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음악 하는 태도도 달라진 것 같다. ‘숫자 놀이’는 가사 안에 숫자를 숨겨놓은 곡인데, 곡만 들을 때는 그런 의도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스킬을 굳이 과시하지 않으려는 느낌이다. 왠지 초탈한 것 같기도 하고.
타이거 JK
: ‘숫자놀이’는 이번 앨범에서 가장 핵심적인 곡 중 하나다. 전에는 라임이나 플로우 같은 부분에서 기교의 재미를 많이 느꼈다. 그런데 지금은 쉬운 가사에 의미를 살짝 감춰놓는 게 더 재밌다. ‘숫자놀이’에는 영어로 ‘철학도 없고, 학문도 없고, 문학도 없고, 진리도 남지 않는. 좀비들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사람을 영혼 대신 숫자로 보는 거.

그런 자세는 역시 가족의 변화에서 시작된 건가.
타이거 JK
: 한동안 자포자기에 빠져 있었다. 예를 들어서 어차피 안 낫는 병이라도 살기 위해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런데 그것도 시간이 지나면 습관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약 먹고 하루 지나고, 안 움직이면 안 되는데도 어차피 안 될 건데 뭐 하는 생각이 들고. 어차피 안 낫는 거 어때, 음반시장 다 망했는데 뭐. 그랬는데 ‘8:45 Heaven’이 예상외로 많은 분들이 좋아하면서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때 아이가 생겼고. 내 인생에서 삶과 죽음이 빠르게 교차하면서 뭔가 변화가 시작됐다.

“나 같은 놈 하나쯤은 균형을 맞춰줘야 할 것 같다”

삶이 음악을 바꾸는 건데, 요즘 당신의 생활은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타이거 JK
: 물론. 예를 들어 내 앨범 재킷은 스튜디오에서 찍은 몇 컷을 빼면 모두 지금 사는 의정부에서 찍은 것이다. 집 앞이나 지하의 작업실에도 찍고. 대부분 50미터 거리의 동네에서 찍었다. 그런 사진으로 음악에 미치는 내 주위의 영향을 담아보고 싶었다.

음악의 감성에 의정부라는 지역이 특별한 영향을 미치나? 보통 뮤지션들은 홍대나 강남에서 작업을 하곤 하는데.
타이거 JK
: 내 아내의 고향이고. 모든 가족들, 사촌들, 이모님들이 이곳에 지낸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서울과 의정부를 왕복하면서 음악 활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지하실에서 생활을 많이 해야 하고. 꼭 이걸 부각시키거나 가난을 마케팅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의 쉼터는 의정부 녹양동인 거다. 여기서 조단이 놀고, 내가 음악을 하고, 싸움도 나고, 연인들이 데이트도 한다. 그런 곳에 대한 애정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책임져야할 사람들도 많아진다. 앨범을 만들 때 상업성에 대한 부담 같은 건 안 생기나. 트렌디한 음악을 해야 한다든가. 여전히 당신 음악은 요즘 트렌드와는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심지어 더블 앨범을 냈고.
타이거 JK
: 항상 그런 문제에 부딪친다. 하지만 동시에 책임감은 아니고, 반항심 같은 게 생긴다. 지금 트렌드를 부정하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 같은 놈 하나쯤은 균형을 맞춰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안 그러면 완전히 트렌드에 트렌드의 끝으로 가서 조그만 점으로만 모일 것 같았다. 일단 우리 회사에서 나올 친구들부터 앞으로 설 자리가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니까.

하지만 회사 사람들은 걱정이 많겠다. (웃음)
타이거 JK
: 음악을 만들 때는 그냥 이기적인 놈이 된다. 앨범이 나오면 그때, 회사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내가 또 일을 저질렀다 싶다. 그래서 정글 엔터테인먼트의 식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물론 나도 음악을 팔고 먹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일단 내 음악을 해야 하나보다. 회사에서는 그걸 가지고 포장을 해야 하고.

한 회사를 이끌면서 어려운 점이 많겠다.
타이거 JK
: 솔직히 부당한 일을 당할 때는 복수하고 싶어질 때까지 있다. 유명해지는 건 정말 싫은데, 가끔은 유명해져야겠다 싶을 때도 있고. 유명해져서 바꾸고 싶은 어떤 시스템도 있다. 예전에는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안했다. 일부러 방송 금지되려고 했던 적도 있고. 그런데 지금은 회사 식구들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 없다.

