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6일, 스테파니 조앤 안젤리나 제르마노타라는 긴 본명을 가진 레이디 가가가 한국에 온 뒤 벌어진 몇 가지 일들. 레이디 가가는 속옷 하나에 전신 망사 옷을 걸치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녀의 쇼케이스에는 찢어진 레깅스를 입은 서인영이 찾아와 “레이디 가가 스타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M.net <엠 카운트다운>의 방청객은 레이디 가가의 등장에 미친 듯이 환호했다. 그 중에는 레이디 가가의 머리 모양을 코스프레한 열성팬들도 있었다.

이건, 조금 초현실적인 일이다. 한국에서 전신에 망사를 두른 여자가 무대에 서서만은 아니다. ‘까까 여신’이 데뷔 앨범 ‘Just dance’‘Poker Face’로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기 전부터, 한국에는 그의 팬들이 존재했고, ‘Poker Face’가 미국에서 위력을 떨칠 때 쯤 한국의 라디오 차트에서도 몇 주 연속으로 팝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들의 팬들은 자발적으로 여러 사이트에 레이디 가가를 홍보했고, 그들은 의 발매사인 유니버설 뮤직에서 레이디 가가 코스프레 이벤트를 하자 서울 한 복판을 ‘가가 머리’와 ‘가가 선글라스’를 하고 활보했다. 팝이 한국에서 예전 같은 지배력을 갖지 못하는 21세기에, 레이디 가가는 비욘세처럼 메가 히트를 여럿 기록하지도, CF 음악으로 알려지지도 않은 채 가장 화제성 있는 해외 뮤지션이 된 것이다. 그것도 속옷만 입은 채 거리를 돌아다니는 패션을 하고서 말이다.

아웃사이더의 군대를 이끄는 별난 수장

물론 비슷한 경우는 작년에도 있었다. 레이디 가가와 같은 학교를 나온 패리스 힐튼은 그의 사진을 이곳저곳에 퍼뜨린 네티즌들에 의해 한국에서도 셀러브리티가 됐다. 레이디 가가 역시 음악 이전에 사진으로, 유튜브의 동영상으로 알려졌다. 레이디 가가는 클럽 댄스 음악을 하지만, ‘Just dance’와 ‘Beautiful, dirty, rich’ 등의 뮤직비디오에는 클럽이 등장하거나, 춤을 추는 모습이 그리 많지 않다. 대신 이 뮤직비디오들은 패션지 <보그>나 <나일론>에 나올 법한 감각적인 미장센으로 구성된 컷을 연결한다. 그가 내한 기자회견에서 “음악과 패션, 무대장치에 필요한 여러 기술 등은 모두 하나의 패키지를 이뤄서 하나의 스타일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그는 뮤지션이라기보다는 음악이 포함된 어떤 스타일을 보여주는 뮤지션이자, 퍼포머이며, 패션 아이콘이다. 레이디 가가는 2009년 한국에서 팝이 음악과 빌보드 차트,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아닌 패션과 <보그>, 유튜브로 수용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레이디 가가는 패리스 힐튼과 비슷한 과정을 통해 패리스 힐튼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힐튼 가문의 상속인은 돈으로 기존 할리우드 셀러브리티의 패션과 라이프 스타일을 극단까지 보여줬다. 반대로 레이디 가가는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들에게 새로운 영향을 주는 스타일의 시작이다. 레이디 가가의 공연에 그의 롤모델인 마돈나가 찾아와 그에 대한 찬사를 보냈기 때문이 아니다. 레이디 가가는 패리스 힐튼과 같은 학교를 다닐 만큼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그의 이름은 록의 클래식인 그룹 퀸의 ‘Radio gaga’에서 따왔다. 하지만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패션을 조롱하던 아이들로 인해 억압받던 학교에서 탈출해 클럽에서 스트립 댄스를 췄고, 한 때는 마약에 빠졌으며,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혔다. 레이디 가가가 자신의 게이 커뮤니티 팬들에게 ‘아웃사이더의 군대’라고 표현한 것은 그의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팝이, 할리우드의 스타들이 고상한 팝 컬처처럼 변하고 있을 때, 레이디 가가는 아웃사이더의 군대를 이끌고 그들의 문화를 주류로 끌어들였다.

스타일이 컬처를 압도하는 시대의 전령사

레이디 가가와 마돈나의 차별점도 여기서 비롯된다. 2000년대의 마돈나가 수많은 하위 문화의 트렌드를 하나로 집약시켜 스타일로 소화하는 트렌드 세터라면, 레이디 가가는 그 문화들의 정서적인 코드까지 그대로 반영한다. 마돈나의 모든 것이 세련됐다면, 레이디 가가의 스타일은 클럽의 마이너리티다. 레이디 가가가 데뷔 시절 음반사로부터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한 채 2년여 동안 온갖 클럽을 돌아다니고, 프로그램 디렉터와 계속 식사를 하면서 스스로 홍보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현재의 대중문화예술 분야에서 내가 완벽히 소속돼 있는 것 같지 않고, 좀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의 레이디 가가는 스타일 아이콘이 됐지만, 그는 할리우드와 빌보드로 대표되는 미국 대중문화에서 여전히 비주류적인 존재, 혹은 별난 아티스트다. 레이디 가가가 자신의 모든 무대와 스타일을 함께 창조하는 ‘House of gaga’를 결성하면서 앤디워홀의 팩토리를 모델로 했다고 말한 것은 튀는 뮤지션의 허세가 아니다. 앤디워홀의 작품이 소더비에서 거래되는 현대 사회에서, 레이디 가가는 다시 클럽에서 망사 옷과 클럽 음악으로 21세기의 팝아트를 하고 있다. 그것이 한 때의 유행이 될지, ‘아트’가 될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그래서, 레이디 가가가 한국에서 이른바 ‘핫한 트렌드’로 받아들여지는 요즘의 상황은 그 자체로 레이디 가가의 스타일처럼 대중문화의 아방가르드다. 미국 하위 문화에 대한 어떤 기반도 없는 곳에서, 레이디 가가가 제시한 패션들이 서인영의 찢어진 레깅스를 통해, 혹은 손담비의 선글라스와 재킷을 통해 조각조각 나눠져 각각의 아이템으로 수용된다. 스타일은 전세계에서 동시간대로 소비되지만, 미국의 아티스트와 한국의 수용자의 문화적 바탕은 오히려 점점 더 큰 간극을 보여주는 시대. 지금 우리는 셀러브리티의 스타일이 아티스트의 컬처를 압도하는 시대를 살기 시작했다. 그 점에서 레이디 가가는 이미 정답을 내놓은 것일지도 모른다. ‘Just dance’. 그저 즐겨라. 그게 팝이고, 예술이다.

사진제공_ 유니버셜 뮤직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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