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포츠의 입에서 ‘Nessun Dorma’가 흘러나오던 순간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시골 동네에서 핸드폰을 팔던, 치아는 엉망이고 보기 싫게 과체중인 이 남자의 목소리는 완벽하게 기대를 배반했다. 외양과 직업과 환경을 통해 재능을 재는 우리에게 폴 포츠는 멋진 한방을 날린 것이다. 그는 이제 성공한 음악가가 됐다. 수백만 장의 앨범을 팔아치우고 월드투어를 다닌다. 나는 폴 포츠가 파바로티에 필적하는 ‘성악가’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성악가들과 비교하자면 그의 성량은 별 볼일 없다. 하지만 나는 폴 포츠가 좋다.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동의 순간을 창조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브리튼스 갓 탤런트> 3시즌이 새로운 스타를 낳았다. 수잔 보일이라는 47세 노처녀다. 태어나서 빗질 한 번 안 해본 듯한 곱슬머리를 가진 이 여자는 완벽한 폴 포츠의 재림이었다. 그녀가 <레미제라블>의 ‘I dream a dream’을 씩씩하게 부르는 순간 모든 건 예정대로였다. 카메라는 ‘우리의 편견을 배반하는 위대한 소시민의 기적을 보라’는 투로 심사위원과 방청객의 감동에 절은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장중한 음악을 때려댔다. 물론이다. 수잔 보일은 아줌마다. 목소리도 걸걸하니 좋고 씩씩한 태도도 아름답다. 하지만 가슴이 미어질 만큼 감동적인 재능은 도저히 아니다. 기적은 한 번이면 된다. 폴 포츠는 한 명으로 족하다. 시니컬하기로 악명 높은 영국 TV가 왜 이렇게 제2의 폴 포츠를 만들어내려 억지를 부리는 걸까.

어느 날 아침 신문을 보던 나는 마침내 해답을 찾아냈다. “영국, IMF에 구제금융 신청할 수도” “英 또다시 IMF 위기 맞나” “내리막 영국경제 IMF에 손 벌리나”. 거품 위에서 호황을 누리던 영국경제는 벼랑 끝에 서 있었다.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바라는 건 감동이다. 위기의 순간에 TV가 원하는 건 감동을 바라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탕발림할 기적이다. 영국인들은 그 언제보다도 또 다른 폴 포츠가 간절히 필요했던 것이다.

글. 김도훈 (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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