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안노 모요코는 <신세기 에반겔리온>으로 유명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부인이다. 부인이라서 안노는 아니고 결혼 전부터 안노였는데 발음만 같고 글자는 다르다. 그녀의 작품은 결혼 후 점점 달라졌는데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 전부터 결혼 직후까지의 작품을 그 이후의 작품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녀의 작품을 순정만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그림은 다소 거칠지만 틀림없이 순정만화풍이다. 하지만 내용은 제법 적나라해서 순정만화라고 하면 연상되는 분위기와는 영 딴판이다. 그런데 네이버 국어사전에 의하면 ‘순정’은 ‘순수한 감정이나 애정’이라는 뜻이라니, 그렇다면 그것들은 또 분명히 순정만화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항상 순수하게, 혹은 단순하게 그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해피 매니아>는 20대 중후반의 평범한 일본 여성 시게타의 연애 실패담이다. 그녀는 마치 직업적 전문성과 사고하는 기능은 빼고 대신 그 자리에 아드레날린을 다량 첨가한 캐리 브래드쇼 같다. 이기적이고 속물적이고 변덕스럽고 과격한 민폐쟁이다. 이런 이유로 이 만화를 싫어할 수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그건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사람이 옆에 있다면 분이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겠지만, 어디까지나 만화 속의 일이고 우리는 그녀로부터 안전하니까 맘 놓고 이 좌충우돌 코미디를 즐기면 된다(같은 이유로 나는 캐리 브래드쇼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대놓고 남의 애인을 빼앗는다든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권모술수를 쓴다든가 하는 그녀의 솔직 대담 치졸한 행동들은 우리 마음 저 밑바닥에 단단히 가둬놓은 짐승을 풀어놓은 것 같아 통쾌하다. 여자들은 어머머머 얘 어쩜 이래, 하면서도 한편으론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울 수도 있겠고 남자들은 헉, 그때 걔도 이래서 그랬었나! 할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걸 그리는 안노 모요코의 연출은 세련되고, 그림은 패셔너블하다. 18금 딱지가 붙어서 무섭다거나 11권이라는 분량이 많다고 느껴지시는 분들껜 단 3권으로 끝나는 <러브마스터X>를 대신 추천하고 싶다. 참고로 베드신 묘사의 정확도는 <해피 매니아> 쪽이 높지만 내용만 두고 따져보면 <러브마스터X>쪽이 더 막 간다.

글. 올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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