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누군가의 대리인이 아닌, 한 사람이자 배우로서의 정재영을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방송이나 인터뷰를 통해서.
정재영: 그런 걸 일부러 찾아가 할 생각은 없다. 그건 배우에게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친근해지면 나중엔 영화에서도 그 캐릭터로 보이지 않고 배우 본인으로 보인다. 그러면 영화 보는데 방해가 된다. 만약 내가 되게 착하게 살고, 그게 계속 노출돼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으면 나중에 악역을 해도 밉게 느껴지지 않는 거다. 그건 배우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마이너스다. 실제로 우리 어머니 같은 경우는 내가 어떤 역할을 해도 그냥 아들 재영이로 본다. 영화 보면서 혹시 내가 대사 틀리진 않을지 걱정하고. 사실 영화를 보는 데 있어 그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최근 들어 영화지 없어지는 거 보면 참 속상하다”
그럼 본인은 배우 정재영보다 그냥 필모그래피로 기억되고 싶은 건가.
정재영: 그게 최고지. 예를 들어 로버트 드니로, 알파치노, 톰 행크스 같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필모그래피 말고 아는 게 뭐가 있나. 그냥 영화 속에서 좋아하는 거지. 물론 알고 싶을 수도 있지만 알아 봤자 역효과만 날 수 있다. 누가 몇 번 이혼했다는 식의 정보를 알면 영화에 대한 몰입이 깨진다.
결국 영화라는 가상 안에서 평가받는다는 것인데 그 바깥에서의 삶과 캐릭터로서의 삶은 전혀 별개라고 보는 건가.
정재영: 그건 아니다. 배우란 결국 대중에게 폭넓은 의미의 즐거움을 주는 사람인 건데, 최소한 스스로 영화를 하고 대중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은 져야 한다고 본다. 스님처럼 하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 이율배반적인 건 하지 말아야 한단 얘기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다. ‘사람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 연기만 잘하고 실력만 좋으면 되지.’ 그건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넌 공부만 잘하면 된다, 성공하기 위해선 모든 걸 다 짓밟고 사람 배신하라’고 가르치는 거랑 똑같은 거다. 차라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말을 하지 말든가.
영화인이라는 자의식이랄지, 윤리랄지 그런 걸 항상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정재영: 나는 한국 영화계 소시민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같은 소시민들이 피해보는 걸 보는 게 참 싫은. 최근 들어 영화지 같은 거 없어지는 거 보면 참 속상하다.
그들 역시 동업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재영: 예전엔 그런 생각 안했다. 배우랑 연출자, 스태프처럼 필드에서 뛰는 사람이 아니면 기자, 평론가, 제작자, 홍보 마케팅 담당자 모두 적이라고 생각했다. 왠지 다 나를 이용해먹으려 하는 것 같고. 30대 초반까지 그랬다. 그런데 만나고 얘기하고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나랑 똑같은 거다. 오히려 필드에 질 안 좋은 사람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다. 20대 생각 다르고, 30대 생각 다르고.
“박쥐처럼 해선 절대 오래 못 간다”
그럼 과거보다 지금의 자신이 더 철들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재영: 그렇다. 그리고 그게 연기하는 것과도 직결된다. 사방 다 막아놓고 하면 깊이 있게 갈 수 있지만 넓지 않다. 그러면 아주 작은 범위로 깊게 파봤자 안 나오는 곳만 팔수도 있는 거다. 나는 예전부터 오래가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결국 그 방법은 생각을 넓게 갖는 거다. 배우 뿐 아니라 감독이나 기자나 오래 가는 건 간사한 게 아니다. 박쥐처럼 해선 절대 오래 못 간다. 조금만 해도 들킨다. 오래 가는 건 말하자면 가늘고 길게다. 이것도 간사하게 하려면 더 가늘게 하려다 뚝 끊어진다.
언젠가 황정민 인터뷰를 했을 때도 ‘가늘고 길게’가 모토라고 했었다.
정재영: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그 외의 길이 닿는 곳은 뻔하니까. 가늘고 길게 가다가 가끔씩 굵게 나오는 게 제일 좋은 거다.
그럼 이번 <김씨 표류기>는 나중에 굵은 가닥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정재영: 물론 그렇게 되길 바란다. 작품도 굵게 기억에 남고, 함께한 나도 굵은 배우로 남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런 작품도 하고 저런 작품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실미도>처럼 제작비 100억 원이 넘는 작품을 할 수도 있지만 10억 원짜리를 할 수도 있다. 100억 원짜리를 한다고 목에 힘들어가고 10억 원짜리 한다고 굽신거릴 이유는 없다.
그것들 모두 스스로에겐 똑같은 의미를 갖는 건가.
