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은 현재 가장 대중적인 드라마다. 시청률 30%를 돌파한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에게 재벌 2세와 평범한 주부의 로맨스를, 퀸즈푸드의 부녀회 모임인 평강회의 여성들이 보여주는 내조 경쟁을 통해 유쾌한 코미디를, 거기에 슬쩍 불륜과 스와핑을 연상시키는 두 커플의 관계를 통한 자극마저 주고 있다. 하지만, 은 단지 대중적이기만한 흥행작은 아니다. 이 드라마는 현재 한국 드라마의 상업적인 요소를 대거 넣으면서도, 그 안에서 기존 드라마들이 보여주지 못한 관점과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은 신선한 장르를 실험하는 것도, 아주 새로운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지만 오히려 진부한 이야기를 가장 참신하게 접근한 수작이다. 이 전달하는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의 연출자인 고동선 감독의 인터뷰, 그리고 의 주인공 천지애에 대한 소소한 후일담, 그리고 그의 주변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했다.MBC <내조의 여왕>의 식품 회사 퀸즈 푸드와 사택인 퀸즈팰리스는 하나의 공동체다. 남편들의 회사 서열은 아내들의 서열이 되고, 아내들의 ‘내조’는 남편들의 서열을 바꾼다. 천지애(김남주)는 남편 온달수(오지호)를 퀸즈 푸드에 입사시키려고 김이사(김창완)의 아내 오영숙(나영희)에게 접근부터 한다. <내조의 여왕>에서 내조는 남편과 아내가 성공을 위해 함께하는 ‘회사 총력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김이사와 오영숙, 한준혁(최철호)과 양봉순(이혜영) 부부가 보여주듯, “전쟁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편과 아내, 공사 구분 없이 처세에 능해야 하고, 처세를 위해 타인을 짓밟아야 한다. 천지애와 오달수가 사원 부부들 중 유일하게 퀸즈 팰리스에 살지 못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눈치 없는 온달수와 “알고 보면 맹한” 천지애는 정글의 초식동물들이다. 그들은 살기 위해 뛰어다닐 뿐, 더 갖기 위해 다른 이들을 죽이지는 못한다.
재벌 2세, 첫사랑, 아줌마…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은 2009년 상반기 드라마 중 가장 흥미로운 텍스트다. 이 드라마는 성공을 위한 내조로 시작하지만 성공의 허망함을, ‘재벌 2세, 첫사랑, 아줌마’라는 한국 드라마의 흥행 코드를 통해 가족의 위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변화 사이에는 지금 한국인의 삶에 대한 깊고 넓은 시각이 있다. 천지애는 온달수가 대기업에 입사하면 더 행복해질 거라 믿지만, 그 곳에 행복은 없다. 허태준(윤상현)과 은소현(선우선)의 관계는 파탄난지 오래고, 양봉순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한준혁(최철호) 때문에 불안하다. 그래서 그들은 과거에 매달린다. 한준혁과 양봉순은 자신의 문제가 한준혁의 옛사랑인 천지애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은소현과의 정략결혼으로 포기했던 옛 사랑만 되새기는 허태준에게 상처받은 은소현은 역시 옛사랑이었던 온달수를 찾는다. 부부는 사랑 대신 정략결혼으로 맺어지고, 베갯머리에서 회사에서의 처세에 대해 의논한다. 천지애가 한준혁에게 “과거에서 벗어나라”고 소리칠 만큼 과거에서 자유로운 것은 그만큼 현재가 행복했기 때문이다. 한준혁과 양봉순은 천지애에게 똑같이 집의 평수를 물어보지만, 천지애는 남편에 대한 사랑을 말한다.
<내조의 여왕>에서 다른 부부들이 천지애와 온달수의 관계를 깨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둘의 갈등은 사장 부부와의 만남에서 시작되고, 이사 부부는 허태준을 곤경에 빠뜨리려고 온달수와 은소현의 관계를 폭로한다. 부장 부부의 남편은 온달수를 쫓아내려 하고, 아내는 천지애에게 온달수와 은소현의 포옹장면을 보여준다. 이 초식동물 같은 부부의 행복은 맹수들이 갖지 못한 것이지만, 그만큼 지키기 어렵다. 은소현에게 “잠깐 마음이 흔들렸을 뿐”이라는 온달수의 행동이 천지애에게 상처가 된 것은 그것이 이 가난한 여자의 유일한 행복이자 ‘자존심’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에 대한 실망이 극에 이른 천지애가 “더 많은 돈을 원한다”며 화를 내는 건 행복이 깨진 가정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사랑과 믿음이 사라진 집에는 물질과 성공에 대한 욕망만이 남는다.
