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홍연이가 되게 좋아요”라고 히죽거리며 웃는다. 글로 적는다면 정말 ‘히히’라고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미소. 그 웃는 모습이 그대로 홍연이의 웃음인 것만 같아서 마음 한켠이 따스해져 왔다. 자신을 ‘아가씨’라고 불러준 선생님에게 푹 빠져 세상 모든 단어가 ‘아가씨’로 들리던 <내 마음의 풍금>의 홍연이, 이정미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뮤지컬 <겜블러>, <아이다> 등의 작품으로 뮤지컬을 시작한 이정미는, 2007년 “이젠 다른 사람이 하면 샘이 날 것 같다”는 <맘마미아>의 소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다와 하늘의 상징 그리스의 스무살 처녀 소피는 그녀에게 생애 첫 신인상을 안겨주었다. 작은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티 없이 깨끗한 목소리와 조랑말처럼 건강하고 활기찬 에너지는, 이후 창작뮤지컬 <달고나>, <젊음의 행진> 등을 거치며 ‘누구나 한번쯤 좋아했을법한 이웃집 소녀’ 같은 첫사랑의 이미지를 선사했다. 그리고 2008년, 이제는 스스로 “너무 많이 해먹었다”고 웃지만 그 어떤 캐릭터들보다도 이정미의 몸에 착 맞는 ‘홍연’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었다.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이정미에게 <내 마음의 풍금>이 갖는 의미가 무어냐고 물었더니 그녀의 목소리가 한톤 낮아졌다. 그 잦아든 목소리에서 스물일곱 이정미의 고민과 함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잔뜩 묻어났다. “<내 마음의 풍금>은 저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그동안 제가 했던 <맘마미아>, <달고나>, <젊음의 행진>은 모두 노래가 위주였던 주크박스 뮤지컬이었잖아요. 저는 노래도 좋아하지만 연기로서 감동을 주고 싶은데, 아무래도 저를 발랄한 이미지로 봐주시다보니 그런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홍연이를 만나서 정말 다시 한 번 뜨겁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은 1981년에 발표된 故 하근찬의 소설 <여제자>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2008년 초연 후 제14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한 6개 부문을 수상하였다. 서울에서 갓 부임한 선생님, 16살의 국민학생, 샤갈을 좋아하는 양호선생님의 사랑이 산수유 꽃이 만발하고 소복한 눈이 쌓이는 시골의 사계절을 배경으로 잔잔하고 애틋하게 그려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09년에는 이지훈, 성두섭, 이창용 세 배우가 새롭게 강동수 선생님으로 송정리에 부임했으며, 작년에 이어 이정미는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랑스러운 홍연이가 되었다.

“굉장히 단순한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치고 나온다는 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관객들의 표정이 점점 변하는 게 보이는데, 커튼콜 때는 ‘정말 가슴 한켠이 확 달궈지는구나’라는 것이 느껴져요. 그래서 앞으로도 그런 초반의 의도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품자체에 대한 넘치는 마음이 그녀의 입을 통한 모든 문장들에서 뚝뚝 묻어난다. 그래서 초연 이후 모든 스태프들이 마음을 놓지 않고 가슴 졸이며 만든 이번 앵콜공연이 감사하다. 그렇게 애정으로 만들어낸 작품과 캐릭터는 이정미에게 ‘내 자식’같은 존재가 되었다. “홍연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전혀 학습되지 않은 아이인데, 그 감정을 혼자 알아나가는 모습이 안쓰럽지만 그만큼 또 대견하기도 하고 그래요. 작년에 비해서 계산하기 보다는 좀 더 솔직하게 느껴지는 대로 행동하고, 홍연이의 마음을 더 가지려고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젠 정말 홍연이가 내 새끼 같아서 이 캐릭터가 어떻게 발전되고 누가 할 건지 앞으로도 기대가 되요.”

이정미는 5월 24일까지 계속되는 <내 마음의 풍금> 서울공연과 이후 7월말까지 계획되어 있는 지방공연에 매진할 생각이다. “현재 일본공연도 추진 중인데 이 작품 끝나면 좀 더 좁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더 가까이 만나 연기할 수 있는 소극장 작품 하나를 하려구요. 그동안 얼굴도 제대로 안 보이는 큰 공연장에서 관객들을 만나다 보니까 저를 더 이미지로 보시는 것 같아서, 이제는 이정미라는 배우의 향기를 전해드리고 싶어요.” 최근엔 좋은 사람 있으면 좋다고 표현하고, 순리대로 사는 게 가장 예쁘게 사는 것이라는 걸 조금씩 알 것 같단다. 열여섯의 홍연이가 스물일곱의 이정미에게 가르쳐준 삶인가 보다. 친구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부담스럽지 않은 존재가 되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또 가슴 한켠이 알싸해진다.

‘나비의 꿈’
“이 장면을, 그리고 ‘나비의 꿈’ 이 노래를 가장 좋아해요.” 여름밤, 평상에 앉아 홍연이의 일기를 읽어주는 선생님과 그런 선생님에게서 일기를 뺏으려 하는 홍연이의 모습이 반딧불이를 배경삼아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 장면 연기하면서 제가 그렇게 불쌍해 보이는지 몰랐어요. (웃음) 그런데 스태프들이 홍연이가 주먹을 꼭 쥐고 노래하는 게 너무 안쓰러워서 죽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그 장면을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그때 알았어요.” 선생님의 토닥임에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팔짝팔짝 뛰고, 일기장을 꼭 끌어안는 홍연이가 슬프다. 그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도 순수하게 선생님의 행동 하나하나에 눈물짓고, 행복해해서. 상처받고 눈물 흘려도 누군가를 향한 ‘불타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일기에, 꽃에 담았던 홍연이는 그렇게 관객들 곁에 소리 없이 앉았다.

사진제공_클립서비스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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