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만나 호감을 느끼고, 같이 라면을 끓여먹고, 잠도 자고, 사소한 다툼에 멀어지고, 술을 마시고, ‘잘 하겠다’ 말한다. 그리고 결국 헤어진다. 이토록 짧고 별다른 이벤트도 없는 연애에 대한 기록인 영화 <봄날은 간다>가 인상적일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마지막 장면에서 유지태가 녹음하는 바람이 스치는 소리처럼 정말 있었는지 싶은 기억만을 남긴 채 사라진 우리의 옛 연애들을 불완전하게나마 환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완전했더라면 그것은 환기보다는 재구성된 가상으로 보였을 것이다.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도 예뻤다는 걸로 기억되는 지하철 맞은편 여자에 대한 기억처럼 기억은 언제나 그렇게 희미한 얼굴이다. 그래서 항상 애틋하다.

갤러리 팩토리에서 2월 12일부터 진행하고 있는 ‘슴슴. 건축. 시’展은 이런 기억의 속성에 대한 두 젊은 작가의 상반된 작업을 보여준다. 정확히 말해 무엇을 기억하는지에 대한 것이 아닌, 기억의 속성 자체에 대한 전시다. 밀랍이나 석고 등을 이용한 김혜수의 작업은 자신이 보고 느꼈던 세계 혹은 자연의 어떤 순간을 재구성해 입체적으로 고정한다. 재료의 단단함만큼 기억의 순간 역시 단단하게 응고되어있지만 <세계의 추> 같은 작품에서 알 수 있듯 재구성된 기억은 실제의 그것과는 많이 다른 과장되고 상징적인 모습이다. 사실 우리가 정말 명료하게 기억한다고 믿는 어떤 순간들은 우리가 재구성한 모습은 아닐까. 그에 반해 윤소담의 ‘슴슴’한 회화는 기억을 재현하려 하기보단 기억 그 자체의 흐릿함을 표현한다. 우리는 그 희미한 형태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단지 그 무엇이 ‘있다’는 것만을 안다. 기억이란 그렇다.

<향수>
작가 밀란 쿤데라│2000년

오해를 피해 말하자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처럼 퍼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노스탤지어에 대한 이야기다. 프라하의 봄 시절 외국으로 망명을 떠나 2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결코 애틋하거나 눈물겨운 고국에의 향수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에 대한 향수라는 것이 정말 ‘그’ 과거에 대한 것인지, 실체가 없는 감정은 아닌지 묻고 있다. 소설 말미 작가가 기억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향수를 비롯한 모든 추억에 대한 정확한 진단은 아닐까. ‘가엾은 기억이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과거로부터 극히 보잘것없는 일부분만을 간직할 수 있을 뿐이다. (중략) 그것이 존재했을 때의 상태 그대로의 현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의 복원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향수를 향수하고, 기억을 기억할 뿐이다.

<라쇼몽>
감독 구로사와 아키라│1950년

홍상수의 영화 <오! 수정>에서도 시도했던, 같은 일을 겪어도 사람에 따라 기억이 달라진다는 진리를 영상으로 구현한 고전이다. 자신의 아내와 숲속을 지나던 사무라이가 아내의 미모에 반해 겁탈한 산적과 싸우다 죽는 사건이 벌어진다. 얼핏 명료해 보이는 사건이지만 산적은 자신이 호적수인 사무라이와 혈전을 벌이다 그를 죽였다 하고, 아내는 순결을 빼앗긴 자신을 남편이 싸늘히 대해 죽였다 하고, 죽은 사무라이는 무당의 입을 빌려 아내의 배신에 자결했다고 한다. 모두들 죽음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이들의 진술은 처벌을 피하기 위한 거짓말관 거리가 멀다. 그보단 어떤 과거도 결국 자신이 주인공인 모습으로 재구성하는 기억의 속성을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 때문에 사건의 제3자인 나무꾼의 눈에 비친 사무라이와 산적의 엉기고 넘어지는 개싸움은 더욱 실소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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