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수사의 계절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묻고 싶다면 지난달부터 이번 달까지의 케이블 편성표를 확인해 보라. 3월 16일 채널 CGV가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4를, OCN이 시즌 9를 런칭한 이후 tvN은 4월 6일부터 사이먼 베이커 주연의 심리 수사물 <멘탈리스트>를 편성했고, FOX 채널 역시 비록 퍼스트런은 아니지만 4월 8일 시즌 1을 런칭했다. 봄맞이 개편을 하는 케이블 채널에게 미드, 그 중에서도 시리즈마다 고정 팬을 확보한 수사물은 빼놓을 수 없는 킬러 콘텐츠다. 과연 무엇이 우리를 피비린내 나는 사건 현장에 채널을 고정하게 만드는 것일까. 시즌 1 이후 수사물이 소비된 방식과 WBC 한국 대표팀 못지않은 가상의 수사 드림팀,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서술된 <10아시아> 실종사건 그리고 장르물의 천국 일본의 수사 드라마 소개를 통해 그 질문에 답해본다.

“불법이고 비윤리적이야.” 식당 여종업원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심리분석가 패트릭 제인이 피해자의 동료에게 최면을 걸어 진술을 시키자 사건을 총괄하던 경찰 수석요원 리스본은 혐오하는 얼굴로 말했다. 실제 상황이라면 분명 큰 문제가 될 일이지만 <멘탈리스트>의 세계에선 결국 패트릭의 활약을 통해 범인을 잡고 모두가 만족해하는 결말이 만들어진다. 이것은 <멘탈리스트>를 비롯한 현대 수사물에서 수사관과 범인의 대결구도가 ‘윤리 대 비윤리’의 틀 안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수사의 모든 것, 이제 데이터에 있다

70년대의 <형사 콜롬보>와 80년대의 <마이애미 바이스> 같은 작품들과 구분되는 현대 수사물만의 차별적 지점을 만든 대표적 작품은 일 것이다. 주인공의 탁월한 추론 능력 하나만으로, 혹은 용의자의 본거지에 뛰어들어 우격다짐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던 과거 작품들과 달리 CSI의 요원들은 혈흔과 지문을 채취하고 DNA 검사나 시뮬레이션을 통해 범인을 잡는다. 그들이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은 조심스럽지만 바닥의 혈흔이 말해주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동경로 같은 물증에 대한 확신은 절대적이다. 범인을 비롯한 용의자들은 거짓을 말할 수 있고, 수사하는 사람 역시 인간으로서 혼란을 느낄 수 있지만 데이터는 진실만을 말한다는 믿음은 수사 진행 방향에 회의를 느끼는 주인공에게 “자네에게 해줄 대답은 항상 같아. 데이터를 다시 살펴봐”라고 말하는 <넘버스> 래리 교수의 태도와 동일하다. 그들에게 있어 수사는 끔찍하고 제정신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들을 분석 가능한 데이터로 치환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효과를 갖는지에 대해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메디컬 시리즈 <하우스>다. 여기서 하우스의 환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혹은 뱃속에 들어간 이쑤시개 같은 작고 하찮은 원인들이다. 그것들이 구토와 발작을 비롯한 각종 괴질을 일으키며 환자를 공포에 떨게 해도 의사들이 속수무책인 것은 그 원인을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의 수사 장르에서 범죄가 갖는 의미도 동일하다. 범죄가 범죄인 것은 비윤리적이기 때문이지만 그것이 두려운 것은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사회라는 건강한 시스템 안에 틈입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일종의 버그다. 일시적 치료나 적출로는 이에 대한 두려움을 완전히 봉합할 수 없다. 때문에 원인만 알면 치료할 수 있는 백신과 어떤 원인인지 알아낼 과학적 방법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중요해진다. 치료 혹은 검거는 그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예정된 결말일 뿐이다. 때문에 범인과의 대결은 ‘윤리 대 비윤리’가 아닌 ‘합리 대 비합리’의 틀 안에서 진행된다.

