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 모든 역할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배우의 탄탄한 기본기가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믿음직스러운 중저음으로 대사를, 노래를 읊조리는 황정민의 모습에는 흔들림이 없다. 그것은 맡은 배역을 위해서 “다양한 작품들을 참고”하고 연극판에서 기인으로 불릴 만큼 치열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배우는 작품을 통해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황정민의 행보는 어떤 작품에서든 다른 얼굴로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냈다. “영화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는 배우가 관객이 되어 마지막 한 장면까지 꼭꼭 씹어 소화시킨 5편의 영화를 만나보자.
1995년 │ 감독 브라이언 싱어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반전이라는 찬사를 받는 영화죠. 물론 그 반전이 가진 강도가 세긴 하지만 <유주얼 서스펙트>의 가장 큰 매력은 마지막까지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심리전에 있다고 생각해요. 배우들의 연기도 너무 좋았고, 시나리오도 완벽했던 것 같아요. 2시간 내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라는 표현은 이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종종 어떤 영화는 한 개의 장면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충격으로 각인되는 결정적 장면의 힘은 그렇게 강하다. 살인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버벌의 진술로 시작된 이야기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듯 하지만 진실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진다. 케빈 스페이시의 이름을 관객들에게 확실히 알린 반전 영화의 대명사.
1997년 │ 감독 커티스 핸슨
“경찰과 퇴직형사, 그리고 팜므파탈. 어떻게 보면 뻔 한 설정인데 이 영화가 결코 뻔하지 않은 가장 결정적 이유는 바로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와 시나리오의 힘인 것 같아요. 대단한 연기파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하지만 결코 누구 하나 튀는 사람이 없어요. 극의 플롯 안에서 각각의 캐릭터로 단단하게 중심을 잡고 있죠. 그러니 누구 하나 소홀하게 볼 수가 없는 거예요. 러셀 크로우의 연기는 이 때 특히 좋았어요.”
어느 날 밤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모든 등장인물들의 욕망은 거미줄처럼 얽힌다. 정의를 동력으로 돌아가야 하는 LA 경찰국은 복수와 출세, 돈이라는 각기 다른 명제로 굴러간다. 종잡을 수 없이 뻗어나가는 이야기와 화려한 연기가 영화가 줄 수 있는 재미의 모든 것을 제공한다. 러셀 크로우, 케빈 스페이시, 가이 피어스 등 자신만의 화법을 가진 배우들이 총출동 한다. 육체파 배우 이미지가 강했던 킴 베이신저는 이 작품을 통해 1998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2003년 │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인물들의 과거가 현재처럼 다가오고, 과거의 비밀이 현재의 비밀과 겹쳐지고, 그들의 고통은 말로 하지 않아도 생생하게 다가오죠. 특히 숀 펜, 케빈 베이컨, 팀 로빈스의 연기는 참.. 배우인 제가 봐도 말문이 막히더라고요.(웃음)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진가를 확인한 작품이었어요.”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한 번 내린 결정은 영화처럼 되감기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심술궂게도 종종 그 결정은 나 외의 다른 사람들의 인생까지도 바꿔놓는다. 지미(숀 펜), 데이브(팀 로빈스), 션(케빈 베이컨)은 유년 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공유한 친구들이다. 서로 만나지 않고 살던 셋은 우연한 사건으로 다시 모이게 되고 그 동안 외면했던 진실들과 마주한다. 언제나 진실이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등장인물들의 얽히고설킨 인생을 빌려 외친다.
2001년 │ 감독 조엘 코엔
“코엔 형제의 영화 참 좋아해요. 뭐랄까. 아주 심각한 순간에도 이상하게 헛웃음이 나오고, 아주 일상적인 것 같은데 서글프고. 그의 영화를 보면 삶이란 것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것 같기도 하고 상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하찮고 가볍게 느껴지기도 하죠. 빌리 밥 손튼의 지독하게 무기력하고 지독하게 욕망하는 그 눈빛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세상에서 말이 안 되는 일과 되는 일, 그것을 가르는 기준을 간단하게 비웃는 코엔 감독의 블랙 코미디가 관객에겐 씁쓸한 웃음을, 감독에겐 2001년 칸 영화제 감독상을 안겨줬다.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이발사 애드(빌리 밥 손튼)가 일상에서 탈출하고자 벌인 일들은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기이한 방향으로 연쇄 작용을 일으킨다. 열정이라곤 한 방울도 남지 않게 증발해버린 건조한 애드의 목소리가 보는 내내 마음을 버석거리게 한다.
1989년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이런 말 하면 다들 의아해 하던데 전 어릴 때부터 모험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아이들이랑 어드벤처 영화 보면 가슴이 막 설레고, 지금이라도 당장 피라미드의 비밀을 찾아 모험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져요.(웃음)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는 지금 봐도 심장이 쿵쿵 뛰어요. 마지막에 모험이 끝날 때쯤엔 진짜 눈물이 날 것만 같다니까요”
존스 교수(해리슨 포드)는 나치에게 납치된 아버지(숀 코너리)를 구출해 함께 성배를 찾아 나서지만 늘 그랬듯 그 길이 순탄할 리 없다. 고생 끝에 성배가 있는 신전에 당도하지만 목숨을 건진 것만도 감사한 상황이 스펙터클하게 연출된다. 존스 교수의 어린 시절과 뱀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연유를 알 수 있는 시리즈. 성배를 찾아다니는 모험가 부자의 아옹다옹 투닥거리는 모습은 스케일이 큰 볼거리와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탐정 캐릭터, 개인적으로 무척 신선했던 도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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