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회견 중, 츠마부키 사토시가 웃음을 터트리자 사방에서 귀가 따가울 정도로 카메라 플래쉬가 연신 터져 나왔다. 한 순간도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그의 웃음은 유난히 크고 환하다. 야무진 얼굴 생김을 배반하며 무너지듯 미소가 번지는 그 순간의 드라마틱함은 그가 울 때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여 지는지 생각하지 않는 듯 멋대로 표정을 구기며 울어버리는 츠마부키 사토시는 참 잘 우는 배우다. 그것은 그가 단지 눈물을 잘 흘린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츠마부키 사토시는 눈물에 진심을 담는다. 그래서 그는 밝고 유쾌한 작품들 보다는 눈물의 장면으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배우다. ‘눈물의 왕자’가 성장해 온 궤적을 되새겨 보았다.

<런치의 여왕> 2002
‘카페 마카로니’의 네 형제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인 나츠코(타케우치 유코)의 연애담을 그린 <런치의 여왕>에서 츠마부키 사토시는 가장 성실하고 순박한 셋째 쥰자부로를 연기했다. 앳되어 보일 정도로 예쁘장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집스러움이 묻어나는 그의 얼굴은 너무 순진해 연애에는 젬병이지만 아버지의 가게를 이어받기 위해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쥰자부로의 성격과 제법 잘 어울렸다. 특히 아버지의 장례 후, 상복을 입은 채 주방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흔적을 찾으며 소리 내어 우는 그의 찡그린 얼굴은 마치 어린아이 같아 보였다. 특별히 심각하거나 무거운 장면 없이 아기자기한 드라마답게 쥰자뷰로는 금방 눈물을 닦고 가게 영업을 재개한다. 그러나 그는 이후로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된다. 대부분 츠마부키 사토시의 영화에서처럼 눈물은 그에게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였던 셈이다.

<조제, 호랑이 물고기들> 2003
소년은 운다. 주저앉아서 엉엉 운다. 제가 버림 받은 것도 아니면서 소년은 서럽게도 운다. 서러운 것은 실연 때문이 아니다. 죄책감 때문도 아닐 것이다. 한 시절이 지나는 것을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바다 깊숙한 곳을 굴러다니는 말 못하는 조개 같은 삶으로 다시 돌아갈 조제를 알지만, 이제 다시 그녀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몸서리치게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소년은 어떤 얼굴을 했던가. 찡그렸던가. 입술을 깨물었던가. 관객들이 기억 하는 것은 그의 표정, 혹은 목소리가 아니다. 다만 웅크린 몸과 무너진 어깨, 그의 실루엣이 울고 있는 풍경이다. 가진 것 없고, 걷지도 못하는 소녀 조제와 한 철 사랑을 나눈 대학생 츠네오를 연기하면서 츠마부키 사토시는 청춘스타라는 수식을 벗어나 배우가 되었다. 사람들은 비로소 가장 초라한 장면을 연기하면서 오히려 빛이 나는 배우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오렌지 데이즈> 2004
처음 연상의 애인에게 실연을 당했을 때, 카이는 빈 강의실에 숨어서 아이처럼 울었다. 그러나 너무도 태연하게 이별 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하는 사에(시바사키 코우) 앞에서 카이는 끝내 눈물을 삼킨다. 대신 “스물두 살에서 나의 연애는 끝이다. 영원히 그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라며 고집스럽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애처롭게 떨린다. 물론, 청각장애인인 사에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졸업을 앞둔 평범한 대학생 카이의 연애담 같지만, 사실 <오렌지 데이즈>는 성장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츠마부키 사토시는 눈물을 흘리지 않음으로써 카이의 성장을 보여준다. 이제 슬플 때 마음껏 울 수 있는 소년은 없지만, 대신 그 자리에 등장한 어른 남자는 가슴으로 운다. 그리고 카이와 함께 한 뼘 더 성장한 츠마부키 사토시는 이로써 감정의 폭발력 뿐 아니라 절제의 미덕까지도 갖춘 배우가 되었다.

<눈물이 주룩주룩> 2006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이복남매라는 설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는 언제 반복해도 보는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법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사실 <눈물이 주룩주룩>에서 츠마부키 사토시가 연기한 요타로의 모습은 사랑하는 마음을 숨긴 이복남매라는 설정이 무색할 정도로 믿음직스럽고 다정다감한 친오빠에 가깝다. 여동생 카오루(나가사와 마사미)가 독립을 선언하고 떠나던 날, 그는 눈물을 참기 위해 코를 틀어쥐고 등을 보이지만 눈물은 끝도 없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러나 그것은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흐르는 눈물이다.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노래 ‘淚そうそう’의 가사는 작사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친오빠를 그리며 쓴 것이다. 그 사연을 알게 되면 더더욱 요타로에게 불순한 감정을 섞을 수 없게 된다.

<보트> 2009
두 남자는 뜨겁게 포옹하거나, 살갑게 등을 두드려 주지 않는다. 대신 둘은 함께 도망을 치고, 같이 노래를 부르고, 서로 뒤엉켜 주먹다짐을 한다. 그 사이에 무뚝뚝한 얼굴로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던 토오루는 형구(하정우)에게 제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고, 형구는 토오루를 위해 처음으로 희생을 결심하기도 한다. 친구가 될 겨를도 없이 가족이 되어버린 두 남자는 너무 붙들어야 할 것이 많거나, 혹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빈손이기에 서로의 짐을 나눠 드는 법을 쉽게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토오루는 형구를 끌어안고 목 놓아 통곡을 한다. 울어준다는 것은 가족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가장 소박한 일이지만, 가족이 아니고서는 해주기 어려운 절실한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토오루는 형구에게 어떤 인사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물로 모든 말을 다 한 셈이다. 고맙다고, 그리고 너는 내 형제라고. 사실 <보트>에서 츠마부키 사토시가 우는 장면은 그의 한국어 연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기에 편한 부분이었다. 눈물이라는 만국 공통의 대사야말로 그가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언어인 셈이다.

<천지인> 2009
전국시대, 첫 출전에서 적군을 죽이기는커녕 그 참혹함에 혼비백산 한 카네츠구는 가족들과의 연락도 자제한 채 암자에 은둔한다. 그사이 어머니가 병을 얻지만, 근신중인 처지에 선뜻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카네츠구는 결국 어머니가 임종하는 순간이 되어서야 집을 찾는다. 숨을 거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통곡을 하는 카네츠구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순간, 새삼 츠마부키 사토시의 눈물 연기에 감탄하게 된다. 소리와 표정이 하나가 되듯 천진하게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은 소년의 슬픔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눈물은 곧 성장의 발판. 카네츠구는 두 번 다시 울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유약한 소년기에 작별을 고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켄신으로부터 ‘진정한 의(義)’에 대한 가르침 받은 그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고인다. 그러나 이번에 그를 울린 것은 속세의 감정이 아니라 가슴을 울리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비록 그 출발은 어수룩해 보일지라도, <천지인>의 주인공 나오에 카네츠구는 우에스기 카케카츠 집안의 명장으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덕분에 당분간 츠마부키 사토시의 눈물 연기를 보기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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