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꼬운 것 참아가며 다닌 회사가 다른 회사에 인수합병됐다. 그나마 불확실한 미래에 한 가닥 희망이었던 정규직 일자리조차 계약직이 되어버렸다. 시사경제지 기사에 소개된 A씨의 사연이 아니다. 재벌2세 애인 하나 없이 브라운관에서 우리네 궁상맞은 현실을 같이 살던 영애씨의 일이다. 어느새 다섯 번째 시즌에 이른 tvN <막돼먹은 영애씨>의 제작발표회가 25일 왕십리 CGV 안에서 진행됐다. 이번 제작발표회에는 영애 씨와 그의 가족, 직장동료인 배우 김현숙, 윤서현, 도지원, 김정하, 송귀현, 김예령, 김현정, 고세원, 최원준, 정지순, 이용주가 참석했다. 연출은 맡은 박준화 PD와 최규식 PD, 대본을 쓴 임수미 작가는 따로 마련된 심화인터뷰에 참석했다.

정규직에서 계약직의 나락으로 떨어진 영애 씨

공중파와 케이블을 통틀어 한 작품이 동일한 타이틀과 같은 출연진으로 다섯 시즌를 방영하는 건 전무후무한 일이다. 그러면서도 케이블 대박의 바로미터인 시청률 1%는 꾸준히 기록한다는 것은 <막돼먹은 영애씨>의 저력을 증명한다. 하지만 가족과 회사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영애 씨의 일상이 거듭될수록 자칫 식상해질 위험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시즌이 흥미로운 것은 첫 회부터 영애 씨의 회사 ‘아름다운 사람들’이 그린기획이라는 광고기획사에 인수되며 영애 씨의 생활 반경 자체가 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애 씨를 비롯한 지순, 지원, 원준 네 직원은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전환되어 더는 나빠질 것 같지 않던 영애 씨의 일상은 더욱 암울해진다. “우리는 리얼 드라마를 추구하기 때문에 현실을 반영하려 한다. 요즘 사람들이 살기 더 팍팍해졌는데 그걸 가져오고자 배경을 바꿔보았다”는 임수미 작가의 말처럼 이러한 변화는 이 드라마가 스스로의 장점을 아직도 잘 이해하고 초심을 잃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영애 씨의 계약직 전환이 안타까우면서도 왠지 반가운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둥지를 옮겨 좌불안석 직장생활을 펼칠 영애 씨와 ‘아름다운 사람들’ 식구의 이야기는 3월 6일 금요일 밤 11시에 첫 방영된다.

시즌5의 새로운 인물들

지위와 반비례하는 인간성의 그린기획 이사 김예령, 김예령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배우들의 증언을 따르자면 그린기획 이사 김예령은 ‘돌아이’ 변지원은 상대도 되지 않는 진정한 ‘돌아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매출이 좋은 광고기획사의 이사이고 나이에 비해 세련된 외모지만 입만 열었다 하면 육두문자와 음담패설이 나오는 인물이다. 아마도 영애 씨와 시청자 모두 쪼잔하지만 인간적 정이 느껴졌던 ‘대머리 독수리’ 유형관 사장이 참 괜찮은 CEO였다고 느끼게 될지 모르겠다. “이미 잘 차려진 밥상에 밥 떠먹으러 와서 송구하다. 영애 씨뿐 아니라 그린기획 사람들 모두를 ‘갈구는’ 역할인데 마지막까지 그들의 적으로 남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또 다른 적 이용주, 이용주
스스로를 Y대 출신에 대치동에 산다고 밝히는 자칭 ‘엄친아’ 신입사원이다. 모델 출신 이용주가 맡은 캐릭터인 만큼 키도 크도 얼굴도 잘 생겼다. 평소 같으면 변지원이 눈을 밝히며 꼬시려고 달려들거나, 어찌어찌 영애 씨와 러브라인이 형성되겠지만 그의 행보는 다르다. 스스로를 잘났다고 여기는 그에게 평균 이하의 ‘아름다운 사람들’ 멤버들은 선배라기 보단 멀리하고 밟아야 할 존재일 뿐이다. 때문에 영애 씨에게 김예령 이사가 위에서 억누르는 존재라면 이용주는 아래에서 찔러대는 존재다. “콘셉트는 나왔지만 아직 촬영분이 없어서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예전에 변태나 트랜스젠더처럼 좀 흔치 않은 역할을 하다 ‘엄친아’ 역할을 맡아 기분이 좋다.”

얼굴이 달라져서 돌아온 셋째 이영민, 김현정
<막돼먹은 영애씨>에서 영채와 혁규의 알콩달콩 러브라인을 즐겨 보던 사람들에겐 안 된 일이지만 이번 시즌에서 어머니에게 재산을 약간 물려받은 혁규의 지원으로 영채는 유학을 떠난다. 하지만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이 있는 법. 1시즌 에서 미국 유학을 떠났던 셋째 영민이 공부를 접고 한국으로 들어온다. 대신 1시즌의 박상진이 아닌 김현정이 대신 돌아왔으니 가족들은 미국의 선진 성형기술에 감탄할지도 모를 일이다. 자칭 보헤미안 혁규를 정신적 멘토로 모시며 가뜩이나 ‘꼴통’ 기질 가득하던 그의 성격은 더욱 천방지축이 된다. “중간에 투입되는 만큼 선배들 말 잘 듣고 열심히 해서 영애네 가족의 활력소가 되겠다.”

관전 포인트
이젠 너무 자연스러워져서 잊을 때도 있지만 <막돼먹은 영애씨>는 6㎜ 카메라 세 대를 동시에 돌리며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 한국 최초의 다큐드라마다. 이런 다큐드라마의 원칙은 변하지 않지만 이번 5시즌부터는 풀HD로 제작된다. “채널을 돌리다가 처음 드라마를 접했는데 화질이 조악해 채널을 돌리는 남성 시청자들”(최규식 PD)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지만 예전의 진짜 다큐멘터리 같은 날 것의 느낌은 떨어질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전처럼 대충 화장하고 갔다가 카메라 감독님에게 경고를 받을 정도”(김현숙)로 깔끔해진 화질 속에서 영애 씨의 리얼 암울 스토리는 과연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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