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아내의 유혹>이 5월 1일 129회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일일 드라마로서는 특별히 길지 않은 방영횟수, 그러나 시청률 40%를 넘나들었던 이 드라마의 파괴력은 무시무시했다. 친한 친구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임신한 채로 남편에게 살해당할 뻔 했던 여자가 그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여자로 변신해서 남편을 유혹한다는 충격적인 설정은 기존 일일 드라마들이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위선조차 벗어던진 채 <아내의 유혹>을 ‘막장 드라마’의 대표주자로 등극시켰고, 그 과감한 혹은 ‘뻔뻔한’ 전개는 시청자들로부터 ‘막장’을 넘어 ‘명품’이라는 애칭을 얻으며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아내의 유혹>은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를 넘어 ‘욕도 안 하고 보는 드라마’가 될 수 있었을까. <10 아시아>에서는 종영을 앞두고 <아내의 유혹>에 담겨 있던 욕망의 코드들을 읽어 보았다. 이 작품 하나로 악녀의 대명사가 된 ‘신애리’ 역을 연기한 배우 김서형의 인터뷰와, 신애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 니노의 비밀을 담은 픽션도 준비했다. <아내의 유혹>과 ‘구느님’을 추억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구루마불 게임은 보너스다.

구은재(장서희)는 빼앗긴 남편을 돌려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SBS <아내의 유혹>에서 은재의 남편 정교빈(변우민)은 은재를 임신시켜 반강제로 결혼했지만 곧 은재와 함께 자란 친구 신애리(김서형)와 바람을 피운다. 프랑스에 유학을 갔다 교빈의 아이를 낳아 돌아온 애리는 다시 교빈을 유혹하고, 교빈은 애리와 결혼하기 위해 임신한 은재를 중절 수술시키겠다며 병원에 끌고 갔다가 도망친 은재를 바다에 빠뜨리고 도망친다. 이런 남편과 재결합을 원하는 여자가 있을 턱이 없다. 그래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은재는 자신이 죽었다고 믿고 있는 교빈과 애리에게 복수를 결심한다. 초반부터 엄청난 속도감으로 달렸던 <아내의 유혹>에서 이 모든 일은 30회 안에 일어났다.

막장, 막장하면서 왜 그렇게들 많이 봤을까?

호러물 뺨치게 납치, 감금 등이 넘치지만 허술함 때문에 독한 장치들은 오히려 코믹한 요소가 되었다.
호러물 뺨치게 납치, 감금 등이 넘치지만 허술함 때문에 독한 장치들은 오히려 코믹한 요소가 되었다.
그 다음 단계는 물론 복수를 향한 구체적인 움직임이다. 바닷가에서 자신을 구해 준 민건우(이재황)와 그의 양어머니 민여사(정애리)를 만난 은재는 자신의 시아버지였던 정하조(김동현)가 민여사의 원수이기도 함을 알게 되고, 민여사는 양오빠 건우를 향한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역시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한 딸 민소희(채영인)의 이름과 이력을 은재에게 빌려주며 복수에 협력하기로 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고 시댁에서는 냉대당하며 평생 살림만 해온 은재는 민여사의 지원 덕분에 골프와 테이블 매너, 외국어 공부는 물론 세련된 분위기로 스타일을 바꾸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서도 성공한다. 은재가 자신의 신체적 특징을 감추기 위해 손톱을 뽑고 온몸의 점을 뺀 뒤 눈 아래 점을 찍음으로서 ‘민소희’로서 완벽한 변신을 이루는 과정은 놀랄 만큼 단순하고 허황되지만 <아내의 유혹>은 그 판타지가 갖는 흡인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드라마다. 특히 미모, 외국어, 성공 등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가치 있게 평가되는 것들에 대한 욕망은 타인의 아낌없는 물질적 지원을 받아 자신을 계발해나가는 은재를 통해 구현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안겼다.

