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일시적인 충동입니다.” 극중 자살을 결심한 이들을 만난 심리학자가 그들에게 해준 이야기는 바로 ‘일시적인 충동’이라는 말이었다. 누군가가 그들의 손을 잡아주었다면, 자신 스스로 손을 내밀었다면 그런 비극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살’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생소하지 않는 요즘,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의 프레스콜이 3월 17일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오늘 프레스콜에는 자살을 위해 ‘자살버스’행을 택한 12명의 배우와 송한샘 프로듀서, 임도완 연출, 이수연 작가, 문종인 협력 음악감독이 함께 했다.

12인의 청담-서울역-경기도-평양-백두산 횡단 집단 자살 여행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은 핀란드의 소설가 아르토 파실린나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창작뮤지컬로, 저마다 다른 이유로 자살을 꿈꾸던 12명의 인물이 모여 대륙횡단 집단 자살 여행을 실행하는 과정을 그린 로드뮤지컬이다. 핀란드를 배경으로 했던 원작에 비해, 국내에서 오르는 이번 작품에서는 배경을 통일이 된 2015년의 대한민국으로 설정하여 청담, 서울역, 경기도, 평양, 백두산을 거쳐 전개될 예정이다. “3년 동안 이 작품을 준비하는 사이 유명인사들의 자살률이 높아져 많은 분들이 상업적으로 자살이라는 소재를 이용하는 건 아닌가하는 오해를 하게 될까봐 조금 걱정이 됐다”라는 임도완 연출가의 우려대로 제목에서 자극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실제로 40분가량 시연된 무대에서는 지독하게 외로웠던 12명의 인물의 우울한 이야기들을 우스꽝스러운 사건들과 조화시켜, ‘자살’을 뛰어넘어 ‘오늘’을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또한 미니멀한 무대에는 로드뮤지컬이라는 타이틀에 맞춰 다양한 영상을 이용하여, 그들이 떠나는 여정을 좀 더 다이내믹하게 표현한다. 12명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은 3월 17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계속될 예정이다.

가진 건 총뿐인 박종식 대위, 성기윤
데뷔 19년차, 그동안 <맘마미아>, <렌트>, <시카고> 등을 통해 주연과 조연을 넘나들며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던 성기윤이 박종식 대위 역을 맡았다. 그가 맡은 캐릭터는, 2015년 통일이 된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 대기발령 상태에 놓인 육군 대위로 리더십이 강한 인물이다. “자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우울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우울함 대신 12명의 인물이 모여 다양한 사건사고를 만들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기발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 작품은 퍼즐조각 같은 인물들이 하나의 큰 그림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그 퍼즐의 틀이 박종식 대위인 것 같다. 그리고 오늘이 첫공연인데, 어떤 반응이 있을지 기대가 많이 된다. (웃음)”

목을 매기 위해 고무줄을 가져온 인명구, 김성기
수없이 많은 사업을 말아먹고 이제는 빚더미에 앉아있는 인명구 역에는 <맨 오브 라만차>, <벽을 뚫는 남자> 등에서 코믹연기로 관객들을 사로잡은 김성기가 맡았다. 자살을 결정하는 그 순간에도 ‘혀가 늘어질까 봐’, ‘눈이 튀어나올까봐’ 선글라스와 마스크까지 준비하지만 결국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극단을 보여준다. “그동안 서울예술단에서 10년 정도 창작극을 주로 했었다. 창작뮤지컬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출연을 결정했고, 무대에서 활력을 불어넣고 싶다.”

치매 걸린 노모가 걱정인 진희정, 임강희
실연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하지만, 자살을 하러 떠나가는 순간까지도 치매에 걸린 노모가 걱정인 진희정 역에는 <이블 데드>, <내 마음의 풍금> 등에 출연한 임강희가 캐스팅 되었다. 유일하게 ‘사랑’때문에 자살을 하고, 또 유일하게 그 ‘사랑’을 다시 하게 되는 인물이다. “물론 내용도 좋았지만, 데모CD 녹음하는 걸 들었었는데 음악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뮤지컬 <기발한 자살여행>은 그동안의 다른 뮤지컬들과 달리, 공연 시작과 함께 OST가 발매되었다. 이번 작품의 음악에는, 영화 <올드보이>, <실미도>, <혈의 누>의 영화음악으로 유명한 이지수 음악감독이 참여했다.

고독한 기러기아빠 조말춘, 김민수
‘자살버스’를 운전하게 되는 관광버스운송회사 사장인 조말춘 역에는 김민수가 캐스팅 되었다. 한번 결정하면 추진력이 강하고 위기에도 끄떡없는 호인이지만, 고독한 삶을 견딜 수 없어 자살을 선택하는 인물이다. “실제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2년째 하고 있어서 조말춘 역에 더욱 애착이 간다. 기러기 아빠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사랑을 위해 희생을 하는 현실적인 아픔을 보여주고 싶다. 기본적으로 다이내믹하고 에너지가 많은 성격이라서 이 역에 잘 맞는 것 같다.”

“더 이상 날 주목하지 않아” 한상실, 양꽃님
이제는 잊혀져버린 북한의 최고 인민배우이자 지나간 시절의 노스탤지어에 푹 빠져 있는 한상실 역에는 양꽃님이 캐스팅 되었다. 양꽃님은 한상실 외에도 2개의 배역을 더 맡고 있다. 극중 인민배우로 나오는 만큼 북한사투리와 함께 과거 KBS <개그 콘서트>의 ‘꽃봉오리 예술단’이 연상되는 무대를 선보인다. “현재 한상실 역 외에도 진희정의 엄마 역도 함께 하고 있다. 그런데 자살을 막는 희정의 엄마와 자살을 결심하는 한상실의 충돌이 있긴 하다. 하지만, 조명 안에서만 주목받는 여배우들의 삶을 좀 더 자세히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생 자체가 뒷북인 우상준, 정상훈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버지 뒤를 잇게 된 뒷북 발명가 우상준, 자살이 나날이 늘어나는 것을 감추기에만 급급한 안기부장 지정석의 1인 2역에는 드라마와 뮤지컬에서 코믹 연기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정상훈이 캐스팅 되었다. “우리 뮤지컬은 코믹 어드벤처 스펙터클 뮤지컬이다. (웃음) 심각한 소재이지만, 웃음으로 승화하고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라는 부분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자살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자살보다는 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가지면 좋겠다.”

관전 포인트
“작품 속 대사, 이미지, 노래가사 등 다양한 요소들의 한 부분과 관객들의 인생이 만나 어떤 것이 녹아내린다면 이 작품은 성공했다고 본다”는 임도완 연출의 말대로, 이 작품은 ‘죽음’을 통해 ‘삶’을 얘기한다. 빚에 허덕이는 사장, 계약직 직원,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주부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의 ‘자살여행’은 관객들에게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총, 밧줄, 기름통을 들고 강한 넘버와 함께 등장했던 12명의 인물들은 ‘죽음의 길’ 위에서 자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을까.

사진제공_트라이프로

글.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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