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이하, JIFF) ‘영화보다 낯선’ 섹션에서 공개된 <호텔 다이어리> (Hotel Diaries)에는 줄거리도, 주인공도, 배경음악도 없다. 카메라는 오로지 감독 한 사람의 목소리와 작은 방만을 담는다. 존 스미스 감독은 핀란드, 영국, 독일 등지를 여행하며 묵었던 호텔에서 품었던 생각의 단상들을 7년 동안 일기처럼 기록했다. 그것은 “이 호텔 화장실의 마감은 굉장히 고급스럽다”는 잡담에서 9.11 테러로 예상치 못하게 뻗어나가는 감독의 의식의 흐름, 그 자체다. 그의 영화는 자칫 낯설고 지루하기만 할 수 있는 형식임에도 유머를 잃지 않고, 관객들에게 생각의 단초들을 제공한다. 1972년 첫 영화 (Triangles)을 발표한 이후 현재까지 “가장 재능있는 전후세대 감독 중 한 명이자 다큐멘터리 장르를 통해 허를 찌르는 유머와 정교한 영화 문법을 구사한다”는 평을 받고 있는 존 스미스 감독을 만났다.
가장 최근작인 <호텔 다이어리> (2007)를 통해 당신을 알게 된 한국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자신의 기존의 작품과는 많이 다르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존 스미스: 사실 그간 해오던 작업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작품을 만드는데 걸렸던 절대적인 시간이다. 그 전까지는 영화 한 편을 완성하는데 적어도 3년 이상이 걸렸다. 그러나 <호텔 다이어리>는 간단한 형식에다 거의 편집을 하지 않고 완성했다. 연작 한 편을 만드는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은 적도 있다. 그냥 편하게 대화하는 기분으로 찍었다.
“내 영화가 관객에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고리가 되었으면”
블로거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호텔 리뷰를 출력해 와서 한 줄, 한 줄 짚어가며 방을 둘러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염두에 두었나?
존 스미스: 관객과 소통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호텔 다이어리>에서도 직접 대답을 들을 순 없지만 관객을 향해 자유롭게 묻고 답했다. 촬영하는 내내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 다이어리>는 사실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특별한 서사도 없고, 화면은 거의 5분 내내 식탁 위에 놓인 물 컵만 클로즈업하기도 하고.
존 스미스: 관객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영화가 관객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걸 원한다. 하찮아 보이는 물건들을 오랫동안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주변에서 늘 보던 것들인데도, 뭔가 다른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저 내 영화가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호텔 다이어리>는 당신의 생각을 보여주기 위한 매개체 같았다. 영화임에도 영상보다는 방 안의 물건들을 직접 카메라로 비추면서 하는 당신의 말들이 더 도드라졌다.
존 스미스: 일시적으로 외부와 단절된 호텔 방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보는 것은 한정되기 마련이다. 호텔들은 어딜 가든 거의 다 비슷하지 않나. 창문이나 거울의 위치, 화장실의 구조까지 별 다른 차이가 없다. 그런 방 안에 있으면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일상적인 것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먹다 남긴 초코바를 보다가 다른 생각을 하고 또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고… 그러다가 카메라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건 나 혼자 하는 일종의 놀이였다. 물론 그 좁은 방에서 혼자서 찍고 얘기하고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무척 힘들었지만. (웃음)
그렇게 호텔 방이라는 한정된 공간 임에도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누군가 옷장에 붙여놓은 스티커를 보면서도 화제가 디즈니 캐릭터에서 토니 블레어에 대한 농담, 전쟁의 폐해로까지 자연스럽게 번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존 스미스: 매순간 접하는 사물을 보며 하고픈 말들을 생각나는 대로 다 말했다. 특별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나는 런던에서 살지만 TV나 라디오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건 9.11 테러나 미군의 아프간 침공 같은 비극적인 이야기다.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계속 쌓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았나 보다. 그래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7편의 연작에서 의도치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영화 속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에 대한 불만도 많이 얘기 하던데.
존 스미스: 베를린에서 지냈던 호텔 옷장에서 밤비 스티커를 발견한 적이 있다. 토니 블레어가 총리가 되기 이전에는 별명이 밤비였다. 밤비처럼 귀여운 외모에 선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 때는 이런 사람인줄 몰랐던 거지. (웃음) 무의미한 전쟁을 하는 나라나 도와주고 말이다.
“일단 카메라를 들고 무엇이든 찍어라”
2007년을 마지막으로 <호텔 다이어리> 연작은 끝났지만, 현재 전주에서 머물고 있는 호텔의 인상은 어떤가.
존 스미스: 지금 지내고 있는 호텔 엘리베이터에는 4층 버튼이 없다. 숫자로 4를 쓰지 않고 F로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4가 죽음을 의미해서 불길하다고 피한다던데 그런 사고방식이 재미있다. 실제 4를 쓴다고 그 층에 있는 사람들이 몽땅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웃음) 그래서 알파벳 F에 얽힌 이런 사연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다.
전주라는 도시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존 스미스: 아기자기한 거리가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서울에도 가본 적이 있는데 높고 큰 건물들이 가득한 게 나랑은 잘 안 맞았다. 전주는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전주비빔밥도 맛있고, 된장국도 여기 와서 처음 먹어 봤는데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신기한 맛이었다. 사람들도 너무 좋아서 어제는 소주를 밤새도록 마셨다.(웃음)
1970년대부터 상당히 오랜 시간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곳 JIFF에는 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오기도 하는데, 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존 스미스: 기존의 상업적인 기준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믿어야 한다. 영화를 만들 돈이 없다고 앉아서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찍어 보는 게 중요하다. 나 역시 운 좋게 여기저기서 불러줘서 돈 들이지 않고 돌아다니긴 했지만 비디오 테이프 값 50달러만 들고 <호텔 다이어리>를 찍었다. 게다가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나 컴퓨터도 잘 보급되어 있지 않나. 영화를 만들기에 참 좋은 환경이다. 일단 카메라를 들고 무엇이든 찍어라.
