금하다.”

관전 포인트
<42번가>에서 가장 주목해야 되는 부분은 두말할 것 없이 탭댄스다. 30여명의 배우들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탭슈즈의 사운드는 그대로 음악이 된다.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탭댄스를 할 줄 안다”는 페기 소여는 물론이거니와, 점심을 먹던 카페의 웨이터들이 등퇴장하는 장면에서도 그들의 발은 쉬지 않는다. 오프닝에서 커튼콜까지 계속되는 탭댄스에 무대 위 배우들의 발이 성할까 싶다가도 더 강하게, 더 높이 발을 굴렀으면 싶기도 하다. 특히 화려한 뉴욕의 야경을 배경으로 “돈 벌어 많이”를 외치며 선보이는 코인댄스 등은 쇼뮤지컬의 진수를 선보인다.

사진제공_클립서비스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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