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결혼은 사랑의 골인 지점이지만 누군가에게 결혼은 보험이고, 또 누군가에게 결혼은 재테크다. 하지만 믿었던 펀드가 반 토막 나는 것처럼 믿었던 상대가 ‘허당’이라면? 게다가 펀드는 눈 딱 감고 빼버리면 그만이지만 아이까지 낳고 산 상대와의 결혼을 무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결국 제 손으로 남편을 ‘우량주’로 만드는 아내의 이야기, MBC <내조의 여왕>(극본 박지은, 연출 고동선, 김민식)의 제작발표회가 서울 소공동 신세계 백화점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연출을 맡은 고동선 감독을 비롯해 배우 김남주, 오지호, 이혜영, 최철호, 윤상현, 선우선이 참석했다.

부도수표로 전락한 남편, 우량주 만들기!

3월 16일 첫 방송되는 <내조의 여왕>은 빼어난 미모를 무기로 세상 남자들을 발 앞에 무릎 꿇리던 여자가 심사숙고 끝에 서울대 의대생과 결혼하지만 정작 남편이 의대를 중퇴한 뒤 다니는 직장마다 적응하지 못하고 삼십대 중반에 이르도록 백수로 지내자 내조의 힘을 통해 사회적인 성공을 거두게 하려는 데서 시작되는 좌충우돌 코미디다. 여기에 남편의 회사 상사 부부와 사장 부부까지 불륜과 로맨스, 애증을 넘나드는 세 커플의 복잡한 관계가 더해지고 회사 내 정치학과 다양한 내조의 비법 전수도 펼쳐진다. 판타지는커녕 “내숭 없는 드라마”라는 윤상현의 말대로,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내조와 처세에 올인하는 주인공들의 코믹한 모습이 역시 팍팍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시청자들과 얼마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만 신데렐라 천지애, 김남주
“천지애는 여고 시절 타고난 미모와 끼로 인근 남학생들을 모조리 사로잡은 것은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도 여왕이었던 여자다. 자신에게 유리 구두를 신겨 줄 왕자님으로 서울대 의대생인 온달수를 선택해 결혼에 골인했지만 의대에도 회사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남편 때문에 결국 아이들 분유 값을 걱정하는 처지에 이르자 평강공주처럼 온 몸을 바치는 내조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아이 둘을 낳고 한동안 육아에만 전념하다가 오랜만에 드라마로 복귀했는데 천지애가 나와 너무 비슷한 캐릭터라 특별히 설정할 필요 없이 편하게 연기하고 있다.”

‘멘사 출신 실업자 모임’ 소속 무능한 남편 온달수, 오지호
“의지박약에 우유부단한 성격이지만 뭐든 한 번 보면 그대로 외워버리는 남다른 암기력 덕분에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다. 그 덕분에 천지애와 결혼도 했다. 하지만 비위가 약한 탓에 해부학 수업 때마다 기절하다가 결국 의대를 자퇴했고, 여러 회사에 들어가지만 번번이 적응에 실패하고 백수가 된다. 온달수는 무능력해 보이지만 원래 똑똑한 사람이다.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을 내조의 힘으로 극복하며 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양복을 입은 멋진 역할보다 약간 찌질한 연기를 할 때 더 편하다고 느낀다.”

인생 대역전에 성공한 향단이 양봉순, 이혜영
“천지애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주근깨투성이에 촌스러운 단발을 하고 교정기까지 낀 못난이 여고생이었다. 그래서 예쁘고 인기 많고 자신감 넘치는 지애와는 친구지만 공주님과 시녀 같은 관계였다. 지애와 함께 나간 미팅에서 준혁(최철호)에게 반하지만 정작 준혁에게 별 관심도 없던 지애가 보란 듯이 그와 사귀자 독기를 품고 두 사람 모르게 그들을 갈라놓는다. 그 후 끝없는 인내심으로 준혁과 결혼하고, 수년이 흘러 자신에게 남편의 취직자리를 부탁하러 온 지애를 보며 드디어 복수할 때가 왔다는 쾌재를 부른다.”

쿨한 겉모습 뒤에 집요함과 소심함을 숨긴 강준혁, 최철호
“강준혁의 첫사랑이자 잊지 못할 여자는 천지애였다. 하지만 봉순의 교묘한 조종으로 헤어진 뒤 세월이 흘러 온달수의 직장 상사로 지애와 다시 만나게 된다. 성공에 대한 야망이 크고 겉보기에는 쿨하지만 속은 소심하고 뒤끝도 긴 성격이라 부하들과 야자 타임을 가진 뒤에는 괜찮은 척 하면서도 자기를 욕한 부하직원 이름을 수첩에 적어두고 복수를 다짐한다. 그래서 ‘저런 찌질한 놈이 감히 천지애 같은 훌륭한 여자와 결혼하다니!’하는 억울함 때문에 온달수를 괴롭히고, 다시 만난 지애를 향한 감정도 점점 커짐을 느낀다”

‘15년 뒤의 구준표’일지도 모르는 허태준, 윤상현
“온달수와 강준혁이 다니는 중견 기업의 사장. 부모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고 부인 은소현(선우선)과는 정략결혼을 한 사이라 냉담하기만 하다. 초반에는 바람도 피우고 룸살롱도 다니는 방탕한 모습으로 등장하다 천지애와 접촉사고 때문에 만나게 된다. 평소에는 엘리트 CEO지만 천지애와 마주치기만 하면 살짝 찌질해지는데 그럴 때마다 MBC <크크섬의 비밀>의 ‘윤대리’의 모습이 살짝 보일지도 모르겠다. (웃음) 오랜만에 럭셔리한 캐릭터를 맡았는데 <꽃보다 남자>와 경쟁하려다 보니 구준표(이민호) 헤어스타일을 살짝 벤치마킹했다. (웃음)”

관전 포인트
SBS <왕녀 자명고>가 한 주 일찍 시작하고 3월 말 종영 예정인 KBS <꽃보다 남자>와는 초반 3주를 경쟁해야 하지만 <내조의 여왕>은 중장년층에게 인기를 모았던 <에덴의 동쪽>의 후속작이고 “<꽃보다 남자>는 어린 친구들이 주로 본다면 우리 드라마는 아줌마 팬들이 봐 주실 거다”라는 오지호의 말대로 시작은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SBS <칼잡이 오수정>에서 30대 여자들의 억척스런 면모를 수위 높은 코미디로 그려냈던 박지은 작가와 MBC <메리대구공방전>에서 독특하면서도 감성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던 고동선 감독의 조화 역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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