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내내 김강우는 ‘내 생각에는’, ‘내 말이 틀릴 수도 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종종 ‘그렇지 않나?’라는 혼잣말과 함께 동의를 구하듯 쳐다봤다. 하지만 그것이 즉답을 피하는, 자신 없는 태도였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의심하지 않는 신념은 신념이 아니다’라는 잠언대로 그는 신념이 확고했고, 솔직했다. 그러고 보면 2003년 MBC 에 주연으로 덜컥 기용된 이후 그가 연기했던 인물들은 다양한 직업군과 성격을 가졌을지언정 의뭉스럽지는 않았다. 심지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KBS 의 악역 채도우 마저도. 스스로는 “자신을 지우며” 연기했다고 하지만 대화 순간 순간 그가 연기했던 인물들을 느낄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남자이야기>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받은 질문이 뭔가.
김강우
: 악역 하면서 힘든 게 뭐냐. 뭘 준비 했냐.

악역도 악역이지만 중성적 느낌의 캐릭터인 것이 더 특이했다.
김강우
: 움직임이 많지 않은 인물이라 그렇게 보일 수 있다. 눈빛과 목소리에 느낌을 실어야하고, 무엇을 살짝 짚는 손동작에서도 섬세한 느낌을 살려야 인물이 산다. 그런 꼼꼼함이 캐릭터에 포함되니까 중성적이라고 느낀 것 같다. 내가 굳이 중성적 이미지를 보여주려 한 것은 아니지만 예민하단 의미에서 중성적이라 받아들였다면 성공이다.

“악인이라고 해서 계속 힘주고 있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송지나 작가와도 캐릭터에 대한 대화를 많이 했다고 들었는데 작가는 어떤 걸 주문했나.
김강우
: 우선은 ‘귀족적이어야 한다, 아무도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하이클래스면 좋겠다, 대사나 시선처리에서도 항상 절도 있고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냥 악역이 아닌 뒤로 갈수록 악마성이 드러나는 사이코패스적인 면이 보이길 주문했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것과 무섭게 하는 건 다른데 후자로서의 악마성인 건가.
김강우
: 이 친구는 감정 자체가 없다. 흥분하지도 않고, 쉽게 동요되지도 않고, 즐거워하지도 않고, 웃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작가님께서 채도우 캐릭터가 부드러웠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런 가운데 순간순간 악마성이 드러나는 거지. 악이라고 해서 계속 힘주고 있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동작이 절제된 만큼 연기할 때 대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야 할 거 같다.
김강우
: 채도우는 워낙 지능이 뛰어나고 여우같기 때문에 모두를 깔보는 사람이다. 그래서 연기할 때 기본적으로 내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다 읽고 있다는 전제를 깐다. 네가 다음에 할 말, 네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내가 다 읽고 있다는 그런 전제. 그렇지 않으면 내 눈빛 자체가 흔들리니까.

드라마에선 “내가 원하니까”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뛰어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그런 악행을 저지르는 걸까.
김강우
: 성향이 그런 거다. 계속 누군가를 이겨나가지 않으면 삶에 재미가 없는 인물이다. 마음만 먹으면 남에게 상처주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는 머리와 재력과 학벌을 가지고 있는데 굳이 그런 짓을 하는 건, 그렇지 않으면 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남이 자신에게 게임이 안 된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욕망이 목표하는 어떤 종착역이 없을 것 같다.
김강우
: 그렇다. 그냥 하나 둘 다른 인물들이 무너지는 걸 즐기는 것뿐이다.

“누가 내 단점에 대해 얘기하면 적어놓고 분석한다”

참 독특한 캐릭터인데 스스로 작가에게 의견을 제시한 건 없나.
김강우
: 결벽증 같은 걸 넣었으면 싶었다. 1부 초반에 오 이사(김뢰하)의 옷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는 모습에서도 드러나는데 앞으로도 그런 걸 종종 보일 거다. 그리고 어릴 적 트라우마에 대한 것에 대해서도 말씀드렸는데 작가님께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주셨다. 사실 작가님은 선천적인 사이코패스, 즉 진짜 악마 같은 인물을 원한 것 같은데 후천적 트라우마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주셨다. 또 개인적으로 인물의 성격에 있어 잘 이해되지 않는 건 정신과 의사를 만나서 물어보기도 했다.

본인이 납득할 수 있는 캐릭터를 원했던 건가.
김강우
: 음… 아무리 극단적 캐릭터라도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래 그러니까 그래야해’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내가 버티지 못할 거 같다. 정신과 의사를 만나러 간 것도 불확실성을 제거해 어느 정도 명확한 타당성을 가지고 역을 시작하고 싶어서였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지, 아닌 걸 억지로 만들면 나중에 어떤 ‘삑사리’가 난다.

시작하기 전 의혹이 생기면 일을 못하는 타입인가.
김강우
: 이거는 뭐 보완을 해나갈 수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면. 그건 어떤 배우라도 그럴 거다. 대신 하게 되면 무조건 연출가를 믿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대본을 봐도 한 번은 더 보고 더 많이 아는 분이니까. 그것에 대해 내 생각을 더 어필하고 입김을 키우기 시작하는 건 위험할 거 같다. 그런 건 촬영하기 전에 다 끝내야 한다.

하지만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게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는 것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 생기지 않나.
김강우
: 그건 보는 분들이 판단하는 거지. 배우가 ‘나에겐 이 일이 맞고 이게 나에게 최고였다’ 평가하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러면 위험해지는 것 같다. 내 말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안 하려고 한다.

‘내 말이 틀릴 수도 있는 거지만’ 이라고 단서를 붙였다. 단정 짓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편인가.
김강우
: 안 좋아한다. 그건 좀 다행인 거 같다. 남의 얘기는 잘 듣는다. 사실 배우는 자신의 단점을 얘기하는 걸 싫어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물론 기분 나쁘지만 그걸 적어놓는다, 꼭. 그리고 내 작품이 끝나고 나면 그걸 평론가처럼 굉장히 비판적으로 본다. 그래서 약점을 찾아낸다. 그렇게 보완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단 느낌이 든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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