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리의 러너들 중 그는 배경이었다. 카메라의 포커스는 선두에 맞춰져 있었고, 그의 존재는 아웃포커싱 되어 희미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성큼성큼 카메라의 중심으로 뛰어 들어와 그 선명한 얼굴을 드러냈다. MBC <나는 달린다>에서 무철이 희야(채정안)의 카메라에 그렇게 포착된 순간, 영화 <해안선>과 <실미도>에서 반항기와 불안함이 공존하던 소년의 이미지로 배경에 녹아있던 김강우 역시 첫 주연을 통해 대중의 시야에 들어왔다. 또한 이것은 주연이면서도 드라마의 배경에 차분히 녹아들어가 눈에 확 들어오지 않았던 배우가 6년여의 시간을 통해 자신의 이름과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기까지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예지적 장면이기도 하다.
원래 거기에 있던 사람처럼
2003년, 이전 해 <네 멋대로 해라>로 월드컵 못지않은 신드롬을 만들어냈던 박성수 감독은 전작을 잇는 청춘 드라마 <나는 달린다>에 평범함을 조금 면한 얼굴의 신인 김강우를 주연, 무철로 캐스팅했다. 비록 드라마는 청춘의 열정이라는 주제 의식에 짓눌려 생동감을 보여주지 못했고, 시청률도 아쉬웠지만 무철을 살리기 위한 박성수 감독의 선택만큼은 틀리지 않았다. 용접 공장과 청계천 헌 책방, 한 쪽 벽에 책이 잔뜩 쌓인 단칸방 같은 공간에서 “<실미도>를 찍느라 머리도 짧고 얼굴도 까무잡잡하게 탄” 김강우는 마치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어울렸다. 이후로도 그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탁월한 리얼리티 연기는 아니더라도, 그 배경과 상황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재밌는 건 그가 ‘잘난’ 역할을 맡을 때도 그렇게 슬그머니 전체와 어울린다는 것이다.
영화 <야수와 미녀>의 준하는 ‘야수’ 구동건(류승범)에게 “얼굴도 잘생긴 놈이 못하는 것도 없어서 짜증나는” 존재다. 실제로 동건의 회상 신에서 응원단장 복장으로 무대 위를 휘어잡거나 재즈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준하, 아니 김강우는 준수하다. 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엄친아’는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처럼 ‘자체발광’을 통해 주위까지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존재가 아닌, 정말 엄마 친구의 잘난 검사 아들이나 학교에 한두 명씩 있을 킹카처럼 현실적인 느낌이다. 그것은 부담스럽지 않은 외모와 희미하게 오버랩되는 무철의 이미지 영향이 크지만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그 성격이 그렇게 된 배경과 이유가 타당해야” 연기할 수 있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준하는 잘생기고 능력이 있지만 세상 모든 여자가 자기 거라 여기지 않고, 영화 <태풍태양>의 모기는 사회의 룰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주의자지만 정작 세상에 부딪혀야 할 때 무기력한 히스테리를 부린다. 그들은 마치 현실의 어딘가에 있을 것처럼 명료한 촉감으로 느껴지지만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전체 플롯과, 배경과, 인물들 사이에 자신을 지운 채 스며든다. 마치 실력 좋은 외야수가 타구 방향을 보고 움직여 어떤 화려한 플레이 없이 원래 거기 있던 사람처럼 손쉽게 잡아내는 것처럼.
또다른 시작점에서 김강우는 달린다
이것은 작품을 드러내는 존재로의 배우에겐 꼭 필요한 재능이지만 스타로 가는 길목에 있어선 일종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가령 담담한 톤으로 깊은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의선> 같은 영화에선 정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표정하지만 그렇다고 경직된 것도 아닌 얼굴로 “오늘 하루가 여러분 생애 최고의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기관사 만수가 꼭 필요했지만, 독특한 장르물이 될 수 있었던 영화 <가면>에선 좀 더 튀고 마초적인 형사 캐릭터를 보여줘도 좋았을 것이다. 영화 <식객>은 3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지만 성찬은 과거 무철 캐릭터의 반복으로 받아들여지며 김강우에겐 흥행 배우라는 타이틀이 아닌 선한 역할 전문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
그래서 이제 막 그 악마성을 드러내려 하는 KBS <남자 이야기> 채도우는 김강우에게 가장 큰 터닝 포인트의 기회다. 그것은 단순히 “대중적으로 각인된” 착한 이미지와 반대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신인 시절 “10명 중 8, 9명은 알아보는 배우”가 되길 바랐던 그는 이제 그에 준하는 인지도를 얻었지만 자신만의 어떤 확고한 이미지보다는 필모그래피로 기억된다. 하지만 채도우는 자신이 짓밟은 상대에게 “그런 간절한 눈빛을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극단의 악역이자, 자신에게 수치를 줬던 친구의 목을 트라이앵글 초크로 조르며 쾌감을 느끼는 정신이상자다. 즉 채도우는 다분히 캐릭터다운 캐릭터다. 아직 상대역 김신(박용하)이 감옥 안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중요 조연들은 등장하지 않은 현재, 드라마의 포커스가 이 천재적 사이코패스에게 맞춰진 건 당연하다. 그래서 현재의 김강우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모습으로 후경이 아닌 전경에 서있다. 그 지점에서 대중들이 품은 감광판에 자신의 이름과 이미지를 새겨 넣는 것은 그의 몫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원래 거기에 있던 사람처럼
2003년, 이전 해 <네 멋대로 해라>로 월드컵 못지않은 신드롬을 만들어냈던 박성수 감독은 전작을 잇는 청춘 드라마 <나는 달린다>에 평범함을 조금 면한 얼굴의 신인 김강우를 주연, 무철로 캐스팅했다. 비록 드라마는 청춘의 열정이라는 주제 의식에 짓눌려 생동감을 보여주지 못했고, 시청률도 아쉬웠지만 무철을 살리기 위한 박성수 감독의 선택만큼은 틀리지 않았다. 용접 공장과 청계천 헌 책방, 한 쪽 벽에 책이 잔뜩 쌓인 단칸방 같은 공간에서 “<실미도>를 찍느라 머리도 짧고 얼굴도 까무잡잡하게 탄” 김강우는 마치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어울렸다. 이후로도 그는 드라마와 영화에서 탁월한 리얼리티 연기는 아니더라도, 그 배경과 상황 안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재밌는 건 그가 ‘잘난’ 역할을 맡을 때도 그렇게 슬그머니 전체와 어울린다는 것이다.
