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악셉트의 ‘Metal Heart’를 처음 듣던 순간의 기분은 뭐라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미쳐버릴 것 같았고, 실제로 헤비메탈 음악에 미쳐버렸다.” 백민석의 자전 소설 에 나온 구절이다. 내게도 유사한 경험이 있으니 고등학교 2학년 때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을 들었을 때였다. 나는 십대였고, 생전 처음 접한 강렬한 기타 리프와 둔탁한 드럼 타성에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백기를 흔들었다.

거의 모든 메탈 리스너와 마찬가지로 너바나로 시작해 곧 메탈리카와 메가데스, 드림 씨어터 등을 거친 후 슬레이어와 다크 트랭퀄리티 같은 극악한 리프를 들으며 잠을 청할 정도가 됐지만 너바나에 대한 애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리더 커트 코베인 때문이었다. 물론 너바나를 처음 들었을 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지만 젊은 나이에 록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을 만들고 명성과 돈을 얻은,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한 록스타가 자살했다는 사실은 <가요 톱 10>의 세계가 전부인 줄 알았던 내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공중파라는 한정된 프레임 바깥에 있는 새로운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앨범 속지나 <핫뮤직>에 글을 쓰는 평론가와 기자라는 족속에 대한 묘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으니 이렇게 기자 신분으로 ‘10초이스’를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커트 코베인과의 만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사망날짜로 추정되는 건 1994년 4월 5일이다. 이 날만 다가오면 꼬리뼈처럼 퇴화되어 남아있던 소년의 감수성이라는 놈이 슬쩍 꿈틀거린다. 아마 그 날이 되면 나는 와 같은 환장할 명반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실 것이다. 글을 읽는 당신도 당신만의 방식으로 그의 기일을 추모해주었으면 좋겠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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