글. 전주=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전주=이원우 (four@10asia.co.kr)
가장 최근작인 <호텔 다이어리> (2007)를 통해 당신을 알게 된 한국 관객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자신의 기존의 작품과는 많이 다르다고 밝히기도 했는데.
존 스미스: 사실 그간 해오던 작업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는 작품을 만드는데 걸렸던 절대적인 시간이다. 그 전까지는 영화 한 편을 완성하는데 적어도 3년 이상이 걸렸다. 그러나 <호텔 다이어리>는 간단한 형식에다 거의 편집을 하지 않고 완성했다. 연작 한 편을 만드는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은 적도 있다. 그냥 편하게 대화하는 기분으로 찍었다.
“내 영화가 관객에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고리가 되었으면”
블로거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호텔 리뷰를 출력해 와서 한 줄, 한 줄 짚어가며 방을 둘러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염두에 두었나?
존 스미스: 관객과 소통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호텔 다이어리>에서도 직접 대답을 들을 순 없지만 관객을 향해 자유롭게 묻고 답했다. 촬영하는 내내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 다이어리>는 사실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특별한 서사도 없고, 화면은 거의 5분 내내 식탁 위에 놓인 물 컵만 클로즈업하기도 하고.
존 스미스: 관객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영화가 관객 스스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걸 원한다. 하찮아 보이는 물건들을 오랫동안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이 주변에서 늘 보던 것들인데도, 뭔가 다른 것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저 내 영화가 사람들에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고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인지 <호텔 다이어리>는 당신의 생각을 보여주기 위한 매개체 같았다. 영화임에도 영상보다는 방 안의 물건들을 직접 카메라로 비추면서 하는 당신의 말들이 더 도드라졌다.
존 스미스: 일시적으로 외부와 단절된 호텔 방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보는 것은 한정되기 마련이다. 호텔들은 어딜 가든 거의 다 비슷하지 않나. 창문이나 거울의 위치, 화장실의 구조까지 별 다른 차이가 없다. 그런 방 안에 있으면 전에는 신경 쓰지 않았던 일상적인 것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나 역시도 그랬다. 먹다 남긴 초코바를 보다가 다른 생각을 하고 또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고… 그러다가 카메라로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건 나 혼자 하는 일종의 놀이였다. 물론 그 좁은 방에서 혼자서 찍고 얘기하고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무척 힘들었지만. (웃음)
그렇게 호텔 방이라는 한정된 공간 임에도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누군가 옷장에 붙여놓은 스티커를 보면서도 화제가 디즈니 캐릭터에서 토니 블레어에 대한 농담, 전쟁의 폐해로까지 자연스럽게 번지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존 스미스: 매순간 접하는 사물을 보며 하고픈 말들을 생각나는 대로 다 말했다. 특별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나는 런던에서 살지만 TV나 라디오 뉴스에서 가장 많이 들리는 건 9.11 테러나 미군의 아프간 침공 같은 비극적인 이야기다.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 계속 쌓였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향을 받았나 보다. 그래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7편의 연작에서 의도치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영화 속에서 토니 블레어 총리에 대한 불만도 많이 얘기 하던데.
존 스미스: 베를린에서 지냈던 호텔 옷장에서 밤비 스티커를 발견한 적이 있다. 토니 블레어가 총리가 되기 이전에는 별명이 밤비였다. 밤비처럼 귀여운 외모에 선한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 때는 이런 사람인줄 몰랐던 거지. (웃음) 무의미한 전쟁을 하는 나라나 도와주고 말이다.
“일단 카메라를 들고 무엇이든 찍어라”
2007년을 마지막으로 <호텔 다이어리> 연작은 끝났지만, 현재 전주에서 머물고 있는 호텔의 인상은 어떤가.
존 스미스: 지금 지내고 있는 호텔 엘리베이터에는 4층 버튼이 없다. 숫자로 4를 쓰지 않고 F로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4가 죽음을 의미해서 불길하다고 피한다던데 그런 사고방식이 재미있다. 실제 4를 쓴다고 그 층에 있는 사람들이 몽땅 죽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웃음) 그래서 알파벳 F에 얽힌 이런 사연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볼까 생각 중이다.
전주라는 도시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
존 스미스: 아기자기한 거리가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서울에도 가본 적이 있는데 높고 큰 건물들이 가득한 게 나랑은 잘 안 맞았다. 전주는 나랑 잘 맞는 것 같다. 전주비빔밥도 맛있고, 된장국도 여기 와서 처음 먹어 봤는데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신기한 맛이었다. 사람들도 너무 좋아서 어제는 소주를 밤새도록 마셨다.(웃음)
1970년대부터 상당히 오랜 시간 꾸준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곳 JIFF에는 감독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이 오기도 하는데, 그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존 스미스: 기존의 상업적인 기준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믿어야 한다. 영화를 만들 돈이 없다고 앉아서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찍어 보는 게 중요하다. 나 역시 운 좋게 여기저기서 불러줘서 돈 들이지 않고 돌아다니긴 했지만 비디오 테이프 값 50달러만 들고 <호텔 다이어리>를 찍었다. 게다가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나 컴퓨터도 잘 보급되어 있지 않나. 영화를 만들기에 참 좋은 환경이다. 일단 카메라를 들고 무엇이든 찍어라.
글. 전주=이지혜 (seven@10asia.co.kr)
사진. 전주=이원우 (four@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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