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다이어리> (Hotel Diaries) │ 감독 존 스미스 │ 메가박스 5관 20:00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호텔방에서 중년의 백인 남자가 말을 시작한다. 화면은 침대나 커튼, 먹다 남긴 초코바 등을 비추고 TV에선 BBC 뉴스의 앵커 멘트가 들린다. 남자는 거울 장식의 독특함을 말하다가 침대의 안락함을 호평하기도 하고, 뉴스에서 보도하는 기사로 화제를 돌리기도 한다. 감독 존 스미스는 핀란드, 영국, 독일 등지를 여행하며 묵었던 호텔의 단상을 2001년 부터 7년간 연작 형태로 기록했다. 그러나 그의 기록은 단순한 호텔 품평에 그치지 않는다. 감독은 일견 무의미하거나 사소해 보이는 사물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누군가 옷장에 붙여놓고 간 밤비 스티커를 비추며 밤비가 별명이었던 토니 블레어 총리에 대해 얘기하거나, 아프간 전쟁에 대한 자막을 지속적으로 넣기도 하는 등 그의 이야기 주제는 결코 자기 내부에만 머무르지도 않는다. 영상보다는 음성의 이미지가 도드라지는 <호텔 다이어리>는 분명 관객에게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방 안의 벽지를 보다가 무언가 번뜩이는 생각이 떠오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의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라는 말의 의미를 이 호텔 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폰마니> (Ponmani) │ 감독 달마세나 파티라자 │ 메가박스 5관 17:00
“잡아서 다리를 부러뜨려야지.” 집을 나간 동생, 폰마니가 돌아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대한 오빠의 대답이다. 이 한 마디 안에 1970년대 스리랑카를 사는 여자들의 처지가 다 들어있다. 그녀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의 결혼은 꿈도 못 꾸고 그마저도 지참금이 없으면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야말로 딸 가진 게 죄, 여자로 태어난 게 죄다. 시집 안 간 언니 때문에 결혼을 못해 집을 나간 폰마니. 결혼 안 한 자식들을 들들 볶는 부모. 여동생들의 결혼지참금을 갚느라 정작 자신은 결혼 못하고 늙어가는 오빠. 의 가족들은 그대로 스리랑카의 현실이다. “1970년대 스리랑카의 타밀 지역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달마세나 파티라자 감독의 말처럼 카메라는 폰마니와 그녀의 가족, 그들에 대해 수근거리는 사람들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20년도 더 된 과거의 낯선 나라의 이야기지만 자기 의지대로 살고자 했던 여자가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결말은 놀랍도록 한국의 과거 혹은 현재와 흡사하다.

글. 전주=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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