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공포영화의 괴작으로 기록된 <왼편 마지막 집>(국내 비디오 출시제목 <분노의 13일>)의 예고편은 이런 말로 끝난다. “영화를 보다 졸도하고 싶지 않다면 이렇게 계속 되뇌어라.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야,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야,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야….” 지난 17, 18일 제13회 부천판타스틱영화제(이하 PIFAN)을 통해 국내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 <왼편 마지막 집>은 프레디 크루거라는 희대의 살인마와 <스크림>시리즈를 세상에 내놓았던 공포영화의 대부 웨스 크레이븐의 데뷔작을 2009년 데니스 일리아디스 감독이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1972년 원작이 기괴하고 잔인한 B급 공포영화의 호흡으로 가득했다면, 37년 후 다시 찾아간 이 ‘왼편 마지막 집’은 잔혹함은 여전하지만 다소 서정적이면서도 음울한 기운에 둘러싸여있다.

딸 메리와 함께 별장으로 여름휴가를 떠나는 부부, 일견 평화로워 보이는 가족이지만 이들 사이에는 1년 전 죽은 아들 혹은 오빠가 만들어낸 미세한 균열이 있다. 메리와 친구 페이지는 우연히 비밀스러운 눈빛을 지닌 소년 저스틴의 거처에 초대 받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서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 도피중인 저스틴의 아버지와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삼촌과 맞닥들이게 되고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기 위해 도망치던 중 소녀들은 숲에서 끔찍한 꼴을 당한다. 웨스 크레이븐이 제작자로 참여한 2009년 <왼편 마지막 집>은 다소 억지스러운 우연이 이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견디기 힘들만큼 충격적인 신들이 도처에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위협과 깜짝 쇼로 잦은 비명을 선사하기 보다는 관객의 심장을 냄비 위에 올려놓고 서서히 졸아들게 만드는 방법을 택한다. 소녀들의 도주가 시작된 이후 올려진 긴장의 추는 단 한번도 내려지지 않은 채 묵직하게 마지막까지 달려간다.

딸을 무참하게 해한 범죄자들을 향한 부모의 복수는 차마 차가워질 틈을 주지 않은 채 스크린 위로 뜨겁고 빠르게 서빙 된다. 칼과 총, 집기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음식물쓰레기 분쇄기와 전자레인지 같은 일상적인 주방용품들의 독창적인 쓰임새를 확인할 정도로 잔혹한 장면들은 이어진다. 하지만 자비 없는 살인마, 싱싱하고 젊은 육체의 희생자, 인적 드문 호숫가 별장, 갑작스런 폭우와 고립 등 여름 공포영화의 정석을 벗어나지 않는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공포의 근원은 그 수많은 장르적 클리세의 기저에 깔린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 아니다’라는 진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고, 아무나 집에 들이지 마라”는 부모들의 평범한 경고, 그런 일상에 깃든 공포야 말로 이 ‘왼편 마지막 집’에로의 초대가 진정으로 두려운 이유다.

*는 오직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마니악한 영화가 아닌, 곧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영화들을 반 발 앞서 소개합니다.

글. 부천=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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