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당신에게 8주간의 연탄배달 자원봉사를 부탁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만만찮은 과제에 난색을 표할 것이다. 그런데 거절당한 상대가 8주 대신 1주는 어떠냐고 제안해 온다면 어떨까.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 하나, 처음부터 1주짜리 자원봉사를 부탁하면 사람들은 대개 거절하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5월 25일 방송된 EBS <다큐 프라임> ‘16인의 성공도전, 설득의 비밀’ (이하 <설득의 비밀>)은 이처럼 “큰 요청과 작은 요청 중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에 따라 성공 확률이 달라진다”는 설득의 기본 원칙을 실제 상황으로 보여주며 시작되었다. ‘설득’이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시추에이션 다큐멘터리라는 기법을 선택한 <설득의 비밀>에서는 교사, 학생, 영업사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16 명의 일반인 참가자들이 6주 동안 매주 주말마다 합숙을 하며 주어진 상황에 필요한 설득의 기술을 배우는 과정을 담았다. 현재 3부까지 방송을 마치고 6월 8일과 9일 4, 5부의 방송을 앞둔 안소진 PD를 만나 이 독특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처음 ‘설득’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안소진:
원래 말하기, 듣기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소통’이라는 주제를 잡을까 했지만 좀 겉도는 얘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설득’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했는데 진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어떤 순간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가, 그것을 결정짓는 건 사람의 말인지 행동인지 아니면 복합적인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거기서 바라봐야 하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총체적인 이야기다.

“설득당하는 사람이 말을 더 많이 하는 게 설득에 유리”

말하고 듣기, 소통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과정과 결과를 실체적으로 보여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방식에 대한 고민이 컸을 것 같은데.
안소진:
그렇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 몇 번이나 엎고 다시 기획을 했다. 다행히 그동안 EBS에서 좋은 인문과학 다큐멘터리가 많이 만들어져 왔기 때문에 심리 실험이나 대규모 테스트를 통한 검증 같은 방식이 가능했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인간을 다루는 학문 영역은 해석하기에 따라 이렇게 볼 수도 있고 저렇게 볼 수도 있으니까 대규모를 대상으로 한 실험의 결과만 이야기하는 것보다 감정이입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다 그렇다’라고 하기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까, 그냥 ‘저 사람은 저런데 나도 그럴 수 있구나’ 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방식을 고민하다가 오디션을 봐서 참가자들을 모집하기로 했다.

16명의 참가자들이 주인공이 되다 보니 다큐멘터리이면서도 리얼리티쇼에 가까운 느낌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어떻게 뽑았나?
안소진: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을 받았다. 처음에는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부부를 대상으로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이미지를 잘 가꾸고 사회를 설득해야 하는 취업준비생이나 새로운 조직 내에서의 생활 속에서 생존 기술로서의 설득이 필요한 사회초년생과는 달리 부부는 좀 다른 영역의 의사소통방식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빼게 됐다. 그 밖에 교사나 영업직으로 일하시는 분들 가운데는 우리가 직접 접촉해서 출연하게 된 분들도 있다. 원래는 자영업자도 대상에 넣고 싶었는데 6주 동안 주말마다 시간을 낸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출연료를 많이 드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도 거기에 신경 쓰지 않으셨고, 처음 계획보다 길어진 일정에도 흔쾌히 응해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16명의 일반인을 매주 모아 촬영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겠다.
안소진:
대구가 집이고 진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학생이 제일 멀리 사는 분이었다. 이 분은 촬영 전날 아예 잠을 안자고 새벽 기차로 올라오다 충북 영동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 교사 참가자와 만나 촬영지인 파주까지 함께 오셨다. 피곤하셨을 텐데도 참 열심히 해주셨다.

‘자퇴를 원하는 학생의 마음을 돌리기’나 ‘와인회사 사장으로부터 기부금 받아내기’ 등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시추에이션에 참가자들을 던져 놓고 직접 설득하거나 설득 당하게 만들었는데, 매회 이러한 상황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었나.
안소진:
일단 1부 ‘당신의 설득 습관은 안전한가’에서는 기본적으로 설득이 무엇인가를 개괄적으로 느끼고 자신의 설득 습관을 체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여기서 설득하는 사람보다 설득당하는 사람이 말을 더 많이 하는 게 성공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7:3 비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2부 ‘달인에게 배운다’에서는 설득이 나로부터 시작해 나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맞추는 게 높은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를 했고, 3부 ‘설득 레이더를 맞춰라’ 에서는 혈액형별 심리학 같은 속설처럼 의사소통 방식에 있어서도 사람마다 경향이 다르기 때문에 ‘표출형, 우호형, 성취형, 분석형’으로 4분류해본 뒤 각자에 맞는 구체적인 설득 방법을 찾는 식으로 진행했다.