영화 <야수와 미녀>의 준하는 ‘야수’ 구동건(류승범)에게 “얼굴도 잘생긴 놈이 못하는 것도 없어서 짜증나는” 존재다. 실제로 동건의 회상 신에서 응원단장 복장으로 무대 위를 휘어잡거나 재즈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준하, 아니 김강우는 준수하다. 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엄친아’는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처럼 ‘자체발광’을 통해 주위까지 비현실적으로 만드는 존재가 아닌, 정말 엄마 친구의 잘난 검사 아들이나 학교에 한두 명씩 있을 킹카처럼 현실적인 느낌이다. 그것은 부담스럽지 않은 외모와 희미하게 오버랩되는 무철의 이미지 영향이 크지만 “어떤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그 성격이 그렇게 된 배경과 이유가 타당해야” 연기할 수 있다는 그의 고집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준하는 잘생기고 능력이 있지만 세상 모든 여자가 자기 거라 여기지 않고, 영화 <태풍태양>의 모기는 사회의 룰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주의자지만 정작 세상에 부딪혀야 할 때 무기력한 히스테리를 부린다. 그들은 마치 현실의 어딘가에 있을 것처럼 명료한 촉감으로 느껴지지만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전체 플롯과, 배경과, 인물들 사이에 자신을 지운 채 스며든다. 마치 실력 좋은 외야수가 타구 방향을 보고 움직여 어떤 화려한 플레이 없이 원래 거기 있던 사람처럼 손쉽게 잡아내는 것처럼.
또다른 시작점에서 김강우는 달린다
이것은 작품을 드러내는 존재로의 배우에겐 꼭 필요한 재능이지만 스타로 가는 길목에 있어선 일종의 걸림돌이기도 하다. 가령 담담한 톤으로 깊은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의선> 같은 영화에선 정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표정하지만 그렇다고 경직된 것도 아닌 얼굴로 “오늘 하루가 여러분 생애 최고의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는 기관사 만수가 꼭 필요했지만, 독특한 장르물이 될 수 있었던 영화 <가면>에선 좀 더 튀고 마초적인 형사 캐릭터를 보여줘도 좋았을 것이다. 영화 <식객>은 300만이 넘는 관객을 모았지만 성찬은 과거 무철 캐릭터의 반복으로 받아들여지며 김강우에겐 흥행 배우라는 타이틀이 아닌 선한 역할 전문이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
그래서 이제 막 그 악마성을 드러내려 하는 KBS <남자 이야기> 채도우는 김강우에게 가장 큰 터닝 포인트의 기회다. 그것은 단순히 “대중적으로 각인된” 착한 이미지와 반대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신인 시절 “10명 중 8, 9명은 알아보는 배우”가 되길 바랐던 그는 이제 그에 준하는 인지도를 얻었지만 자신만의 어떤 확고한 이미지보다는 필모그래피로 기억된다. 하지만 채도우는 자신이 짓밟은 상대에게 “그런 간절한 눈빛을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극단의 악역이자, 자신에게 수치를 줬던 친구의 목을 트라이앵글 초크로 조르며 쾌감을 느끼는 정신이상자다. 즉 채도우는 다분히 캐릭터다운 캐릭터다. 아직 상대역 김신(박용하)이 감옥 안에서 별다른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중요 조연들은 등장하지 않은 현재, 드라마의 포커스가 이 천재적 사이코패스에게 맞춰진 건 당연하다. 그래서 현재의 김강우는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모습으로 후경이 아닌 전경에 서있다. 그 지점에서 대중들이 품은 감광판에 자신의 이름과 이미지를 새겨 넣는 것은 그의 몫이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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