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보다 길이는 반절이지만, 곱절은 흥미로웠던 시트콤 <스크럽스>가 지난 5월 6일 1시간짜리 특집 방송으로 막을 내렸다. 아직까지 ABC와 시즌 9 방송을 협의 중이라지만 주인공과 극중 내레이션을 맡았던 J.D. 역의 잭 브래프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떠나고, 원년 멤버 중 누가 돌아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더 이상 같은 프로그램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5월19일 최종 발표 예상) 2001년 10월 첫 방송을 한 후 시즌 7까지 NBC에서 둥지를 틀었던 <스크럽스>는 본래 ABC에서 제작한 시리즈기 때문에 오랫동안 방송을 했어도 NBC의 냉대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모두들 한 뼘 더 자라고, 해피엔딩을 맞은 <스크럽스>

가장 큰 ‘냉대’는 시즌 7이었다. 시리즈를 창작한 빌 로렌스와 주인공 브래프는 시즌 7을 끝으로 <스크럽스>를 종영하려고 했으나, 미 작가협회 파업으로 만족스러운 결말을 이야기로 풀어갈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본래 제작을 담당하는 ABC에서 한 시즌을 연장해 제대로 막을 내리고 싶어 했다. 그러나 NBC 측은 시즌 7의 후반부 에피소드들의 차례를 바꿔가면서까지, <스크럽스>가 NBC에서 아주 끝나는 것처럼 시청자들에게 전달을 하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로렌스는 <스크럽스>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햇병아리 인턴으로 시작했던 주요 캐릭터들이 시즌 8에서는 후배 인턴은 물론 동료와 선배로 부터 인정받는 의사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대학 때부터 계속되어 온 J.D.와 터크 (도널드 페이슨) 사이의 ‘브로맨스’ (Bromance 또는 Guy Love)를 제외하고 말이다.

좋은 친구사이로만 남을 것 같았던 J.D.와 엘리엇 (새라 샤크)은 결국 서로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는 커플이 된다. 귀여운 딸 이자벨라를 둔 터크와 칼라 (주디 레이스)는 계획하지 않은 둘째아이가 들어서는 바람에 부부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는 듯 했지만,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와 칼라의 월등한 남편 다루는 능력 덕분에 위기를 넘긴다. 닥터 콕스 (존 맥킨지)는 닥터 켈소(켄 젠킨스)가 은퇴를 하는 바람에 세이크리드 하트 병원의 원장이 된다. 그가 외과 과장을 찾고 있을 때 수없이 많은 터크의 동료와 후배들이 그의 리더십과 자상함을 콕스에게 말해준다. 무덤덤하고 비아냥거림의 극치를 달리는 콕스와 그의 전 부인 조단 (크리스타 밀러) 역시 낯 간지럽다면서도 “사랑한다”고 서로에게 고백 한다. 이 밖에도 늘 어벙해 보이던 병원 변호사 테드 (샘 로이드)와 청소부 (닐 플린)도 자기 짝을 만나 행복해 진다. 시리즈는 전 애인인 닥터 킴 브리그스 (엘리자베스 뱅스)와의 사이에 아들을 가진 J.D.가 아들과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킴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세이크리드 하트 병원을 떠나는 설정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까지 눈물 쏙 빠지게 완벽했던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과거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50여명이나 찬조 출연했다. 이 많은 캐릭터들은 J.D.가 지난 8년간 근무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긴 복도에 늘어서서 작별 인사를 건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장면은 J.D.가 미래를 상상하는 순간이었다. 터크가 J.D.의 병원 마지막 근무일을 축하하며 병원 입구에 걸어 놓은 대형 현수막이 있었는데, J.D.가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이 이 현수막에 영사기로 꿈처럼 펼쳐진다.

미래에는 J.D.와 엘리엇이 아름다운 결혼식을 올리고, 어느덧 엘리엇은 임신을 한다. 명절에는 터크와 칼라의 집에 J.D.와 엘리엇, 그리고 닥터 콕스와 조단 커플이 아이들을 데리고 모인다. 닥터 콕스는 인상을 팍팍 쓰면서도 현관 앞에서 자신을 꼭 껴안아 주는 J.D.를 뿌리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흘러, J.D.의 아들과 터크의 딸이 약혼을 했다고 아버지들에게 발표한다. J.D.는 너무 기쁜 나머지 혼절을 한다. 이 영상과 함께 피터 가브리엘이 구슬픈 목소리로 부르는 ‘북 오브 러브’ (Book of Love)가 잔잔하게 흐른다. <스크럽스>의 팬들이라면 아마 흐르는 눈물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팬들은 TV 가이드, imdb 등 각종 웹사이트와 블로그 등에 “너무나 완벽한 엔딩”, “눈 빠지게 울었다”며, 시즌 9을 협상 중인 ABC에게 이대로 <스크럽스>를 떠나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다. 나 역시 “J.D. 없는 <스크럽스>는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외치고 싶다.

글. 양지현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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