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정 씨, 그 동네 사람들은 희정 씨 이름을 아예 모르죠? 다들 ‘보배엄마’라고만 하지, 희정 씨 이름이 불리는 걸 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말이에요. 하기는 십 수년째 저를 ‘509호’라고 부르는 이웃도 있긴 합니다. 감방도 아니거늘 ‘몇 호’ 보다야 ‘누구 엄마’가 그나마 낫죠. 그런데 그처럼 아이 이름을 빌려 쓰는 처지가 되면 나름 아이 이름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던데, 희정 씨는 그런 생각이 통 안 드나 봐요? 희정 씨가 벌이는 사건 사고들을 보고 있자면 ‘이 앓는 놈 뺨치기’, ‘비 오는 날에 장독 열기’, 뭐 이런 식으로 놀부의 심술궂은 행태를 묘사해놓은 <흥부전>의 한 대목이 생각납디다. 허구한 날 이간질로 이웃 간에 가족 간에 싸움 붙여 놓지, 애 어른 못 알아보고 닥치는 대로 딴죽 걸지, 남의 약점 하나 잡으면 평생 놀려먹지, 그간 희정 씨가 저지른 숱한 일들이 놀부의 심술보에 필적하니까요. 저는 그때마다 희정 씨의 이름표인 ‘보배’가 딱해 죽겠더라고요. 일은 엄마가 저지르건만 이름은 항상 ‘보배’가 거론되니 이게 무슨 경우인가요.

정말 왜 그러고 사시는 겁니까

솔직히 희정 씨를 알게 된 첫 날, 은경엄마 선경 씨(정선경)에게 아이들 과외 팀을 짜자면서 워킹맘의 아이는 끼워줄 수 없다고, 방송 작가인 영철 엄마(홍지민)에겐 비밀로 하라고 부추기는 걸 보고 바로 ‘이 여자 상종 못할 인간이로구나’ 했어요. 흔히들 엄마들이 아이 교육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덤비는 줄 알지만 천만에요, 여자들에게도 의리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더구나 그녀들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 사이인데, 어떻게 친구의 아이를 성적이 좀 떨어진다는 이유로, 엄마가 일을 한다는 이유로 제외시킬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그런 싹수없는 꼴을 목도한 이상 희정 씨와는 절대 교류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즉시 가위표를 해버릴 밖에요. 그런데 그 동네 사람들이 속이 좋은 건지 무딘 건지, 연판장을 돌리고 남을 사건이 한두 번이 아니건만 그때마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잘도 넘어가대요? 오히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희정 씨 꼴 뵈기 싫어 이사를 가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면서요? 부동산 박 사장(박미선) 말에 따르면 이사 가는 사람의 상당수가 희정 씨와의 분란을 피해 떠나는 거라니 그 뿌리 깊은 생존력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특히 매일같이 붙어사는 통에 가장 많은 피해를 보는 은경 엄마 선경 씨가 왜 여직 희정 씨를 떨쳐낼 생각을 않는지 그게 미스터리예요. 사고치고 잠적한 아들 집에 스리슬쩍 눌러 앉은 은경이 할머님(선우용여)도 막상막하 개념 상실 캐릭터지만 자기 시어머니에게 ‘시드래곤’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수시로 비아냥거리는 걸 왜 용납하는지, 그리고 빵집에서 일하는 희진(장희진)이를 ‘빵녀’라고 부르며 못살게 구는 걸 왜 수수방관하는지 도대체 모르겠거든요.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옛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데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딸 이름에 먹칠해서야 되겠어요!

혹시 사람들은 희정 씨가 내도록 입에 달고 사는 ‘한상필 그 인간’이 피운 수차례의 바람 때문에, 또는 결혼 예물로 받은 한 돈짜리 반지와 닷 돈짜리 목걸이조차 팔아버려야 했던 안쓰러운 과거 형편 때문에 딱해서 봐주는 걸까요? 편치 않은 일들을 구구절절 많이 겪다보면 마음이 꼬일 수밖에 없긴 하니까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매일 은경이네 빵집에 출근을 하며 민폐를 끼치는 것도 모자라 바로 가게 앞에서 샌드위치를 팔 생각까지 하는 진상이거늘 어찌 그걸 참고 다시 받아 주는지 원. 무엇보다 희진이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온 날 남자 손님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자 선경 씨를 부추겨 더 야한 옷을 사다 입힐 때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정신을 놓지 않고서야 딸 가진 엄마가 어찌 그런 망측한 일을 벌일 수 있겠어요. 눈치 빠른 보배가 자기 엄마 머리에서 나온 일이라는 걸 이내 알아채고 면박을 줘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당신, 과연 짱이십니다!

내키는 대로 말하고 밸 꼴리는 대로 저지르고, 뭐 다 좋아요. 비결이 뭔지는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참고 봐줄 때야 제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당신의 좋은 점이 분명 있겠지요. 그런데 말이죠, 당신은 어쨌거나 보배 엄마잖아요. 보배가 엄마 때문에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 혹시 안 해봤어요? 쿨한 보배야 누가 뭐라든지 아랑곳 않겠지만 지금도 어디선가 “그 여자 딸이라서 걔는 안 돼!”라는 말이 오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요. 아이 이름에 구정물을 끼얹는 엄마라니, 정말이지 끔찍하지 않습니까? “너나 잘 하셔!”라고 하면 깨갱할 수밖에 없지만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