여왕님은 알고 계신대, 인간을 인간의 관계를
하지만 <내조의 여왕>은 “돈이 없어도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행복을 강요하지 않는다. 천지애가 ‘내조 전선’에 뛰어든 것은 아빠가 돈을 못 버니 자기라도 밥을 굶겠다는 아이 때문이었다. 퀸즈 푸드 여자들의 호들갑스러운 내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내조의 여왕>이 가난이 생활 속에서 얼마나 절박하게 다가오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에서 정신적인 행복과 물질의 부유함은 교환 관계다. 먹고 살려고 회사와 집 가릴 것 없이 뛰는 총력전에 참여할 것인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해야 할 것인가. 김이사 만큼인가, 한부장 만큼인가, 온달수 만큼인가.
MBC <하얀거탑>이 조직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남자들의 세계를 통해 한국인의 고단한 삶을 들여봤다면, <내조의 여왕>은 그것이 남자와 여자, 회사와 가정 양쪽이 결합해 만들어낸 총체적인 삶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회사와 가정의 경계가 무너지고, 남편과 아내는 회사와 자식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만, 정작 사랑은 멀어지는 삶. 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조의 여왕>에서 배우자 대신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가정을 깨는 대신 지켜주려 한다는 것은 흥미롭다. 한준혁은 천지애를, 허태준과 은소현은 각각 천지애와 온달수가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양봉순마저 결국에는 자신이 그들의 이혼을 원치 않음을 고백한다. 이 배려와 양심은 <내조의 여왕>에서 선악을 가르는 유일한 기준이다. 그건 자신이 온달수에게 저지른 일을 반성하는 한준혁과 모든 악행에 죄책감이 없는 김이사의 차이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다시 인간이다.
<내조의 여왕>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 보기 드물게 지금 한국인의 삶을 성찰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조의 여왕>은 흠잡을 데 없을 만큼 완벽한 드라마는 아니다. 이 드라마에는 재벌 2세가 기혼 여성에게 멋지게 노래를 불러주는 전형적인 판타지들이 있다. 그러나 <내조의 여왕>은 이 전형성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요소로 사용한다. 드라마 초반 ‘나쁜 남자’일 뿐이었던 허태준은 어느새 ‘퀸즈 팰리스’보다 천지애의 동네를 더 좋아할 만큼 인간적인 정을 되찾고, 온달수와 한준혁 사이의 코미디는 그들이 서로에 대한 반감을 해소하는 이유가 된다. 심지어 최양락과 효도르처럼 예상할 수 없었던 카메오도 캐릭터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에피소드의 소재로 쓰인다. <내조의 여왕>에서 ‘천지애와 온달수의 비밀을 이야기하는 은소현과 온달수의 대사를 우연히 천지애가 듣게 되는’ 식의 전개가 어설픈 우연의 남발에 그치지 않는 것은 이런 우연들을 통해 캐릭터의 관계가 한층 깊어지기 때문이다. 과거의 연적은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그저 무능력한 남편과 아내일 줄 알았던 하참 대리 부부는 승진과 함께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내조의 여왕>은 인간을,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변화의 매력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은 행복합니까?
그러나 <내조의 여왕>이 잘 만든 퀼트 같은 촘촘한 이음새를 가진 것은 이야기를 풀어가는 관점의 깊이 때문만은 아니다. 고동선 감독은 <내조의 여왕>에서 멜로와 코미디, 서스펜스를 하나의 이야기 안에 버무리고, 그것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영상으로 보여주는 테크니션의 손길을 보여준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는 은소현과 아무 것도 모르는 천지애의 대화는 그 자체로는 서스펜스를 일으키지만, 천지애의 푼수 같은 모습은 코미디를 만들어내고, 이를 바라보는 은소현의 얼굴을 클로즈업 시키는 카메라는 긴장감을 극대화 시킨다. 온달수가 집을 나간 천지애를 찾아 집 이곳 저곳을 뒤질 때도,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은 이전과는 달리 텅 비어있는 그들의 쓸쓸한 방이다. 고동선 감독의 전작 MBC <메리대구 공방전>이 만화와 뮤지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인간의 행복에 대해 묻는 걸작 컬트였다면, <내조의 여왕>은 같은 질문을 대중적인 요소 안에서 치밀하게 풀어낸 웰메이드 드라마다.
그래서 <내조의 여왕>은 지금 한국 드라마가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다. <내조의 여왕>은 대중적인 소재 안에서 대중의 재미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그 안에 사고를 요구할 수 있는 메시지를 넣을 수 있는 깊이를 가졌다. 그것은 한국 드라마가 드러나는 이야기 외에도 다층적인 의미를 가진 텍스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그건 지금 마니아 드라마나 착한 드라마가 아니라 ‘재밌는 드라마’가 재미와 깊이를 함께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다. 시청자들은 <내조의 여왕>의 코미디, 멜로, 서스펜스, 재벌 2세, 감칠맛 나는 조연을 모두 맛보면서 자신이 보고 싶은 걸 볼 수도 있고, 더 깊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질문과 만나게 될 것이다. 당신, 행복합니까?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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