“같이 음악하는 친구의 어머니를 위해 인증샷을 보내드리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리쌍 같은 팀들도 아무 조건 없이 당신의 회사에 들어온다. 소속 뮤지션은 점점 늘어나고. 그 비결은 어디에 있나.
타이거 JK
: 거기에 대해서는 되게 뿌듯하다. 다들 아무 조건 없이 자발적으로 와줬다. 물론 유혹도 많았지만, 자기 하고 싶은 방식대로 음악 할 수 있는 환경을 원하는 친구들이 자발적으로 오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내가 굉장히 여유롭게 살면서 과시하려고 음악을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신에 대한 애착이 크다. 그래서 잘 알려지지 않지만 재능이 많은 뮤지션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다. 같이 음악하고 있는 뮤지션들이 대부분 그런 과정을 통해 들어왔다. 그래도 내가 조금이라도 메이저에 발을 닿고 있는 사람이니까 그 곳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닫히지 않게 해주고 싶다.

앨범에 들어있는 유일한 스킷(곡 사이 사이 굉장히 짧게 들어가는 대화나 음악)에서 뮤지션 랍티미스트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타이거 JK에게 인정받았으니까 계속 음악 할 수 있다고 하는 내용이 나온다. 당신은 지금 후배 뮤지션들에게 그런 의미를 갖는 것 같다.
타이거 JK
: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다만 나는 재능 있는 친구들이 음악을 그만두는 걸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의 재능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 랍티미스트의 스킷도 실제 상황이었다. 어머니는 도저히 못 참겠다고 음악 관두고 학교로 가라고 하고. 그런 상황에서 타이거 JK하고 음악 한다니까 “니가 뭔데 타이거 JK하고 하냐”고 하셨다더라. 그래서 같이 음악 만들고, 인증샷 찍어서 어머니한테 보내드렸다. (웃음) 앨범에 들어있는 스킷은 그 상황을 그대로 반복한 거다.

랍티미스트의 어머니는 어떻게 당신을 아나.
타이거 JK
: MBC <놀러와>를 봤다고 하시더라. (웃음) 랍티미스트가 만든 ‘트루 로맨스’가 그 상황에 대한 노래다. 사랑 노래 같지만, 음악에 울고 웃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니까. 그리고 ‘트루 로맨스’는 <뮤직 뱅크> 9위로 올라갔고, 랍티미스트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면서 고맙다고 문자를 보내주셨다.

라킴이 당신의 앨범에 참여하면서 “우리는 서로 지구의 반대편 끝에 있지만, 힙합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서로 똑같이 나란히 가고 있다”는 글을 보낸 게 떠오른다.
타이거 JK
: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면 라킴이나 지브라 같은 뮤지션들이 내 앨범에 참여해주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지브라는 예전에 내한 공연 때 내가 오프닝에 서면서 알게 됐는데,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어서 쉽게 친해졌다. 라킴은 지금 힙합 신에 대한 회의를 갖고 있어서 동양까지 한 번 묶어서 어떤 붐을 일으키고 싶어 했었다. 그래서 설마 했는데 진짜로 아무 조건 없이 곡에 참여해줬다. 심지어는 한국에 대해 더 알고서 랩을 해야겠다면서 1주일만 더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 사이에 한국에 대한 공부를 한 거다. ‘Monster’ 영어 가사에 들어있는 ‘킹 세종’ 같은 표현이 거기서 나온 거다. 그런 점에서 이 앨범은 정말 의미 있다.

한 사람의 생활이 결국 미국에 있는 힙합 뮤지션까지 참여한 힙합 앨범이 됐다. 그러면 마지막 질문. 당신에게 힙합은 무엇인가.
타이거 JK
: 처음 활동할 때 사는 방법이라고 대답했었다. 지금도 그런 것 같다. 사는 방법이라는 게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제스처를 하느냐가 아니다. 그냥 사람이 사는 방법이 힙합 같다. 지문처럼 나에게만 있는 자국 같은 걸 표현하는 거. 힙합에서는 여전히 모든 사람이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몸집이 큰 사람도, 키 작은 사람도, 여드름이 많이 난 사람도, 눈이 안 보이는 사람도 누구나 힙합의 스타가 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사는 방법 중에서도 좋은 것 같다. 자기 개성만 독특하면. 자기 본모습으로 최고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이 시대에는 특히 더 그런 것 같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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