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우울하거나 머리가 복잡한 날에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읽는다. 홈즈 선생의 치밀한 논리와 질서정연한 사건 해결 과정, 명쾌한 결말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에는 평화가 깃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째 읽고 또 읽느라 반쯤 외울 정도가 되어 버린 홈즈만 붙들고 이 풍진 세상을 버텨 나가기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요즘 <가십 걸>에 이은 나의 새로운 신경안정제는 <번 노티스> 시즌 2(수퍼액션 목요일 낮, 밤 12시)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 모를 해고 통지(Burn Notice)를 받고 고향인 마이애미에 갇히게 된 전직 스파이 마이클 웨스턴(제프리 도노반)의 인생은 시즌 2에서도 여전히 팍팍하다. 마이클을 해고했던 자들은 온갖 위험한 임무에 그를 투입하고, 그들의 정체를 추적하려던 마이클은 죽을 고비를 넘긴다. 잔소리 많은 엄마, 속만 썩이는 남동생, 총질을 좋아하는 여자친구 피오나와의 관계 역시 뜻대로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인데 불쌍한 이웃들은 또 어떻게 알고는 그를 찾아와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쿨한 스파이’라고 광고하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마음 약한 스파이인 마이클은 결국 아들 병원비를 사기당한 아버지나 제3세계 아이들에게 보낼 의약품을 약탈당한 봉사 단체를 돕기 위해 몸을 던지곤 한다.
결과는, 물론 뻔하다. 고작 마이애미를 무대로 놀던 범죄자들은 전 세계에서 날고 기며 첩보 활동을 펼치던 마이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사건은 항상 깔끔하게 해결되고, 의뢰인들은 그에게 눈물 어린 감사의 인사를 하고, 마이클은 생색 한 번 안 내고 또 다른 사람을 돕기 시작한다. 물론 마이클에게 당했던 그 많은 범죄자들 중 누구도 마이애미 전 지역을 활보하고 다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만 마이클의 세계는 이를테면 홈즈의 세계와 같은 차원에 있는 것이므로 그런 사소한 리얼리티 따위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돈 많고 섹시한 제임스 본드보다 가난하고 실없는 마이클 웨스턴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번 노티스>의 가장 좋은 점 하나, 별 것 아닌 재료만 가지고도 섬광 수류탄에서 X선 카메라까지 척척 만들어 내는 마이클을 보고 있으면 그 옛날 경외와 감탄으로 눈을 뗄 수 없었던 추억의 명작 <맥가이버>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어느 날 갑자기 영문 모를 해고 통지(Burn Notice)를 받고 고향인 마이애미에 갇히게 된 전직 스파이 마이클 웨스턴(제프리 도노반)의 인생은 시즌 2에서도 여전히 팍팍하다. 마이클을 해고했던 자들은 온갖 위험한 임무에 그를 투입하고, 그들의 정체를 추적하려던 마이클은 죽을 고비를 넘긴다. 잔소리 많은 엄마, 속만 썩이는 남동생, 총질을 좋아하는 여자친구 피오나와의 관계 역시 뜻대로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인데 불쌍한 이웃들은 또 어떻게 알고는 그를 찾아와 구구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쿨한 스파이’라고 광고하지만 사실은 세상에서 가장 마음 약한 스파이인 마이클은 결국 아들 병원비를 사기당한 아버지나 제3세계 아이들에게 보낼 의약품을 약탈당한 봉사 단체를 돕기 위해 몸을 던지곤 한다.
결과는, 물론 뻔하다. 고작 마이애미를 무대로 놀던 범죄자들은 전 세계에서 날고 기며 첩보 활동을 펼치던 마이클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사건은 항상 깔끔하게 해결되고, 의뢰인들은 그에게 눈물 어린 감사의 인사를 하고, 마이클은 생색 한 번 안 내고 또 다른 사람을 돕기 시작한다. 물론 마이클에게 당했던 그 많은 범죄자들 중 누구도 마이애미 전 지역을 활보하고 다니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만 마이클의 세계는 이를테면 홈즈의 세계와 같은 차원에 있는 것이므로 그런 사소한 리얼리티 따위는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돈 많고 섹시한 제임스 본드보다 가난하고 실없는 마이클 웨스턴이 훨씬 매력적이라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번 노티스>의 가장 좋은 점 하나, 별 것 아닌 재료만 가지고도 섬광 수류탄에서 X선 카메라까지 척척 만들어 내는 마이클을 보고 있으면 그 옛날 경외와 감탄으로 눈을 뗄 수 없었던 추억의 명작 <맥가이버>를 새삼 떠올리게 된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