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섬엔 모두 안경을 낀 사람들이 산다. 또 어떤 도시엔 모두 홀로 된 여인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여기 이 마을엔 오로지 ‘바가지 머리’ 소년들만 존재한다. <카모메 식당>과 <안경>으로 열혈 팬을 확보한 일본 인디 영화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세계는 늘 그렇게 획일적이고, 그러므로 평화로운 공간에서 첫 장을 연다. 뚱뚱한 갈매기가 여유롭게 노니는 스칸디나비아의 항구, 국민체조 음악이 울려 펴지는 고요한 섬 마을의 아침. 그리고 봄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판에 서서 ‘할렐루야’를 합장하는 한 무리의 소년들.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민하고 따뜻한 데뷔작 <요시노 이발관>은 아무런 의심 없이 평생 똑 같은 머리모양으로 살아왔던 소년들의 유쾌한 성장기다. 그녀의 이후 작품들이 그러하듯 <요시노 이발관>의 평화로운 세상 역시 어느 날 당도한 낯선 이의 방문으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물론 그 과정 역시 야만적인 흡수나 폭력적인 굴복과는 거리가 멀다. 도시에서 전학 온 남자아이. 심지어 자유롭고 세련된 헤어스타일로 등장한 이 소년은 내쫓거나 교화해야 할 이방인인 동시에 경외감과 질투를 안겨주는 동경의 존재다. 마을에 단 하나뿐인 요시노 이발관이 선사한 특유의 머리모양을 전통으로 여기던 ‘긍지의 카미노에 마을’ 은 그렇게 처음으로 변화의 기로 혹은 혁명의 전야를 맞이한다.

지난 2004년 전주영화제를 통해 상영되었지만 여전히 국내 미개봉작으로 머물러 있는 <요시노 이발관>의 실체를 궁금해왔던 관객이라면 당장 전주로 달려 갈 일이다. 올해 10살을 맞이하는 전주영화제 ‘10주년 기념상영’을 통해 5월 2일과 7일 두 번의 상영이 있을 예정이니까. 혹 운 좋게도 예매에 성공한다면 ‘인디언 인형’ 대신 만화책을 움켜쥔 ‘붐붐’의 어린 현신들이 떼지어 당신을 맞이할 것이다. 물론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뮤즈라고 부르기에 전혀 주저함이 없는 안경 낀 아줌마, 모타이 마사코의 등장은 너무 당연한 일이고.

글. 백은하 (o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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