더 이상 저 너머에 있지 않은 진실

이러한 구도는 미지의 어둠에 합리적 이성의 빛을 비추겠다는 근대의 태도와 닮았다. 사실 증거를 수집하고 인과관계를 따져 범인을 잡는다는 탐정소설이야말로 다분히 근대적인 서사다. 소설 <모르그가의 살인>에서 가장 근대적인 시공간인 18XX년의 파리 거리를 걷는 오귀스트 뒤팽이 최초의 탐정 캐릭터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근대 탐정소설에는 뉴턴 이래로 눈부시게 발달한 수학과 물리학이 자연의 비밀을 모두 밝히고, 세상을 가장 합리적 방식으로 이끌 수 있을 거란 기분 좋은 믿음이 깔려있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 사회가 ‘북경에서의 나비 날갯짓이 뉴욕에 폭풍을 불러올 수’ 있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로 가득한 대상이란 걸 알게 된 후 이런 믿음은 흔들렸다. 정통 수사물은 아니지만 FBI라는 수사집단을 전면에 내세웠던 <엑스파일>이 90년대에 등장한 건 그래서 흥미롭다.

암에 걸린 스컬리가 목에 외계인의 칩을 이식하고, 병원의 새 시술을 받고, 가족과 함께 신에게 기도해 암을 치료했을 때 이 드라마는 과연 무엇이 병을 고친 원인인지 밝히지 않는다. 그저 ‘진실은 저 너머(The truth is out there)’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다시 시간이 흘렀고 엑스파일을 결국 미결로 남겼던 멀더와 스컬리의 이야기는 미해결 사건 처리 전문인 <콜드 케이스>의 필라델피아 강력계의 이야기로 대치됐다. 그것은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거라 믿었던 변수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폭풍을 대비하기 위해 그 수많은 나비의 날갯짓을 계산에 넣게 된 것이다.

시즌 4까지 방영된 <크리미널 마인드>를 비롯해 <멘탈리스트>와 <라이 투 미>처럼 심리 수사를 다룬 작품들이 최근 상당수 등장하는 건 비슷한 맥락이다. 인간의 심리는 가장 변덕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대상이다. CSI의 길 그리썸 반장조차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해. 증거 말이야”라는 말로 용의자의 진술은 쓸모 있는 데이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표정언어로 거짓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확신하는 <라이 투 미>의 라이트먼 박사는 선생 살해의 혐의를 받는 소년의 눈동자 움직임만 보고서도 거짓진술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패트릭은 주방을 한 바퀴 둘러본 것만으로 안주인이 인도를 동경하고 남편을 딸 살인범으로 의심한다는 정보를 얻어낸다. 데이터를 통해 내면마저 읽어낼 수 있다면 시스템의 면역체계를 괴롭힐 불안인자의 행동은 충분히 예측 범위 안에 들어온다. 심지어 성격이상자마저도.

우리나라에선 왜 수사물을 보기 어려운가

최근 자주 인용되는 사이코패스가 두려운 건 잠재적 범죄자라서가 아니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 어려워서다. 하지만 세 개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 살인마나 사이코패스 인간사냥꾼을 프로파일링하는 <크리미널 마인드> BAU 팀의 수사는 정신이상자의 심리 분석이 어려울지언정 불가능하진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심리 수사물의 팬들이 관심 갖는 지점도 이 부분이다. 그들은 주인공들이 범인을 잡았다는 서사적 해결보단 전직 프로파일러가 쓴 <마인드 헌터> 같은 책을 읽고 왜 <크리미널 마인드>의 기디언이 보도 살인범에 대해 말더듬이일 거라 추측했는지 이론적으로 확인할 때 더욱 만족한다. 주인공의 직관에 의존하는 듯한 <멘탈리스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패트릭과 레드존의 대결보단 패트릭이 순간순간 보여주는 행동들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인 최면기술인지에 대한 분석이 훨씬 많은 호응을 얻는다.

부터 <멘탈리스트>에 이르는 일련의 현대 수사물들은 사회 매커니즘이 건강하진 않더라도 병에 걸렸을 때 치료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들 백신은 CSI나 NCIS, FBI 같은 공권력의 브랜드로 제공된다. 하지만 굳이 몇몇 사건들에서 공권력의 수사가 보여준 혼선을 지적하지 않더라도 드라마의 내용이 시대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고 믿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 해외 시리즈물 중 수사 장르가 유독 10년 가까이 인기를 끄는 것에 비해 우리나라 수사물을 보기 어려운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흔들리지 않을 이론으로 무장한 해외 수사물이야말로 온갖 예측불가능성을 공권력이 직접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결핍을 상상적으로 메워주는 가장 세련된 보충물인 것은 아닐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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