물론 은재가 단 며칠 만에 외국어와 수영, 댄스 등을 마스터하고 자신이 만든 파운데이션으로 화상 흉터를 완벽하게 커버하는 등 어설픈 전개와 비약은 시청자들로부터 ‘막장’ 이상이라는 의미로 ‘명품’이라는 별명을 <아내의 유혹>에 안겼지만 과거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로 불렸던 MBC <인어아가씨>나 SBS <하늘이시여> 등에 비해 <아내의 유혹>의 ‘막장성’에 대한 저항이 거의 없었다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는 어쩌면 이 작품이 살인미수, 납치, 사기, 협박, 감금 등 최근 방송된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호러나 스릴러에 등장할 만한 소재를 자주 사용하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을 말 그대로 코미디로 만들어 버리는 우연의 남발과 비현실성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킨 덕분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돈 때문에 남의 것을 훔치거나 협박하고, 협박당하는 상대는 또 다른 증거를 쥐고 그에게 맞선다. 은재를 내쫓을 때는 애리의 편을 들었다가 소희로 돌아온 은재 때문에 다시 멀어졌던 시어머니 백미인(금보라)이 다시 애리에게 도움을 청하며 “독을 빼내려면 더 센 독을 쓰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갖고 있는 세계관을 그대로 드러낸다. 은재의 복수 때문에 교빈과 애리가 굳이 쓰레기통에 숨거나 백미인이 남편 몰래 화투판을 벌이다 집에서 쫓겨나는 등의 상황들은 은재를 괴롭혔던 악인들을 최대한 우습고 천박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이고, 정신연령이 낮은 고모(오영실) 역시 모든 심각한 상황에 실소를 터져나오게 하는 캐릭터로 기능한다.

이 안겨줬던 카타르시스의 순간들

혼수와 집안일 등으로 시부모와 마찰을 빚을 때마다 시원하게 대꾸하는 은재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혼수와 집안일 등으로 시부모와 마찰을 빚을 때마다 시원하게 대꾸하는 은재는 일종의 카타르시스였다.
그러나 <아내의 유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점은 이 드라마가 가장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가장 현실적인 욕망을 구현해 냈다는 사실이다. 민소희라는 이름으로 애리를 내쫓고 교빈과 다시 결혼한 은재는 “두 번이나 결혼한 남자랑 결혼하는데 엄마한테 미안하니까” 예단과 예물을 생략하겠다고 선언해 백미인을 분노케 하고, 심지어 백미인이 받고 기뻐했던 보석 세트가 모조품이었다는 것까지 당당하게 밝힌다. 이는 첫 결혼 때 예단 때문에 시어머니는 물론 남편으로부터도 말 못할 수모를 당했던 데 대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복수이자 주부들이 모이는 인터넷 게시판에 흔히 올라오는 “혼수 때문에 구박하는 시댁…감싸주긴 커녕 거드는 남편” 식의 한국 여성들이 공유하고 있는 시가에 대한 공포나 거부감에 대해 <아내의 유혹>이 내놓은 제법 속 시원한 대답이다. 그래서 교빈의 집안의 일원이 되고자 했던 애리와는 달리 복수만이 목적이었던 은재가 “돈 안 받는 가정부로 살지 않겠다”며 다짐하고 마침내 자신의 정체를 밝힌 뒤 남편, 시어머니, 시누이, 시아버지를 향해 과거부터 쌓였던 분노를 낱낱이 토로하며 그들을 공포와 경악에 질리게 했던 장면은 일종의 한풀이 역할을 하며 이 드라마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최대치까지 이끌어냈다.

‘중독’에서 ‘관성’으로 가기까지

예전의 카리스마가 제거된 은재, 암에 걸린 애리 등 ‘아유월드’는 성긴 봉합으로 종착역을 앞두고 있다.
예전의 카리스마가 제거된 은재, 암에 걸린 애리 등 ‘아유월드’는 성긴 봉합으로 종착역을 앞두고 있다.
그러므로 그 이후의 <아내의 유혹>에서 이어진 스토리는 오히려 사족에 가깝다. 죽은 줄 알았던 진짜 민소희가 돌아와 애리와 손잡고 은재를 함정에 빠뜨리며 음모는 끊임없이 이어지지만 복수를 마친 은재는 이전의 카리스마를 발휘하지 못했고, 이 드라마의 절대악이었던 애리가 위암 말기 환자로 판명되며 이야기는 크게 벌어진 상처를 얼기설기 봉합해 버렸다. 너무 쉽게 포기하고, 너무 쉽게 입장을 바꾸는 캐릭터들 사이에서 ‘중독’으로 내달렸던 <아내의 유혹>은 이제 ‘관성’의 힘으로 간신히 마지막 회를 향해 가는 중이다.

1주일 전 촬영을 마친 <아내의 유혹>의 결말은 이미 알려져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애리가 그동안의 잘못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과거 교빈이 은재를 빠뜨렸던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이를 말리던 교빈 역시 물에 빠져 죽는다는 내용이다. SBS <발리에서 생긴 일> 이후 가장 충격적인 결말이다. 하지만 놀라거나 슬퍼할 것 없다. 극 초반, 은재와 가정 때문에 갈등하는 교빈에게 애리는 “우리 모두 같이 죽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그것도 나한텐 해피엔딩이야” 라고 말했고, 둘에게 복수를 꿈꾸던 은재는 “정교빈, 신애리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라고 비장하게 외쳤다. 그러니까 어쩌면 이것은 새로운 타입의 해피엔딩인지도 모른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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