볕 좋은 주말이었다. 경복궁을 끼고 종로로 걸어 나오는 길에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건물 앞을 지나게 되었다. 투박한 인형들이 수수한 단상 위에 전시되어 있었고, 나는 그 유리창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처음 회사에 입사하던 무렵, 이제 나도 어엿한 직장인이고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사람이 되었으니 드디어 남을 위하는 여유를 좀 부려야겠다고 다짐했던 그 여름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다짐이 지난 몇 개월 동안 까맣게 잊혀진 채로 방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 나는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수조차 없었다.

직접 만든 헝겊 인형을 기증받아 이를 입양시키는 AWOO 인형 캠페인은 유니세프의 다양한 모금 활동의 일환이다. 누구나 홈페이지(http://www.awoo.or.kr/)를 참고하여 만든 인형을 유니세프로 보낼 수 있으며, 역시 누구나 2만원이라는 입양비를 입금하면 원하는 미입양 AWOO를 전달받을 수 있다. 서툰 솜씨로 만든 인형의 가격으로 비싼 듯 보일지 모르지만, 2만원이라는 돈은 한 명의 어린이를 6대 질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예방접종 비용이다.

집으로 돌아와 버리려고 모아두었던 옷가지를 꺼냈다. 오래간만에 바느질을 하려니 걱정이 앞서지만 바늘에 손끝이 좀 다친들, 이렇게 마음이 따끔거리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다가오는 월급날에는 꼭 잊지 말고 유니세프 정기 후원 신청을 해야겠다. 아이들이 꿈꾸지 않는 세상은 더 이상 미래가 없는 곳이다. 최소한 아이들이 생존을 꿈꾸고 희망할 수 있도록 조금만 더 내어놓으며 살아야겠다. 아이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곳에, 대체 누가 살아남아 무엇을 누릴까.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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