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 MBC 월-화 저녁 9시 55분
정치 9단. 자신의 등장에 낯빛이 굳은 김서현(정성모)과 만명부인(임예진)에게 “중앙 정계로 나온 분들이 이렇게 여유가 없어서야”라며 슬그머니 빈틈을 파고드는 미실(고현정)의 모습은 현대 정계에서 볼 수 있는 정치 9단의 그것이었다. 그래서 미실은 어떤 폭군보다도 두려운 존재다. 자신에게 해가 될 세력은 철저히 제거하지만 반정이 일어나기 전에 라이벌을 어를 줄도 안다. 그러니 권력이 공고할 수밖에 없다. 위천제를 이용해 가야 유민을 내쫓으며 자신의 계략을 과시한 후 다시 정략결혼을 빌미로 김서현에게 화친을 청하는 미실과 비교하면 천명(박예진)과 덕만(이요원), 유신(엄태웅)은 대학교 총학생회 임원만큼의 정치력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듯하다. 현실적인, 혹은 실리적인 고려를 할 때 미실과 타협하려는 김서현이나 굴복하려는 덕만의 선택은 당연하게 보일 정도다. 결국 정치라는 것은 성공 가능한 경우의 수에서 가장 실질적 이득이 되는 것을 취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청자들이 미실이라는 드라마 속 인물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현실 정치의 인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치가 아니라 분노가 먼저”라는 유신의 말은 그래서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타협도 좋고, 협상도 좋고, 계략도 좋다. 하지만 그 모든 정치적 활동에 앞서는 것은 정치적 입장이다. 그것은 흔히 신념이라 불리는 것이다. 어떤 현상에 대해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면, 옳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일에 분노하지 못한다면 어떤 정치적 활동도 신념 없는 권력에의 욕구로 귀결될 뿐이다. 삼국시대에도, 2009년에도.
글 위근우

<놀러와> MBC 월 밤 11시 5분
20일의 MBC <놀러와>는 이효리, 안혜경, 박시연, 메이비 등 서로 친구라는 서른한 살 연예인들을 모아놓은 ‘31 특집’이었다. 하지만 이 서른한 살 연예인들은 그들이 밝히듯 친해진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사이였고, 그만큼 토크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었다. <놀러와>의 MC와 패널들의 친구들을 모아놓은 ‘놀짝소’(놀러와 가족의 짝꿍을 소개합니다)가 그들끼리의 사연만 이야기해도 2회분을 만들 수 있었지만, ‘31 특집’은 그들끼리의 사연이나 대화가 그다지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놀러와>의 장점이 드러나는 순간은 그 때부터다. 매주 특정 주제를 정해놓고 진행하는 이 토크쇼는, 역설적으로 그 주제를 제외하면 어떤 식의 진행이든 가능한 자유도를 갖고 있다. <놀러와>의 제작진은 ‘31 특집’에 과거 SBS <야심만만> 같은 설문조사를 접목시켰고, ‘골방 토크’는 게스트와 <놀러와> 패널 사이의 단체 미팅이라는 콘셉트의 콩트처럼 진행됐다. 그렇게 게스트의 성격에 맞는 판이 짜이면서 ‘31 특집’의 여성 게스트들은 자연스럽게 30대라는 나이와 연애에 대해 편하게 털어놓았고, 게스트간의 화학 작용은 크지 않았지만 일정 수준의 웃음은 줄 수 있었다. <놀러와>의 장점은 단지 게스트마다 콘셉트를 다르게 가져가는 게 아니라, 매회 그 게스트에 맞춘 또 다른 형식의 토크쇼를 만들어낸다는데 있다. 덕분에 매번 ‘빵빵 터지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늘 일정수준을 유지해낸다. 그래서 <놀러와>는 지금 토크쇼의 MC나 게스트가 아닌 제작진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글 강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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