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미술은 맥락의 문제가 되었다. 유명한 앤디워홀의 브릴로 상자는 마켓에 진열되어 있으면 상품이지만, 미술관에 전시되면 예술품과 기성품의 경계에 대해 질문하는 진지한 미술 작업이 된다. 전자와 후자를 가르는 건 공간의 맥락이다. 사실 이것은 동시대미술만의 문제는 아니다. MBC <에덴의 동쪽> 신태환의 격정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대사가 현실에 오면 웃음거리가 된다. 이것 역시 맥락의 문제다. 다만 동시대미술은 맥락에 따른 해석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는 것뿐이다. 관람자들은 마치 증거물을 통해 범행을 재구성하는 탐정처럼 전시 제목과 작품들, 배치 등을 전체적 맥락 안에서 파악해 나름의 의미를 구한다. 이것이 추리와 다른 점이라면 맞느냐 틀리느냐보단 그 과정의 재미와 해석의 독특함이 중요하단 점이다.

스포일러를 공개하는 기분으로 밝히자면 현재 UNC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Star Wars Episode 2 : 보이지 않은 위협’展은 영화 <스타워즈>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스타워즈’는 스타의 가능성이 보이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전시하기 때문에, ‘에피소드 2’는 이번이 두 번째 전시이기에 붙은 이름이다. ‘보이지 않는 위협’ 역시 이번 전시가 비가시적으로 일상에 스며든 현대 사회의 위협을 주제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기계와 인간의 결합을 그린 이승민의 작업, 붕괴된 육체를 그리는 디 황의 작업, 만화적인 이재훈의 작업들은 다분히 SF적인 전시제목의 맥락 안에서 서로 의미의 간섭을 일으키며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무언가 흥미로운 그림이, 스토리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것을 읽어내는 건 관람자의 몫이다. 큐레이터의 전시소개는 좋은 길잡이지만 그것 역시 전체 맥락에선 하나의 요소일 뿐이라는 걸 잊지 말자.

<장미의 이름>작가 움베르토 에코│1980년
중세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이다. 박식한데다 논리적인 탐정 윌리엄 수도사가 나온다. 결국 살인사건의 범인도 찾아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모든 정황과 맥락 안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생각만큼 명확하지 않다는 걸, 우리가 정답을 얻는 건 결국 우연의 도움을 얻는다는 걸, 그리고 그 정답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걸 얘기한다. 다름 아닌 윌리엄 수도사의 입으로. “나는 기호의 진실을 의심한 적 없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나아갈 길을 일러주는 것은 기호밖에 없다.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기호와 기호와의 관계다. 나는 일련의 사건을 두루 꿰고 있다고 믿었고, <묵시록>을 본으로 삼아 호르헤에게 도달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연의 일치였다.” 미술 전시를 이해하는 과정도 비슷하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1 – 보이지 않는 위협>감독 조지 루카스│1999년
웃기려고 선택한 작품이 아니다. ‘Star Wars Episode’라는 전시 시리즈에 ‘보이지 않는 위협’이라는 부제를 붙인 센스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그 전시는 얼마든지 흥미로워질 수 있다. 원래는 에피소드 1이 보이지 않는 위협인데 왜 에피소드 2에 그런 제목이 붙었는지 궁금해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전시에 대한 해석이 맥락의 문제라면 맥락을 이루는 요소가 풍성해질수록 더 다양한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오비완 케노비와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펼치는 스페이스 오페라와 전시 작품들의 연관 관계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갤러리 공간은 드넓은 상상과 해석의 우주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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