정재영: 내가 사랑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흥행이 어떻게 되든 실망하지 않고 다시 이 일을 할 수 있는 거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정재영: 그런 걸 일부러 찾아가 할 생각은 없다. 그건 배우에게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 배우가 친근해지면 나중엔 영화에서도 그 캐릭터로 보이지 않고 배우 본인으로 보인다. 그러면 영화 보는데 방해가 된다. 만약 내가 되게 착하게 살고, 그게 계속 노출돼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으면 나중에 악역을 해도 밉게 느껴지지 않는 거다. 그건 배우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마이너스다. 실제로 우리 어머니 같은 경우는 내가 어떤 역할을 해도 그냥 아들 재영이로 본다. 영화 보면서 혹시 내가 대사 틀리진 않을지 걱정하고. 사실 영화를 보는 데 있어 그게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최근 들어 영화지 없어지는 거 보면 참 속상하다”
그럼 본인은 배우 정재영보다 그냥 필모그래피로 기억되고 싶은 건가.
정재영: 그게 최고지. 예를 들어 로버트 드니로, 알파치노, 톰 행크스 같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필모그래피 말고 아는 게 뭐가 있나. 그냥 영화 속에서 좋아하는 거지. 물론 알고 싶을 수도 있지만 알아 봤자 역효과만 날 수 있다. 누가 몇 번 이혼했다는 식의 정보를 알면 영화에 대한 몰입이 깨진다.
결국 영화라는 가상 안에서 평가받는다는 것인데 그 바깥에서의 삶과 캐릭터로서의 삶은 전혀 별개라고 보는 건가.
정재영: 그건 아니다. 배우란 결국 대중에게 폭넓은 의미의 즐거움을 주는 사람인 건데, 최소한 스스로 영화를 하고 대중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사람으로서의 책임은 져야 한다고 본다. 스님처럼 하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 이율배반적인 건 하지 말아야 한단 얘기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다. ‘사람이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때. 연기만 잘하고 실력만 좋으면 되지.’ 그건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넌 공부만 잘하면 된다, 성공하기 위해선 모든 걸 다 짓밟고 사람 배신하라’고 가르치는 거랑 똑같은 거다. 차라리 자신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말을 하지 말든가.
영화인이라는 자의식이랄지, 윤리랄지 그런 걸 항상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정재영: 나는 한국 영화계 소시민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같은 소시민들이 피해보는 걸 보는 게 참 싫은. 최근 들어 영화지 같은 거 없어지는 거 보면 참 속상하다.
그들 역시 동업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재영: 예전엔 그런 생각 안했다. 배우랑 연출자, 스태프처럼 필드에서 뛰는 사람이 아니면 기자, 평론가, 제작자, 홍보 마케팅 담당자 모두 적이라고 생각했다. 왠지 다 나를 이용해먹으려 하는 것 같고. 30대 초반까지 그랬다. 그런데 만나고 얘기하고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나랑 똑같은 거다. 오히려 필드에 질 안 좋은 사람이 있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는 것 같다. 20대 생각 다르고, 30대 생각 다르고.
“박쥐처럼 해선 절대 오래 못 간다”
그럼 과거보다 지금의 자신이 더 철들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재영: 그렇다. 그리고 그게 연기하는 것과도 직결된다. 사방 다 막아놓고 하면 깊이 있게 갈 수 있지만 넓지 않다. 그러면 아주 작은 범위로 깊게 파봤자 안 나오는 곳만 팔수도 있는 거다. 나는 예전부터 오래가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결국 그 방법은 생각을 넓게 갖는 거다. 배우 뿐 아니라 감독이나 기자나 오래 가는 건 간사한 게 아니다. 박쥐처럼 해선 절대 오래 못 간다. 조금만 해도 들킨다. 오래 가는 건 말하자면 가늘고 길게다. 이것도 간사하게 하려면 더 가늘게 하려다 뚝 끊어진다.
언젠가 황정민 인터뷰를 했을 때도 ‘가늘고 길게’가 모토라고 했었다.
정재영: 그럴 수밖에 없는 거다. 그 외의 길이 닿는 곳은 뻔하니까. 가늘고 길게 가다가 가끔씩 굵게 나오는 게 제일 좋은 거다.
그럼 이번 <김씨 표류기>는 나중에 굵은 가닥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까.
정재영: 물론 그렇게 되길 바란다. 작품도 굵게 기억에 남고, 함께한 나도 굵은 배우로 남고.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이런 작품도 하고 저런 작품도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다. <실미도>처럼 제작비 100억 원이 넘는 작품을 할 수도 있지만 10억 원짜리를 할 수도 있다. 100억 원짜리를 한다고 목에 힘들어가고 10억 원짜리 한다고 굽신거릴 이유는 없다.
그것들 모두 스스로에겐 똑같은 의미를 갖는 건가.
정재영: 내가 사랑하는 일이니까. 그러니까 흥행이 어떻게 되든 실망하지 않고 다시 이 일을 할 수 있는 거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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