“참가자들이 적극적이서 3부 기획을 5부로 늘렸다”

주어진 상황에 대처하는 것 외에도 참가자들이 함께 지내다 보니 생겨난 시너지 효과도 있었을 것 같다.
안소진:
참가자들이 처음 상황에 투입되자마자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상대를 설득하고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개발하며 몰입하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는 어떤 틀을 주고 반응해보라고 한 것뿐인데 그 분들이 정말 자신의 뜻을 이해시키기 위해 울려고까지 하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건 되겠구나’ 생각했다. 특히 리조트회사 CEO나 보험회사의 재무 설계사, 자동차 세일즈맨 등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참가자 중에서도 연령대가 높았던 분들이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해 엔터테이너 같은 모습을 보여주시니까 다들 그 분위기를 함께 해 준 것 같다. 만약 참가자들이 보여준 모습이 일반적인 수준이었다면 애초에 3부로 기획한 프로그램을 5부로 늘리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웃음) 연출자로서 정말 고마운 부분이다.

참가자들이 함께 주제가를 부르는 장면이 눈길을 끄는데, 어떻게 된 건가?
안소진:
프로그램의 뼈대는 세팅되어 있지만 우리 참가자들은 그냥 참가자가 아닌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마침 우리가 전체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주제가 제목인 ‘너에게 내가 갈게’에 가까운 내용이다. 그래서 16명이 이 뜻을 담은 노래를 같이 부르고 프로그램에 그걸 반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들 녹음을 즐거워했고, 꼭 방송을 위해 제시한 상황 외에도 서로의 설득 멘토가 되어서 많은 대화를 하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6주 사이에 설 연휴가 끼어서 촬영을 한 주 쉬었을 때도 같이 모여서 놀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웃음)

그래서 6주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치며 참가자들이 실제로 설득의 비밀을 알게 된 것 같은가. 어떤 점이 달라졌나.
안소진:
우리가 합숙 시작 전 찾아갔을 때 어떤 대학생 참가자 부모님께서 딱 잘라 “우리 애는 설득력이 제로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주위 지인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에 우리가 설득역량진단이라는 테스트를 했을 때 이 참가자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본인 중심이라 핀트가 잘 안 맞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자신감이 약간 떨어진다는 거였다. 자기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보다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은 설득을 잘 하기가 힘들다. 그랬는데 설득의 트레이닝을 거치는 중간 단계에서 이 분이 자신감을 많이 찾았다. 5부에서 참가자들이 길에서 일반인들에게 무작위로 휴대폰을 빌리게 하는 미션이 있다. 휴대폰을 세 번 빌리기 위해 몇 사람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지를 미리 예측해보고 실제로 빌려보는 건데, 이 참가자의 경우 다섯 사람 만에 세 번을 성공한 뒤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아마 이런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자기는 남에게 휴대폰을 빌리는 것조차 생각을 못해봤을 거라는 거다. 그리고 이후에 다시 가족들을 찾아갔더니 부모님께서 “우리 애가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씀하시더라. 예전에는 부모님에게 혼나면 그냥 표정이 굳어서 대답도 하지 않고 대화가 단절되었는데 이제는 어떤 점이 서운하다, 아버지가 이렇게 해 주시면 나는 이렇게 하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하게 되었다는 거다. 5부에서는 이렇게 각 참가자의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방송을 앞둔 4, 5부의 내용을 좀 더 설명한다면 어떤 내용인가.
안소진:
4부 ‘협상으로 진입하라’에서는, 나와 상대가 있는 다자간 설득 상황인 협상에서 어떤 식으로 윈-윈 게임을 펼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협상’이라는 말이 좀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한미 FTA 같은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물건 하나를 살 때 오고가는 말도 협상이기 때문에 과연 어떻게 하면 나도 좋고 상대도 좋을 수 있는가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 그리고 5부 ‘현장게임’은 말 그대로 참가자들이 교수, 기자, 미술관 관장, 부동산업자 등을 찾아가 어떤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테면 교수에게는 “F학점을 D학점으로 올려주세요”라는 내용의 설득을 해야 하는 건데, 이 교수님은 “학점을 올려주는 것은 국가와 민족 앞에 떳떳하지 못한 일이고, 그런 짓을 한다면 교수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주장을 펼치는 분인 거다. 이럴 때 필요한 게 4부에서 배우는 ‘옵션 제시’다. 그냥 애원하거나 무작정 반대하는 게 아니라 ‘~하게 해 주면 대신 ~하겠다’라는 대안을 내놓는 거다. 그래서 꼬박 한 시간 동안 쩔쩔매며 교수님께 매달리던 어느 팀에서 마지막 순간 우리도 예상치 못한 묘안을 내놓았는데 그런 실전을 지켜보는 게 정말 재미있다.

“내가 주로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

시간이나 여건이 허락한다면 좀 더 다루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
안소진:
5부에서 실전을 보여주긴 하지만 그 밖에도 참가자들이 자기 삶의 영역에서 실제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모습들을 좀 더 보여주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교사인 참가자의 경우 학생이나 학부모와 상담하는 모습 같은 게 등장하긴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명쾌하게 결론이 나거나 뭔가가 오고 가는 건 아니니까,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이 있으면 좋을 텐데 또 이런 경우는 설득 당하는 상대방들이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런 모습을 보여주기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설득의 비밀>을 만들면서 실제로 남을 설득하는 데 있어 좀 더 나아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웃음)
안소진:
내가 주로 설득해야 하는 대상은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이다. (웃음) 6개월 이상 이 프로그램에 매달리고 있다 보니 집에 늦게 들어가거나 아예 못 들어가는 날이 많다. 아이는 나를 기다리는데 또 늦거나 못 들어간다고 말하려면 내가 설득을 해야 한다. 그래서 상대에게 맞추어 “정말 미안하고, 얼마나 서운한지 엄마도 알아” 라고 말을 꺼내면서 “그런데 엄마는 이 일을 오늘까지 못하면 아주 힘들어”라며 적절하게 자기 노출을 하는 동시에 대안을 그 쪽에서 제시하게 하는 거다. “그럼 오늘은 몇 시까지 들어오고, 내일은 어떻게 하자” 라는 식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왠지 슬프지만. (웃음) 이런 건 설득술이기도 하고 대화의 기술이기도 하다. 일방적으로 “엄만 바빠서 못 들어가!”라고 내 입장만 쏟아놓는 게 아니라 일단 상대의 말을 듣고 내 얘기를 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오가게 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 관계가 한번 형성되고 나면 그 이후는 오히려 쉬워진다.

설득이란 크게 보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데, 그 가장 근본적인 힘은 무엇일까.
안소진:
기본적으로 상대를 이해한 다음 메시지를 어떻게 구성해서 던지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무엇보다 그 사람이 원하는 메시지를 줘야 하니까, 상황의 중심을 나에서 상대로 바꾸면 설득력이 더 높아지고 그러다 보면 단순한 구호로서의 ‘윈-윈’이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다큐 프라임>에서는 ‘설득의 비밀’을 비롯해 지난 해 방송된 ‘아이의 사생활’이나 ‘한반도의 공룡’ 등 다양한 주제를 새로운 형식으로 접근하는 작품들이 많다. 내부적으로 어떤 논의를 거치는지, 그리고 제작비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안소진:
기획다큐팀 내에서 논의하기도 하고, 네 명 정도의 작은 팀으로 모여 프로그램의 포맷 같은 것들을 지속적으로 협의하는 편이다. 누가 무엇을 하라고 지정해주지는 않지만 각 프로그램들의 기획 단계와 제작 과정에서 서로 피드백을 많이 해 준다. 제작비의 경우 아이템마다 조금씩 다르게 책정되기 때문에 정확한 규모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상파 3사와 비교했을 때 제작비 면에서는 좀 적은 편인데 제작 기간은 좀 더 여유 있는 편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가.
안소진:
예전에 <문학산책>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해서 문학이나 어학에 관심이 많다. 문학 작품과 인터뷰들을 조합해 삶에 대한 이야기,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방법이 없을까 고민 중이다. 드라마나 휴먼 다큐와는 좀 다른 결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아직은 뜬구름 잡는 것 같지만 다음 주 4, 5부 방송이 끝나고 심신이 좀 안정되면 뭔가 떠오를 것 같다. (웃음)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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